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기 - 첫번째 이야기
어중간한 경력에 1년의 공백은 이전 회사보다 나은 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괜찮은 곳들은 죄다 계약직이다 보니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다 경력을 포기하고 떠난 여행은 아주 달콤했지만 그만큼 씁쓸했다. 같은 시기에 취업한 친구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차지하며 위로 향하고 있었다.
비자가 끝나가는 건 어떻게 알고 이곳저곳에서 연락이 왔다.
' 취업 준비는 하고 있니?', '저축은 하고 있니?' 등 질문 안에 무수히 많은 뜻이 담겨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애써 외면했다.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씩 결혼할 때, 새로운 경험과 미래를 위해 떠났는데 어쩐지 더 뒤처진 느낌이었다. 해외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나 자신을 갉아먹지 않도록 현재 최선을 다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한국에서의 삶은 단순했다. 오전 여섯 시 출근길을 시작으로 오후 여덟 시까지 회사에서 시간을 보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오후 열 시였다. 주변에서 퇴근 후 제2의 삶이 시작되었다고 취미를 만들라고 이야기 하지만 집보다 회사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취미 생활을 꿈도 꿀 수 없었다.
일주일에 하루 있는 휴무는 다음 주를 위해 잠으로 시간을 보냈다. 이런 생활을 2년 하다가 현타가 제대로 한번 왔었다. 캘린더엔 회사 일정으로 가득하고 집에 가면 회사 관련 교육자료, 판촉물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쉬어야 할 집에서 조차 나를 위한 공간은 직사각형 침대 위뿐이었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 지쳐있을 때 즈음 호주 워킹홀리데이 경험이 있던 동료들이 호주 생활을 그리워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시 출퇴근은 기본이고 퇴근 후 커피 수업을 듣다가 적성에 맞아 바리스타로 일했다고 한다. 영주권만 취득할 수 있었으면 호주에 남아 있었을 것이라며 추억을 되새김질할 때 거기서 가능성을 느꼈다. 그 뒤로 해외여행, 해외 취업에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며 하루하루를 버텼었다.
해외 생활에 대한 불씨가 꺼져갈 때 즈음 임용고시를 도전하는 친구로부터 일을 그만두면서 까지 왜 해외에 나오고 싶어 했는지 상기시켰다. 아직 호주에서 해보지 못한 게 많아 이대로 가면 아쉬움이 많이 남을 것 같았다.
워홀이 끝나고 귀국하나 일 년 뒤에 귀국하나 어차피 경력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번 더호주 생활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20대의 도전의 가장 큰 장점은 실패해도 20대이지 않은가! 막차는 예외로 합시다.
또 다른 일 년, 이 기간 동안 어떤 것을 얻어갈지 미지수지만 그 친구가 도전한 시간을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 것처럼 이번 호주 생활에 최선을 다해야겠다.
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