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언저리의 커다란 상처덩어리
융을 알고 난 후, 툭툭 올라오는 부정적인 기억들이 모두 내 잠재의식 혹은 무의식 속에 숨어있는 치유되지 못한 콤플렉스 혹은 그림자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아직 내가 완전히 소화할 수 없던 상처덩어리라서 자꾸 올라오는 거라면, 난 기꺼이 그들의 말을 들어주어 충분히 소화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어서 빨리 그 안의 상처받은 ‘나’들을 만나고 싶었다.
명상을 위해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 눈을 감고 숨을 고르게 했다.
그리고 완벽한 이완을 위해 몸을 이리저리 더 움직였다.
몸은 저절로 움직이듯 스스로 편해지는 방향을 찾아 이리저리 쭉쭉 뻗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내 내면의 깊숙한 곳까지는 아닐지라도 표면 아래까지는 닿을 수 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아파서, 심장 언저리에 뭉쳐진 거대한 아픔 덩어리.
그걸 마주하니 잠깐이었지만 서러운 눈물이 흘렀다.
내가 나쁜 사람이라고 나를 강압하고 호도하는 내 안의 목소리
그리고 거기에 맞서서 그래도 힘을 내보겠다고, 나는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나는 실수를 많이 할 수는 있겠지만 늘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나를 변론하는 또 다른 나.
이 지겨울 정도로 번복되는 다툼이 너무 지치고 힘들었다.
감정의 토로 같은 눈물을 흘리고 난 뒤,
나는 내 불안의 원인을 조금씩 더 따라가 보기로 했다.
상처의 뿌리를 찾기 위해 기억을 거슬러 올라갔다
난 고등학교 2학년 때 한 학기가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나는 학교에서 쾌활하게 잘 지내는 아이였고 존재감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하루아침에 천지가 뒤바뀌듯 일어났던 그 일이 충격적이었다.
학창 시절의 난 마음속이 많이 불안했기 때문에,
외부에서 오는 인정과 평가를 내 자존감의 원천으로 삼았다.
즉, 누가 칭찬해 주면 자존감이 높아졌고, 누가 칭찬해주지 않으면 안절부절못했다.
그렇다 보니, 나는 칭찬을 받기 위해서 참 열심히 살았다.
외모를 예쁘게 유지하려고 늘 노력했고, 성적도 늘 상위권을 유지했고, 그림도 열심히 그리고, 글도 열심히 써서 이런저런 칭찬도, 상도 많이 받았다.
내겐 이런 외부의 인정이 너무 중요했는데, 내가 혼자 있을 때 칭찬해 주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꼭 다른 사람들이 있을 때 내 가치를 인정받길 바랐다.
누가 칭찬해주지 않으면, 민망하게도 내가 스스로 잘한 점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고 억지 인정이라도 받아냈다.
그래야만 내가 가치가 있는 사람 같았다.
이런 나르시시스트적인 패턴 때문에 주변 친구들을 잘 배려하지 못할 때도 있었을 것이다.
분명 내가 잘못한 것도 있을 것이고, 또 내가 그냥 아니꼬워서 싫어하는 아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게 쌓이고 쌓여서… 어느 날, 터져버렸다.
내가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날 불러내서 나에 대한 불만을 하나부터 열까지 토로하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 당황스러웠다.
내 입장에서는, 내게 불만이 있으면 그때그때 말하지 왜 아무 말 않고 참고 있다가 이제 와서 쉬는 시간마다 날 불러내서 항의해 대는지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 친구가 본인의 편견이 섞인 나에 대한 소문을 하나하나 내기 시작하면서 나는 점점 많은 아이들의 적이 되었다.
마치 마녀사냥 같았다.
모두가 나를 둘러싸고 나를 비난하고 있었으니까.
냉정히 생각해보면 반 아이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반 이상이 내 뒷이야기를 하고 나를 욕하고 다닌 것은 확실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원래도 주변에 영향을 잘 받는 내가 잔뜩 겁을 먹기에 충분했다.
나에 대한 루머가 돌고 돌며 몸집을 키워나갔고, 이제 다른 반 아이들도 나에 대해 수군대기 시작했다.
여기서 내가 정말 충격받았던 점은, 나에게 불만을 쏟아낸 친구가 내가 큰언니처럼 의지하고 믿었던 친구라는 점이었다.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 친구가 내게 와서 토로한 불만 중 일부만 정당하다.
그러나 당시의 나는 너무 당황하고 겁을 먹어서, 아이들이 우르르 나한테 몰려와서 내게 틀리고 잘못했다고 하며 비난을 쏟아붓는 게 너무 무서워서, 그들의 말을 전적으로 믿기 시작했다.
그래, 내가 뭔가 크게 잘못했으니까
내가 이런 상황에 처한 걸 거야.
다들 나한테 뭘 잘못했다고 하니까
분명 내가 문제가 있겠지.
이렇게 생각하려 노력했지만, 사실 난 너무도 억울했다.
애들이 나를 비난하는 것 중에, 사실이 아닌 게 훨씬 많았으니까.
루머가 퍼져나가는 방식은 참 교묘했다
하루는 꿈속에 우리 학교에서 제일 잘생기기로 유명한 남자애가 내 꿈에 나온 적이 있었다.
왕따가 시작되기 전, 나는 그냥 옆자리 짝꿍이던 아이에게
“나, 그 남자애가 꿈에 나왔다? 웃기지?”라고 흘려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소문은 갑자기 내가 그 남자애를 꼬실 거라고 나있었다.
그래서 그 남자애를 좋아하는, 소위 말하는 노는 애 중에 한 명이 나한테 와서 “네가 뭔데 걔를 꼬셔?”라는 식으로 나에게 화를 내었다.
그리고 그 애의 친구가 수업시간에 “나는 남자 밝힘증”이라는 포스트잇을 적어서 내 등에 붙여놓기까지 했다.
나를 비난하는 욕이 담긴 익명의 문자도 받았다.
그런 식으로 억지 소문이 퍼져나가면서, 말도 안 되는 괴롭힘을 당하는 일상이 되풀이 됐다.
나는 이 모든 상황이 너무도 이해가 되지 않아서, 내 탓을 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잘못이라 생각하면, 내가 바뀌면 이 상황도 바뀔 수 있으니까, 나아질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하루아침에 성격을 바꿨다.
나의 장점은 모두 숨겼다.
외모를 칭찬받으면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고, 열심히 쓰던 글도, 그림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공부도 하지 않았다.
그저 생존하며 버틸 뿐이었다.
성적은 곤두박질쳤다.
아이들은 매 시험마다 내 등수를 유추해 보면서 내 성적이 떨어지는 걸 기뻐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내 안의 한 부분이 죽었다.
나는 자랑하고 뽐내길 좋아하는 아빠 성격을 물려받은 탓에 내가 이런 수모를 당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빠하고 성격이 반대인, 자신을 드러내는걸 극적으로 꺼리는 엄마의 성격을 나의 성격으로 삼기로 했다.
그 후로 지옥 같은 2학년 2학기가 꾸역꾸역 흘러갔다.
정말 죽고 싶었다.
창문을 보면 내가 죽어야 이게 끝날까 한참을 고민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난 분명 나중에 잘 살 텐데, 여기서 죽으면 너무 억울해!”라는 반발심이 먼저 들었다.
이것만 어떻게 버티면 다 괜찮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매일 학교로 돌아가서 지옥을 견디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나는 등교거부를 하고 싶었지만, 학교에 가라는 엄마의 간청 때문에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어떤 간청을 해도 나를 전학시켜주지 않았다.
네가 여기서 도망가면, 앞으로 힘들 때마다 도망가는 삶을 살게 될 거야.
이게 엄마의 논리였다.
엄마는 내가 어떤 수모를 겪는지 정말 알았을까?
나를 어떻게 뜯어먹을까 매일 궁리만 하는 늑대들로 가득한 학교로 향하는 양 같은 내 공포심을 엄마가 정말 이해했을까?
정말 날 이해했다면 분명 나를 전학시켜 줬을 텐데.
분명 나를 이 괴로움에서 구해주려고 했을 텐데.
집에서도 내가 얼마나 절박했는지 이해받지 못한 나는,
결국 하나의 소동을 계획했다.
이 소동을 겪으면 엄마도 분명, 내가 얼마나 괴로운지 깨달을 거라 생각했다.
(다음 회에서 이어집니다)
**깊고 내밀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댓글허용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라이킷과 구독를 통해 응원해주시면 저의 쓰기에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