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똥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첫 번째 모래놀이 치료에서 마주한 내 마음

by 은제인


드디어 첫 모래놀이 치료 시간이 다가왔다.

나를 담당해 주시기로 한 C선생님은 내가 바라던 대로 온화한 인상의, 나보다 한 세대정도 연상인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듯 나를 이리저리 차분하게 살펴보셨는데, 당연한 절차라고 생각이 들면서도 쑥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상담실 한가운데는 테이블이 있었고, 그 위에는 안이 파란색으로 칠해진 커다란 나무 상자가 두 개 있고, 한쪽에는 마른 모래,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젖은 모래가 담겨있다.


그리고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피규어가 방을 쭉 둘러 전시되어 있다.


모래 놀이 치료는 저명한 심리학자 칼 융의 분석심리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융은 무의식이 상징을 통해 드러난다고 보았다.

이후 일부 학자들이 이것을 모래놀이 치료로 발전시켰다.


모래놀이치료에서 모래 상자와 작은 피겨들은 무의식을 안전하게 표현할 수 있는 상징적 세계를 제공한다.


내담자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내면의 감정, 트라우마, 무의식적 갈등을 모래 위의 장면으로 구체화하면, 이것이 꿈이나 환상처럼 자아와 무의식에 다리를 놓아 그의 마음을 표현하게 해 준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것이 내담자가 자기와 자아의 통합을 도와주는 것이다.





모래놀이 치료를 시작하면서 내가 상담선생님께 한 말이 있다.


“선생님, 저는요, 시간이 정말 없거든요.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선생님의 시간을 일주일 동안 사서 그 시간 동안 집중해서 제 치유를 후딱 끝내고 이제 그만 힘들어하고 싶거든요. 제 상처가 제 시간 잡아먹는 것도, 사실 너무 지겨워요 이제.”


어서 해치우고 싶은 마음. 내 마음이 딱 그랬다.

성가시고 귀찮은 일 후딱 해치우고 싶은 마음.


하지만 선생님은 치유는 그런 식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고 했다.


“모래놀이 치료를 하면서 무의식에서 꽁꽁 감춰져 있던 기억이나 감정을 마주하고 나면, 순간 정말 몸이 어지럽고 힘들 정도로 혼란스러울 수 있어요.


그래서 제인 씨를 보호하기 위해서 일주일에 한 시간이 적절한 시간인 거예요.”




첫날의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치료를 시작하는 둘째 날, 나는 젖은 모래를 택했다.


선생님은 젖은 모래가 더 깊은 무의식까지 간다고 했다.


그리고 피규어를 하나하나 살피며 내게 말을 거는 것들을 골랐다.


개중에는 행복한 4인 가족을 이루고 싶은 나의 꿈을 나타내는 멋진 집 모형과 4인 찻잔 모형도 있었고, 나를 공격할 듯 노리는 공포를 의미하는 짐승 모양의 피규어도 있었다.


선택한 피규어를 내 맘이 끌리는 대로 배치를 마친 후에는 내가 생각하는 피규어의 의미를 선생님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기억나는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밖으로 꺼내어 보며 설명해 주는데,

말을 하면서 서서히 나도 모르게 내 손이 그 모든 작품을 다 뭉뚱그려서 아래 그림과 같이 아예 한 뭉텅이로 만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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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로 다른 모든 피규어를 꼭꼭 숨기고, 내 가장 큰 불안을 나타내는 무서운 판다만 밖에 남겨두었다.



내 이야기를 다 충분히 들은 선생님은 내가 다른 사람을 잘 믿지 못하고 불안해하는데, 내가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믿을 수가 있겠냐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생각했다. 내가 나를 믿지 못하나?


선생님이 말했다.

"아직 두 번밖에 안 만났지만 제인 씨는 아주 예의가 바르고, 나는 지금껏 많은 성취를 해왔고, 좋은 엄마고, 너무 좋은 면이 많은 사람인데도 자신을 믿어주지 못하고 있어요."


선생님의 말이 맞는 것 같아서 슬픈 마음이 들었다.




1시간이 끝나갈 무렵, 선생님이 물었다.


“오늘 작품의 제목이 뭐예요?”


한참을 고민하다 말했다.


“똥이요. 다 거대한 똥 같아요.”


내 입에서 그 말이 나오는 순간 나는 생각했다.


사실 나는 나를 똥으로 생각하는 게 아닐까?


내가 선생님에게 말했다.


“선생님, 저는요, 제가 태어났을 때, 모두가 축하하는 분위기 속에서 행복하게 태어났으면, 그리고 제가 태어나서 모두가 기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요.”


그랬으면, 많은 것이 달랐을 것 같다.


나의 존재와 가치에 늘 의문을 품지도 않았을 것이고,

내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늘 전전긍긍하며 살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똥이라고 생각했던 나를 마주했으니.


(다음 편에서 계속)




**깊고 내밀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댓글허용을 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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