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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퍼 Oct 18. 2021

오리엔테이션

1학기  여섯번째 이야기

설레임 가득한 날은 뭘 해도 기분이 좋다. 별똥별을 본 것처럼 눈이 반짝이고 눈앞에서 신호등이 빨간색으로 바뀌어도 너그러이 용서해줄 수 있다. 대학 졸업한 지가 언젠데 설렘 가득하다 못해 넘쳐나 온몸이 간질거리는 것 같다.  첫날은 오리엔테이션 시간이었다. 간단한 필기도구만 가져와도 된다고 했는데 새내기 느낌도 낼 겸 노트북도 챙겼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어색한 공기를 어떻게든 뚫고 자리로 가야 하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식은땀이 흐를 찰나 다행히 뒤에 학생들이 와서 가방 속에 구겨진 종이처럼 어딘가에 끼어 앉았다.  


생각보다 다양한 인종의 친구들이 있었다. 옆 사람들과 간단한 눈인사를 하고 서로 핸드폰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언어교환 카페에 처음 갔을 때 느낌이었다.  테이블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있다 갑자기 누가 옆에 앉으면  몇 마디 하고 흐르는 어색한 기류가 딱 그때 느꼈던 느낌였다. 서로 먼저 다가와줬으면 하지만 누가 먼저 시작할지 지켜보는 눈치게임.  용기 내서 인사했지만 대화가 이어지지 않아 그저 빨리 시작하길 바랄 때쯤 담당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오리엔테이션 첫 번째 시간은 학생들이 학교에 다니면서 기본적으로 꼭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 학생들은 학교에서 내주는 과제를 제때 제출해야 한다.  

 - 정해진 기간 안에 제출하지 않을 시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 출석률 80% 이하 일 경우 경고 조치이며 학생비자가 취소될 위험이 있다.  

 - 학기는 4/4분기로 이루어지며 1분기당 3과목을 배운다.


내용을 들으면 당연한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선생님은 한 사람도 낙오 없이 수료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며 신신당부를 했다.  출석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이미 유학원에서도 귀 아프도록 들었다.  과제 제출이 늦어지면 학교에서 조치를 취할 수 있지만 출석률은 이민성에서 수시로 확인하기 때문에 어떤 조치도 취해줄 수 없다고 한다. 


두 번째 시간은 과제에 대한 이야기였다. 각 과목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샘플 자료를 보여주었다. 과목마다 롤플레잉 혹은 프레젠테이션이 랜덤으로 나오는데 사람들 앞에서 발표해야 하며 대본은 절대로 들고 나오면 안 된다고 한다.  사람들 앞에서 떨려서 말도 못 하는데 대본 없이 발표해야 한다니 가장 부담스러운 과제였다. 



세 번째 시간은 학생의 근로 권리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학생은 주에 20시간 일할수 있으며 이 이상 시간을 초과하여 근무를 할시 학생비자가 취소될 위험이 높다고 한다. 파트타임, 캐주얼이 가능하며 파트타임은 풀타임과 같은 조건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워홀 때 한인 업체 면접 볼 때 파트타임에도 불구하고 유급휴가, 연금은 없다고 했는데 그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근무 가능한 시간만 다를 뿐 풀타임과 파트타임 같은 조건이라는 것을 알고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타지에서 일하면 그 나라 노동법에 대해서 한 번쯤은 알아봤어야 했는데 알아보지 않은 내 잘못도 있었다.   

불합리한 일을 당할 경우 언제든지 학교 측에 이야기해도 되며 노동법에 관련된 내용은 페어 워크에서 찾아볼 수 잇다며 안내장을 받았다. 


마지막 시간은 서류 작성 시간이었다. 기본적인 개인 정보, 비상 연락망, 개인 정보 이용 동의서 등 수십 장의 종이를 받았다. 서류 작성만 하면 집으로 갈 수 있는데 읽고 또 읽어봐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았다. 주변 사람들은 30분 정도 걸린 것 같은데 난 2~3시간 걸린 것 같다. 


서류를 제출하고 나가려는 찰나 갑자기 사진을 찍어야 한다며 화이트보드 앞에 세워두었다.  어디에 쓰이는 사진인지 물어보니 학생증에 들어갈 사진이랜다. 사진을 찍어주던 분은 셔터 딱 한 번만 누르고 홀연히 사라지셨다.  서류 작성할 때 머리를 얼마나 쥐어뜯었는지 나중에 학생증을 받았을 때 왼쪽 머리가 소 핥은 머리 같았다. 


영혼 탈탈 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호주에 있으면서 꼭 알아야 할 내용들을 알게 되어 나름 유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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