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에 흥건했던 내 아픔

그때 나는 도망쳤어야 했다

by 은제인


(이전 편에서 이어집니다)



엄마에게는 내가 매일 지옥 같은 학교에 가는 고통보다 고등학교 졸업장을 무사히 받는 게 더 중요했다.

엄마는 연거푸 말했다.


니가 이 정도 시련에서 도망치면, 앞으로도 계속 도망치게 될 거야.



하지만 나는 학교로 가는 그 길이 너무나도 끔찍했다.

날 어떻게 괴롭힐지 궁리만 하는 아이들이 가득한 그곳으로 매일 가야만 하는 내 마음이 어떨지

엄마는 정말 몰랐을까?


결국, 나는 내가 얼마나 힘든 시간을 겪고 있는지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에 소동을 하나 계획했다.


내 계획은 깔끔했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보여주자.
그리고 전학을 허락받자.



감기 치료차 병원에 갔을 때, 나는 주사 치료 후 버려진 주삿바늘을 하나 챙겼다.


집에 와서 고온과 알코올로 소독한 뒤 방으로 들어왔다.


(이 행동은 매우 위험하다. 고온과 알코올 소독으로도 죽지 않는 균이 있다.

나는 단순히 운이 좋아서 B형·C형 간염이나 HIV 같은 병에 걸리지 않은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누구라도 절대 모방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와서, 손목에 불거져 나온 핏줄에 주사 바늘을 꽃았다.

주사 바늘의 반대방향에서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붉은 피가 흘러 흘러나와서, 방바닥에 핏자국이 점차 커져갔다.

막상 피를 보자 좀 걱정이 되긴 했지만, 나름 냉철하게 내린 결정이었으므로 나는 침착했다.


내 목표는 단 하나였다.


엄마가 이걸 보고, 내가 얼마나 괴로운지 비로소 이해하고, 그리고 나를 전학시켜 주도록 설득하는 것.




피를 뺀 뒤 주삿바늘을 빼고 누군가 발견해 주기를 기다렸다.


곧 집을 돌아다니던 초등학교 고학년 동생이 내 방에 들어와 바닥 가득 번진 피를 보고 놀라 엄마를 불렀다.

(나는 이 일을 동생에게 평생 미안하게 생각한다).



엄마는 방에 들어와 나를 보고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방을 나가서 걸레를 가지고 들어왔다.

아무 말 없이 피를 닦던 엄마는, 나를 바라보지 않고 말했다.


그래서, 이제 속이 좀 시원하니?


엄마는 감정적인 동요를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우리 엄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엄마의 세상에서 고등학교를 중퇴한다던가, 따돌림 때문에 전학을 간다던가 하는 건 절대 용납되지 않았다.


나의 이 어리석은 소동극이 엄마에게 전혀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 걸 보면서,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냥 무기력하게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말도 안 되는 수군거림과 조롱을 견디면서.



아이들은 나를 괴롭히는 것으로 단결했고, 그 유대감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 같았다.

그 후로 학년이 바뀌기까지 나는 죽은 것처럼 지냈다.


다행히 나를 가엾게 여겨 먼저 손 내밀어주고, 밥도 같이 먹어준 친구들이 있었다.

본래의 무리에서 버려지고 혼자된 나를 무리에 넣어준 다른 친구들에게 평생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다.

비록 그 사건 이후 사람을 믿기 어려워진 나는 그 친구들과의 관계를 학년 너머로 이어가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 시기의 일은 내 삶 전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비이성적인 공포감 때문에 나는 자주 얼어붙고, 잠을 이루지 못하고, 불안에 시달렸다.



아직도 내 안에서는 그 시기의 내가 울부짖고 있다.

제발 나를 그 학교로 보내지 말아 달라고.

나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소문을 내고 나를 괴롭히는 아이들로부터 나를 분리해 달라고.


제발 나 좀 살려달라고…





고등학교 3학년이 되고, 내 어두운 길에 빛이 조금이나마 들어왔다.

남녀 합반이 된 것이었다.


내가 선택한 과목들은 여자아이들에게 선호가 낮은 과목들이었기 때문에 40명이 좀 넘는 우리 반에 여자아이들은 단 아홉 명뿐이었다.


남자아이들은 여자애들 사이의 루머라던가 그런 것에는 무지했다.

남자아이들은 단순하면서도, 급식 반찬 문제로 몸싸움까지 불사하는 때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엉뚱한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우리 반에 들어온 여자애들도 한 명을 제외하고는 다들 착하고 학업에만 몰입하는 친구들이었다.

그래서 참 좋았다.


나는 등교할 때나, 교실바깥을 나가거나, 수준별 수업을 위해 다른 반과 섞일 때는 제외하고는, 교실 안에서만큼은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따돌림이 있기 전만큼은 아니었지만 지각이나 결석도 잦아들었다.


나의 등교가 조금 더 수월해지면서 엄마는 엄마의 결정이 맞았다면서 의기양양했다.


우습게도, 나 또한 엄마의 결정이 맞았다고 10년 정도를 생각했다.


그러나 그 후에 이어진 삶에서, 내가 알 수 없는 공포심으로 번번이 고생을 하고 나서야 엄마의 선택이 정말 옳은 것이었나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진격의 거인]을 보고 느낀 공포


며칠 전, 모래놀이치료에서 나는 얼마 전에 본 [진격의 거인]이라는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했다.


거인들이 몰려와 사람들을 우적우적 씹어먹었고, 성벽 안에 살던 인간들은 독에 든 생쥐처럼 어쩔 줄을 모르고 그냥 당하고 있던 장면을.


누구나 끔찍하다 느낄 장면이었지만, 나는 며칠을 그 장면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워했다.


같이 본 남편은 괜찮은데 왜 나 혼자 이렇게 무서워할까 생각해 봤다.


생각 끝에, 극속에서 인간들이 꼼짝도 못 하고 공격받는 장면이 마치 고등학교 때의 나와 꼭 같아서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의 나, 도망쳤어야 했다


그리고 내 상담선생님인 C선생님께 이런 나의 공포심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때 엄마의 결정과 대처는 옳지 않았던 것 같다고, 나는 전학을 갔어야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당연하죠!”라고 하셨다.

현재 학폭에 대처하는 기조가 가해자와 피해자가 우선 분리되는 식으로 바뀐 걸 보더라도, 그때 나는 분리되어야 했던 것이 맞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위안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과거로 돌아가서 나를 구해주지 못해 너무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나는, 그 시기에 가해자들과 분리가 되고, 회복하고, 그러고 나서 그다음을 생각했을 텐데.



그랬더라면,

그다음에 일어났던 더 끔찍 일에서도 나를 보호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음 글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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