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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퍼 Oct 02. 2021

날 좋아해 줘서 고마워.

부제 : 버팀목

쉬는 날이면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을까? 

생산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며 어떻게든 밖에 나오게 하려고 너의 노력이 가상해서 오래전 운동하려고 사두었던 신발을 꺼내 신었다. 


귀찮은 것도 잠시 걷다 보니 햇빛이 원래 이렇게 따사로웠던가 생각하며 피부를 통해 숨을 쉬었다. 맨살에 따스함이 전해질 때 이불속에 있는 것처럼 포근했다. 


주인이 산책이라는 단어를 꺼내기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모습에 

그동안 집 밖에 안 나오고 어떻게 살았는지 나를 신기하게 쳐다봤다.


하늘이 얼마나 푸른지

햇빛은 얼마나 따사로운지 

나무가 주는 그늘이 얼마나 시원한지 

발을 내딛을 때마다 하나도 놓치지 않도록 두 눈에 담기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밖에 나오는 걸 싫어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밖에 혼자 나오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길 위에서 혼자만의 시간은 출퇴근으로 이미 넘쳐났다.

 

답답한 마음에 몇 번 산책을 나가보았지만 정처 없이 바닥만 보고 걸었다.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해 고개를 들면 덩그러니 혼자 남겨져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부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산책이 아니라 자책의 시간이 되어버린다.  


오늘 하루는 왜 이렇게 힘들까?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나는 왜 이렇게 자신감이 없을까?

퇴근해서 까지 회사일에 주눅 드는 내 모습이 싫다.


날씨가 좋아서 일까? 아님 너와 같이 있어서 일까? 평소와 같이 걷던 길인데 바닥을 볼 시간이 없었다. 그러다 돌다리 틈에 발이 빠져 한쪽 발이 다 젖었다. 


그 소리를 듣고 토끼눈을 한 나와 깜짝 놀란 너의 눈이 마주칠 때 오랜만에 소리 내어 웃었다. 실수할까 노심초사하며 걱정하는 모습은 어디 가고 평소에 하지도 않은 실수를 하며 우리는 크게 웃었다.


실수해도 주눅 들지 않게 해 준 너에게 고마웠다. 

오늘 하루 좋은 추억을 만들어준 너에게 고마웠다. 

굴속에 들어가 음침한 사람이 되어버릴 뻔한 나를 꺼내 준 너에게 고마웠다.  


그리고 생각만 했던 그 고마움을 너에게 이야기했을 때 해맑게 웃는 모습도 고마웠다. 

오늘은 목적지에 도착하고 돌아가는 길까지도 외롭지 않을 것 같다. 


'고마워, 내가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주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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