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낳고도 딸 생각이 간절했던 이유

칼 융을 아시나요?

by 은제인
칼 융을 아시나요?
그를 만나기 전까지,
내가 왜 그토록 딸을 원하는지 몰랐습니다.


이상하게도, 나는 아들을 낳자마자 딸을 꼭 낳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들의 이름과 같은 초성으로 이름도 지어놓고,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딸 생각을 했다.


참 이상했다. 아들을 보면서 부족함 없이 너무 행복함에도 계속 딸을 생각하다니.


딸들이 더 다정하고 엄마에게는 딸이 꼭 필요하고 하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냥, 나도 모르게 딸에 대한 이해하기 힘든 집착이 점점 더 커져갔다.


어서 딸을 낳아서 키워줘야 하는데 내 나이가 너무 많은 것 같아서 초조한 마음까지 들었다.


언제 정도면 몸을 좀 회복한 후에 일을 조금 더 하고 다시 딸을 임신할 수 있을지 곰곰이 시기를 추측해보기도 했다.


나 자신도 이해하기 힘들었던 딸에 대한 열망.


그 이유를, 나는 융을 알고 나서야 이해하게 되었다.




융을 만나고 나서야 이해한 것들


모래놀이 치료를 해 가면서 자연스레 이 치료의 기반이 된 칼 융의 정신분석에도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융의 이론을 아주, 아주 짧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융은 우리가 진짜 '나'가 되려면 내면의 어둠까지 포용해야 한다고 했다.


그 포용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우리를 자기(Self)와의 일체로 이끌어주는 개념들은 다음과 같다.


페르소나 - 사회가 요구하는 가면

그림자 - 억압하고 버려둔 나의 일부

콤플렉스 - 무의식의 감정 덩어리

아니마/아니무스 - 내 안의 이성적 원형


이들을 통합해야 비로소 온전한 자기(Self)가 된다.


어려운 이론설명은 여기까지, 앞으로 필요한 부분은 그때그때 더 자세히 설명해 나가도록 하겠다.




혼란스러울만하니까 혼란스러웠고, 방황할만하니까 방황했구나


융의 이론을 내게 대입시켜 보니 내가 겪고 있는 혼란이 더 확실히 이해가 되었다.


나는 나름 원만한 유년기를 보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내가 태어났던 당시 흔했던 남존여비 사상에 의해 딸로 태어나서 실망을 안겼다는 죄책감을 갖고 살았다.


그것이 내 가장 큰 그림자이자 콤플렉스 중 하나다.


그걸 만회하기 위해서, 그리고 아빠의 인정받기 좋아하는 성격을 물려받아서 나를 마음껏 뽐내고 살다가, 모난돌에 정 맞듯 왕따를 겪었다.


그리 길지는 않았어도, 내게는 너무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래서 그 후에는 나의 타고난 성격을 죽였다.


그리고 눈에 띄기 싫어하고 조용한 엄마의 성격을 내 페르소나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해야지만 미움받지 않고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조용하고 억압되어 있는 페르소나는 내 본성과 일치하지 않아서 괴로웠고 우울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절대 튀면 안 되고 자기들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어떻게든 찍어내리는 분위기였는데,


대학교에 와보니 자기 개성을 마음껏 뽐내면서 자신을 발산하는 아이들이 많았고, 심지어 그게 권장되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내 페르소나를 깊게 학습한 터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괴로워했다.




오랜 외국생활을 하면서도 그곳에 맞는 가면을 만들어 쓰고 다녔다.


한국에서 나는 그래도 내 주장을 숨기지는 않는 여자였고, 주변 남자들에게 “제인아, 남자들은 내숭을 좋아해.”라는 말을 들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오래도록 거주했던 한 유럽국가에서 여성들은 훨씬 더 자기 소리를 뚜렷하게 내었고, 나는 거기에서 아주 얌전한 사람에 불과했다.


그래서 나도 더 주장을 더 강하게 어필하는 습관을 들였다.




이 모든 모습이 다 나이지만, 어느 하나도 온전한 나를 대표할 수는 없었다.


여기에 가면 내 다른 한쪽이 죽어있는 느낌이었고 저기에 가면 또 다른 내 한쪽이 죽어있는 느낌이었다.


공항에 도착해서 비행기에서 내릴 때, 내 다른 한쪽을 버려두고 내려야 했다.


그리고 아이를 낳고 막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하면서 나는 갑자기 수면 위로 떠오른 수많은 콤플렉스와 그림자 때문에 괴로움을 겪었다.


평소에는 얼추 억눌러두었던 그들이 나를 잔인하게 공격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는 비로소 내 자아가 자기로 향하는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는 신호였다.


내 안을 보고, 내가 세상에 적응해서 살기 위해 억압해 놓았던 여러 나를 만나고, 그들을 다시 숨 쉴 수 있게 해야 했다.




또한 융에 따르면 청년기까지는 아직 페르소나를 학습하는 시간이다.


진짜 자기실현은 중년에 가능하다.


(융은 이 시기를 35세~40세로 말했지만, 1875년생인 그가 살았던 시대와 현재는 나이에 따른 역할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자기실현의 때가 이 시기보다 훨씬 늦어졌다고 해석하는 학자들도 많다)


얼마나 다행스럽던지.


지금껏 내 안의 수많은 페르소나가 나 자신과 일치가 안되어서, 그리고 심지어 그 페르소나들끼리 서로 싫어해서 늘 전쟁 같았던 내 마음속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지금까지 나와 화해하려는 노력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아직 ‘때’가 오지 않은 것일 뿐이었다.




누구나 페르소나와 자신의 불일치 때문에 혼란을 겪는다.


하물며 나처럼 외국에서 너무 오래 살고, 두 개 나라에서 너무 다른 모습으로 살았던 사람은 어떻겠는가.


‘너무 튀면 정 맞는 한국에서의 나’ 그리고 ‘유럽에서도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사는 아시아 여성’


‘속마음을 말하면 미움받는 나’ 그리고 ‘내 개성과 색채를 마음껏 표현하고 싶은 나’


‘헤퍼 보이면 큰일 나는 조신한 여자’ 그리고 ‘자유롭게 사랑하고 싶은 여성’


‘숨고 싶은 나’ 그리고 ‘인정받고 싶은 나’…


이들이 놀이 공원의 범퍼카처럼 끊임없이 충돌했다.


혼란스러울만하니까 혼란스러웠고, 방황할만하니까 방황한 것이다.


내가 너무 별스럽거나 내가 너무 예민해서, 나약해서 생긴 일이 아니라,


다만 내가 내 안의 변화에 굉장히 민감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혼란을 더 분명하고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융을 만나 나를 더 이해하게 되었고, 여기서 위로받았다.








내 혼란이 당연했다는 그 깨달음을 얻은 후에, 나는 약간 머리가 멍해진 상태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잠에 들려는 찰나, 하나의 생각이 불현듯 찾아왔다.


내가 딸을 낳고 싶었던 게 아니라,


나 스스로가 간절히 다시 태어나고 싶었던 것이라는 걸.


내 안의 상처받은 여자아이를,


이번엔 제대로 환영하며 키워주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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