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urney Aug 15. 2022

우리는 서로에게 선물입니다

루이스 하이드의 <선물>을 옮기고 나서

코로나 기간 동안 붙들고 씨름했던 루이스 하이드의 <Gift> 마침내 <선물>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역자 후기를 옮겨 습니다. 모쪼록 선물처럼 많이 순환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이 내 눈에 든 것은 어느 영자지에 실린 마거릿 애트우드의 추천사 때문이다. 알고 보니 2019년판 원서에 새로 수록된 서문에서 따온 글이었다. 거기 이런 단락이 있었다.


“(1983년 첫 출간 이후) <선물>은 지금껏 한 번도 절판된 적이 없다. 마치 땅 밑을 흐르는 저류처럼 온갖 종류의 예술가들 사이에서 입소문과 선물하기를 통해 저절로 움직이고 있다. 이것은 내가 작가나 화가, 음악가 지망생에게는 어김없이 추천하는 단 한 권의 책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일반적인 지침서-그런 책은 허다하다-가 아니라, 예술가가 하는 일이 무엇이며, 그런 활동이 이 압도적으로 상업적인 우리 사회와 맺는 관계는 무엇인지에 관한 핵심적인 본질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노래를 하거나, 곡을 짓거나, 연기를 하거나, 영화를 만들고 싶다면 <선물>을 읽어라. 제정신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아마 나도 ‘제정신을 유지하는 데’ 얼마간 도움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이 정도의 말이라면 곧장 사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으니까. 급기야 우리말로 옮기는 만용까지 부리게 되기까지 그 사이에 일어난 일은 순전히 책이 내게 부린 마법(도킨스는 ‘밈의 간계’라 했겠지만, 하이드는 이 책에서 ‘선물의 증식’이라 부른 것) 때문이었다고만 해 두겠다.


제목을 어쩔 수 없이 ‘선물’로 옮기긴 했지만, 원어인 Gift는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말로는 ‘주어진 것’, ‘선물’인 동시에, ‘재능’이라는 뜻도 된다. 예술가, 더 나아가 모든 사람이 타고나는 재능을 선물이라 보고, 재능의 발휘를 자신이 받은 선물에 대한 답례이자 감사의 표시, 나아가 공동체를 유지하고 비옥하게 하는 순환의 지속이라고 보는 것이다.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우리는 세상을 은유를 통해 인식한다고 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선물의 순환이라는 은유를 제시한다. 애트우드는 핵심을 이렇게 요약한다. “선물은 손에서 손으로 전달된다. 그런 전달을 통해 선물은 계속해서 이어지는데, 선물이 주어질 때마다 그것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에게 새로운 영적 생명을 낳음으로써 선물 스스로 다시 생기를 얻고 되살아난다.”


이런 선물 순환 방식의 경제 개념은 일찍이 인류학자들에 의해 오래된 ‘증여 문화’로 소개된 바 있다. 하지만 저자는 훨씬 더 깊이 들어간다. 오늘날 우리의 삶, 특히 예술가의 창조적 활동까지 잠식해가는 상품 경제에 대비시켜, 이기적 자아를 넘어서는 공동체적 삶의 원형으로서 선물 교환의 의미와 구조에 대해 뿌리까지 파고든다. 내 짐작 같아서는, 자본의 증식 원리를 파헤친 칼 마르크스의 <자본Das Kapital>을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다.


저자는 예술가의 선물(재능)과 결실(작품)은 이윤이 지배하는 상품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누리는 선물로 대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여러 갈래로 보여준다. 그런 예술 작품을 상품으로만 대했을 때 그것은 선물의 본질을 잃고 예술가뿐 아니라 모두의 영혼이 빈곤해지며, 그것으로 생명을 이어가는 공동체 또한 황폐해진다. 그렇다면 재능을 선물 삼아 선물하는 삶을 살기로 한 예술가는 상품과 시장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 휘트먼과 파운드의 안타까운 사례에서 보듯, 이것은 개인을 넘어 공동체의 과제가 된다. 오늘날 범위를 넓혀가는 ‘공유 경제’나 NFT(대체불가능토큰) 시대에도 첨예한 쟁점이 아닐 수 없다.


어릴 적에 들었던 천당과 지옥 우화가 생각난다. 천당에 가든 지옥에 가든 사람마다 손잡이가 긴 숟가락이 하나씩 주어진다. 음식을 앞에 두고도 지옥에서는 저마다 자기 입에 떠 넣으려 애쓰다 결국에는 하나같이 굶주림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천당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떠 먹여주며 함께 풍족과 나눔의 즐거움까지 누린다고 했던가.


재능을 선물이자 축복으로 보기보다 자산이자 경쟁력으로 여기는 뒤틀린 능력주의 시대, 누구나 자신이 가진 무언가를 팔아야 하고 다른 무언가를 다시 소비하며 살아가야만 하도록 내몰리는 시대, 급기야 예술과 문화의 영역마저 자본과 상품의 논리가 힘을 더해가는 시대에 ‘예술의 결실은 상품으로 팔리는 게 아니라 공동체에 선물로 주어져야 한다’는 말이 독자들에게는 어떻게 다가갈지. 이야기는 현실을 단번에 바꾸진 못해도 서서히 조금씩 굽히는 힘이 있다는 오랜 가르침을 나는 여전히 믿는다.


애트우드의 서문은 이렇게 끝이 난다. “한 가지는 보장한다. <선물>을 읽고서 당신은 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이 책 자체가 선물의 지위로서 남기는 자국인데, 선물은 단순한 상품이라면 불가능한 방식으로 영혼을 바꿔놓기 때문이다.”


이 책이 내 영혼에 남긴 변화의 선물에 대한 내 나름의 감사와 보답이 국내 독자들에게 번역서를 선물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 뜻에 공감하고 두말없이 출간을 맡아주신 조성웅 대표님, 역자 못지않은 애정과 끈기를 가지고 작업에 매달려주신 편집자 인수 님, 최종 원고를 보고 도움말을 주신 북클럽 오리진의 충직한 회원 이헌일 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모두 내겐 선물 같은 분들이다. 그래도 미처 바로잡지 못한 이 선물의 하자는 물론 모두 내 책임이다.


이제 여러분께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선물>을 내민다. 모쪼록 이 선물 역시 순환하며 우리 공동체가 누려 마땅한 생의 결실과 기쁨도 함께 불어나기를 소망한다.     


2022년 7월

작가의 이전글 고전 독서 모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