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가고 싶다. 그래서 뒤를 돌아본다.

태어나서 미안했던 아이

by 은제인

당신이 만약 어디선가 나를 만난다면, 나를 보고 밝고, 싹싹하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하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는 언제나 내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그 의문과 불안이 표면으로 나타나서 문제들을 만들어왔고, 내 몸과 마음은 너무 자주 아팠다.


그러나 많은 시행착오 끝에, 그리고 너무 다행히, 늘 한결같은 따뜻함으로 나를 대해주는 남편을 만났다.

그와 나는 사랑의 언어가 일치해서 드디어 내가 ‘따뜻한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끼게 해 준다.

남편을 만나고 나는 많이 안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 불안과 의문의 원천은 너무 깊은 곳에 있어서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손을 뻗어 어루만져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직접 그 의문과 불안을 도닥이고 안아줘야 했다.


이제, 나는 앞으로 가고 싶어서 돌아보기로 했다.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졌던 탄생 이야기


내가 중학교 때의 일이다.


그날, 우리 가족은 아주 즐거운 외출에서 막 돌아와 저녁식사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기분이 좋았던 내가 아빠에 물었다.


“난 태어나서 오늘이 가장 행복했던 날이야, 아빠는?”


아빠가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ㅇㅇ이 (내 동생) 태어났던 날.”이라고 말했다.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 같았다.

내가 계속 아닐 거야, 아닐 거야, 생각했던 일이 명백해지는 순간이었다.

아빠는 기어코 동생이 태어났을 때와는 반대로 내가 태어났을 때를 이야기하면서 얼마나 실망스러웠는지 말하기 시작했다.


아직 초음파로 태아를 감별하는 기술이 없던 시절, 큰 대학병원 의사가 엄마의 배모양등을 보고 내가 아들이라고 장담을 했다.

그리고 드디어 내가 태어나던 날, 아빠는 신이 나서 동전을 한가득 모아 준비를 했다.

내가 태어나면 바로 전화를 돌려서 “드디어 아들을 봤다”라고 한시라도 빨리 전하고 싶어서.


하지만 엄마의 긴 산고 끝에 태어난 나는 딸이었고, 아빠는 실망스러운 마음에 그 동전을 가지고 인근 하천에 가서 다 던져 버렸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크게 충격받은 내가 너무 속상해서 방문을 꽝 닫고 들어가자 아빠는 화를 내며 따라 들어와 나를 다그쳤다.


“너 방금 아빠 앞에서 문 꽝 닫고 들어간 거야?”


아빠한테는 내가 받은 상처는 별로 보이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그러면서 말했다.


네가 태어났을 때는 실망했지만, 지금 널 보면 너무 예쁘고 똑똑하게 자라줘서 좋아.


하지만 그 뒷말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이미 상처는 깊이 박혔다.






그날 아빠의 그런 잔인한 말은, 내게는 확인사살 같은 거였다.

초등학교에 막 입학하고 동생이 태어난 순간부터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동네 이웃들은 엘리베이터에 탄 우리 가족들을 보면서 너스레를 떨며 “이 집 성공했네.”라는 말을 하곤 했다.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아직 어린 내 동생이 ‘성공’이라는 말을 들을 때면 ‘아, 그럼 내가 실패구나’, '나는 원하지 않던 존재였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내가 태어났을 때 챙겨 온 동전을 다 내던져 버릴 정도로 실망했다는 아빠의 그 말이 나한테 아주 깊은 상처를 남겼을 수밖에.








아빠에게서 받은 상처를 어떻게든 소화하기 위해서 애쓰던 어느 날, 엄마에게도 물어본 적이 있었다.


“엄마, 엄마도 내가 태어났던 날 속상했어? 아빠한테 미안했어?”


엄마는 가만히 생각해 보다가 답했다.


“아니, 아빠한텐 안 미안했는데 외할머니에게 미안했어.”


난 아직까지도 이 대답의 의미를 정확히 모르겠다.

우리 외할머니가 종갓집에 시집가서 딸만 다섯을 내리 낳은 끝에 아들을 봐서일까?

그래서 엄마도 딸만 낳는 걸까봐서 엄마는 미안했던 걸까?

어쨌든 나의 탄생으로 엄마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니, 내가 어찌 내 존재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나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가, 나에게 가장 커다랗던 내 세상이, 내가 태어나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는데.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으로 인해 내가 실망을 안겨줬다는 점이 얼마나 슬프던지.






내가 늘 실망스러운 존재처럼 느껴지는 이유



아이를 낳고 보니 최초 영유아기 3년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는 말들을 정말 자주 접한다.

그 시기의 경험이 인격형성에 가장 중요한 토대가 되니, 아이는 절대적인 사랑과 보살핌을 겪어야 한다고.

그래야 그 후에 오는 시련에도 굳건하게 씩씩하게 이겨내는 아이가 된다고.


하지만 내가 태어났을 때를 생각해 보면, 나는 임신부터 별로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나를 임신했을 때 엄마는 아직 언니를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다.

게다가 막 사업을 시작해서 바쁜 아빠를 도와 직원들의 식사를 챙겨주고 하루의 일과 끝에는 정산을 해야 하는 그런 바쁜 일상을 견뎌내고 있었다.


예상치 못했던 나라는 존재를 반가워할 틈이 없었다.

게다가 내가 태어나고 나서도 엄마는 몸도 제대로 풀지 못하고 나를 업고 일을 했다고 했다.


한 번은 내가, 갓 태어난 내 아이의 예쁨에 취해서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도 우리들 키우면서 이렇게 이뻤어?”


엄마는 곰곰이 생각해 보다 말했다.


사실 엄마는 너무 바빠서 아기 이쁜 재미에 폭 빠져서 살 여유가 없었어.”라고.


그 시기에 아마도 난, 엄마에게 버거운 존재였을 것이다.


그걸 두고 엄마 탓을 할 수는 없다.






이렇게 쓰고 있자니 내가 천하의 배은망덕한 딸이 된 느낌이다.

우리 부모님이 나름의 방식으로는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하셨다.


단 우리의 사랑의 언어가 달랐을 뿐이다.


나는 살가운 표현과 따뜻한 언행을 원했고, 그들은 책임과 봉사로 사랑을 표현했다.

우리 가족은 안락한 집에 살았고, 끼니를 거른 적이 없었으며, 학교도 다니고 학원도 다녔다.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면 엄마는 늘 맛있는 간식을 내어주었다.

초등학교 때 매해 내 생일파티는 다른 친구들의 것보다 훨씬 더 차린게 많고 떠들썩했고, 우리 가족은 매번 주말마다 어디론가 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난 어린 시절의 일들이 많이 기억이 나진 않는다.


오은영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어릴 때 감정 교류가 별로 없었으면 그때의 일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때를 떠올리면 외롭고 쓸쓸한 기분이 들 뿐이었다.

엄마는 나를 따뜻하게 바라봐 준 적이 없었다.

늘 무엇인가 하느라 바빴다. 아빠도 늘 바빴다.


엄마 아빠는 서로하고도, 우리하고도 감정교류가 거의 없었다.


단 한 번도 “부모님이 날 정말 좋아하는구나”라고 찐하게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나는 이날 이때까지 부모님이 날 좋아하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


날 잘 키워주셨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나를 의무감에 키워주신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게 너무 서글프다. 사랑의 언어가 다른게 이렇게 비극적이라니.





이런 말을 내가 부모님에게 한다면 우리 부모님은 기막혀하며 쓸데없는 이야기를 한다고, 철이 없다고 할 것이다.


“부모가 자식 사랑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니?”라며 언제나처럼 나를 유난스러운 취급 하실게 분명하다.


하지만 부모님은 벌써 여러 번 내가 실망스러웠다는 이야기를 명백하게 하셨다.


내가 태어나서 실망, 내가 부모님이 원하는 직업을 안 가져서 실망, 내가 부모님 보시기에 변변치 않게 살고 있는 것 같아서 실망.


늘 그렇게 실망했다는 말 뒤에는 그래도 이 정도면 잘 지내서 만족한다는 식의 말을 덧붙이긴 했다.


허나 부정적인 말은 명백하게 듣고 긍정적인 사랑의 의미는 유추해 내야 하는 이 환경 속에서 내가 부모님께 사랑을 받았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그게 정말 내 잘못일까?


그렇다 보니 내가 나를 진정으로 좋아하기까지 참 힘이 들었다.

나도 나를 좋아하고 싶었는데.

입으로는 내가 나라서 좋다고 해도, 마음속 깊은 곳에는 명백한 확신이 없었던 것 같다.




내가 받지 못한 사랑, 내가 나에게 줘야겠다


그래서,

앞으로 가기 위해 뒤를 돌아보는 지금, 나는 이런 나를 어떻게 달래야 하는걸까?


먼저 나를 못미더운 존재로 바라보는 내 시선부터 바꿔야 한다.


나는 깨달았다. 내가 받지 못했던 그 무조건적인 사랑을, 이제는 내가 나에게 줄 수 있다는 것을.


어린 시절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네가 태어나서 정말 좋아.
네가 여자아이로 태어난 것도,
네가 바로 너인 것도 완벽해.
넌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어.


부모님의 사랑 표현 방식이 내가 원했던 것과 달랐을 뿐, 그분들도 그분들 나름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하셨다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나에게 필요했던 그 따뜻한 말들을 해줄 수 있다.


만약 당신도 나와 같은 상처를 안고 있다면, 이것만은 기억해 주길 바란다.


당신이 태어난 것은 실수가 아니에요.
당신의 존재 자체가 이미 충분히 값어치 있어요.
부모에게 받지 못했던 사랑이 있다면,
이제는 스스로에게 그 사랑을 줄 수 있어요.

치유는 하루아침에 되지 않지만, 조금씩 나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연습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정말로 나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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