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날 다시 키우기로 했다.
내가 아이를 낳고 나서 자주 떠오르는 부정적인 생각들 때문에 너무 힘들었을 때,
엄마는 내가 더 바쁘게 살아야 그런 생각을 안 할 거라고 했다.
난 이미 일하랴 애 키우랴 아주 바쁘게 살고 있었는데도…
여기에서 엄마의 감정대응방식을 볼 수 있다.
엄마는 아무리 힘들고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일 때에도 그 감정을 직면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저 다른 바쁜 일들을 하며 올라오는 감정을 잊고, 무시한다.
그러니 나의 감정적인 요구가 엄마에게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난 어렸을 때 꽤 자주 엄마에게 나와 침대에 누워 이야기하자고 청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평소에 엄마가 주지 않는 친밀함과 다정함을 느끼고 싶어서 그런 요청을 했더랬다.
그 수많은 요청 중에 단 한 번만이라도 엄마가 나를 따뜻하게 바라보며 다정한 말을 해주었더라면, 정말 딱 한 번이라도 좋으니 내가 사랑을 찐하게 받는 느낌이 들게 해 주었더라면,
나는 조금 더 달리 살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그런데 우리 엄마는 그렇게 해주지 못했다.
내 이런 청을 귀찮아하고 나를 별난 아이 취급했다.
내 몸이 아픈 것에는 그렇게 걱정을 해주던 엄마가 내 마음이 아픈 것에는 인색했다.
지금의 난 엄마가 왜 그랬는지 잘 이해한다.
내가 싫거나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엄마가 가지지 못한 것을 줄 수 없어서였다.
엄마 당신도 자신의 감정을 수용하고 있지 않고 내버려 두거나 없는 것 취급을 하시는 분이시니까.
그러나 내 안에 울고 있는 아이는 계속 엄마의 사랑에 목매고, 갈망하고, 엄마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다.
엄마가 왜 나를 따뜻하게 바라봐주지 않는지 너무 속상해한다.
이 불만족된 어린아이의 욕구는 성인인 나와 자꾸 부딪히고, 날 더디게 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엎어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
시간을 돌이킬 수도 없고 돌이킨다 한들 할 수 있는 게 없다.
부모님이 내가 원하는 방식의 사랑을 주지 못한 것은 그들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우리의 사랑의 언어가 달라서니까.
그래서 결심했다. 내 안의 아이들을 내가 다시 돌봐야겠다고.
내가 받고 싶었던 따뜻한 양육을 내 자신에게 주어서, 튼튼하게 자라게 해야지.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안의 의심들이 내게 묻는다.
그 상처가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시간 들여 이런 글을 쓰고 있니?
쓸데없는데 힘 빼는 게 딱 너답다.
그런다고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하여튼 쓸모없는 일 벌이는데 선수라니까?
얄미운 말만 골라서 하는 의심의 목소리.
할 수만 있다면 손을 번쩍 들고 그런 말은 다시 꺼내지도 못할 정도로 한 대 때려주고 싶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사라질 의심이 아닌 걸 안다.
그리고 나는 이제 나를 이해하는 법을 조금 더 배운 사람이기에, 그에게 말한다.
“응, 너 또 나왔구나.
너 또 내가 상심할까 봐 미리 나한테 경고하는구나.
그런데 나, 네가 그렇게 말해도 이거 할 거야.
내 안의 소리들을 꺼내놓을 거야.
너도 나중엔 나한테 고마워할걸?
그러니까 거기서 아니꼽게 보고 있지만 말고,
나 깎아내릴 힘 있으면 와서 벽돌 하나라도 같이 쌓아.
그게 더 생산적이야.
모래 치료에서 내가 다 무너뜨린 모래더미를 보고, 선생님이 말했다.
“잘했어요. 이렇게 무너뜨려야 또다시 세울 수 있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 나는 다시 잘 세우고 싶어서 무너뜨리는 거다.
앞으로 가고 싶어서 뒤를 보는 거다.
이 끝에 나는 한결 더 가벼워진 마음으로 걸어갈 것이다.
이제는 상처에서 많이 벗어난 수많은 나와 함께, 조화롭게.
앞으로,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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