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멈춰있는 나를 다시 만나러 가기까지
시작은 출산 후부터 시작된, 언뜻언뜻 찾아오는 자기혐오였다
아기를 재우려고 조용하고 깜깜한 공간에 아무런 말도 없이 한참을 누워있자면, 내가 나를 잔인하리만치 들들볶기 시작했다.
자꾸 안 좋은 기억들이 떠올랐다. 생각해 봐야 영양가는 하나 없고 나를 갉아먹기만 하는 그런 일들.
이를테면, 옛 직장에서 정말 좋은 평가를 받기를 바랐을 때 나의 일처리에 그다지 감명받지 못했다는 말을 들었던 일,
유학시절 석사논문을 최고점을 받아야만 한다고 강박적으로 생각했는데 결국 한 단계 낮은 점수를 받아서 필요 이상으로 침울해했던 일,
아니면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당했거나, 나를 강렬하게 싫어했던 대학교 친구를 기억하거나 하면서 나는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워했다.
물론 이 모든 불쾌한 기억들 중 어느 것도 내가 원해서 떠올린 게 아니었다.
그런 기억들이 내게 원하는 것은,
“넌 그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잖아. 너 설마 네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넌 부끄러운 존재야.”라는 끊임없는 설득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남모를 전쟁을 치루고 있다는걸 전혀 몰랐을 것이다.
왜냐? 나는 겉으로 봤을 때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첫 아이를 낳고 행복해하는 엄마였고, 사람들은 곧잘 나와 남편의 결혼생활을 부럽다고 하고, 내 나름의 걱정은 있을지언정 내 삶은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였을 테니까.
난 속으로는 다른 사람들보다 좀 깊이 흔들리고 괴로워했지만, 겉으로는 누구보다 쾌활했다.
내가 부정하는 내 우울과 불안은 대체로 깊은 밤에 날 괴롭혔다.
사람들과 있을 때는 “너는 진심으로 널 좋아하는 것 같아서 부러워.”라는 말도 들었었다.
그런 말을 듣고도 속으로 긍정하며 “맞아, 당연히 나는 날 좋아해.”라고 생각했지만, 조용한 밤 자려고 누우면 알 수 없는 불안이 훅 올라와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는 날들이 수도 없었다.
결국 참을 수 없을 때에는, 그래서 도저히 잘 수 없을 때에는, 피로에 지쳐 잠든 남편 옆에 누워 남편에게 “나, 나쁜 사람 같아.”라고 말하며, 남편이 그 말을 부정해 주기를 바랐다.
답이 정해진대로 남편은 왜 그런 생각을 하냐고,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말을 해주었고, 그런 억지로 받는 위로에 의존했다.
하지만 그것도 나를 해방시켜주진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먼저 모래놀이 치료를 소개받아서 시작하게 되었다.
남편은 유년기의 어떤 일로 영향을 많이 받고 있었지만 그걸 스스로 해결할 수 없어 힘들어하고 있었는데, 언어적 자기표현이 힘든 시기에 받은 상처 치유에는 모래놀이 치료가 효과가 좋다는 말을 듣고 시작한 것이었다.
그전에는 모래 놀이치료에 대해서 어렴풋이, 아이들의 치유에 효과적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모래 놀이 치료는 나이나 트라우마를 겪은 시기에 관련 없이 전 연령대에 어우러 사용할 수 있는 심리 치료기법이었다.
그리고 남편의 치료에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남편과 함께 나도 MMPI 검사(다면적 인격검사)를 받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나의 마음의 현주소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결과를 들으며 참 속상했다.
내가 2018년에 처음으로 MMPI검사를 받았을 때와 비슷한 결과지를 받아서였다.
그때, 갑작스레 한쪽 귀의 청력을 갑자기 잃고 불안증이 극에 달해서 방문한 신경정신과에서, “이건 마치 학대받은 아이의 정신 상태 같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었다.
나름의 문제는 있지만, 나름 좋은 부모님 아래서 좋은 양육을 받고 자랐다 자부했던 내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였다.
하지만 7년이 지난 지금도 MMPI로 보는 내 마음 상태는 그때의 결과와 크게 다를 게 없었다.
그래서 상담선생님의 권유에 따라, 나도 모래놀이 치료를 받기로 했다.
아니, 절대 상담선생님의 권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테이블 위의 모래를 본 순간 무언가 막 표현해내고 싶은 충동을 느꼈고, “선생님, 저도 상담받으면 안 될까요?”라는 말이 입을 비집고 나갔다.
내 얘기를 좀 들어달라고, 나 좀 고쳐달라고 애원하고 싶었다.
치유되지 못하고 저마다의 자리에서 남겨진 너무 많은 다양한 ‘내’가 도움을 외치며 절규하고 있었다.
MMPI검사결과 상담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내내, 차 안에서 펑펑 쏟아지는 눈물을 닦으며 집으로 왔다.
그렇게 나는 다시 치유의 여정에 올랐다.
모래놀이 치료 뿐만 아니라, 나의 무의식, 내 안에 억눌린 그림자들과 내 아니무스, 그리고 내 꿈에 대해서도 칼 융의 이론으로 해석해 보기 시작했다.
똑똑똑, 나는 내 안으로 문을 두드리고,
저마다 상처받아서 자라지 못하고 남겨진 수 많은 '나'들을 만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