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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본주늬 Jan 24. 2022

프로듀스 유니콘 #01 쿠팡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Prologue

저는 주식을 참 좋아합니다. 아이폰도 좋지만 애플 주식을 더 좋아하고, 모델S는 못 사도 테슬라 주식은 살 수 있죠. 그런데 아무리 원해도 가질 수 없는 주식이 있습니다. 이렇게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 기업을 '비상장 기업'이라 하고, 그중에서도 기업 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이면 '유니콘 기업'이라 부르는데요. 바이트댄스(틱톡)나 스페이스엑스, 우리나라에서는 당근마켓이나 비바리퍼블리카(토스)가 대표적인 유니콘 기업입니다. 투자를 할 때 기업의 혁신 사례와 산업의 변화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요. 대한민국 유니콘 기업의 이야기를 전달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기 위해 '프로듀스 유니콘' 콘텐츠를 제작했습니다.



출처: 쿠팡


택배 배송이 하루 이상 걸리면 답답한 시대가 됐다. 옛날에는 며칠 동안 기다린 택배가 도착하면 선물을 받는 기분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기쁨마저 사치가 되어버렸다. 정말로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2021년 증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벤트가 무엇이었냐고 물어보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쿠팡의 뉴욕거래소 상장이라고 답한다. 대한민국 1호 유니콘이 결실을 맺은 일이기도 하지만, 100조 원에 가까운 기업가치로 미국 시장에 데뷔한 것이 충격적이었다. 쿠팡의 성공을 지켜본 대기업도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변화하기 시작했다. 쿠팡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이 대한민국 사회 전체를 바꿔버린 것이다.



[History] 소셜커머스부터 이커머스까지, 그 다음은?

출처: 쿠팡


2010년 한국계 미국인 김범석 대표(현 쿠팡 이사회 의장)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만난 지인들과 함께 자본금 30억 원으로 쿠팡을 설립했다. 당시 국내에는 스타트업이란 용어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쿠팡은 위메프, 티몬과 '소셜커머스 3총사'라고 불리며 커머스 업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소셜커머스는 스마트폰 대중화와 SNS 발달로 빠르게 성장했지만 업계 경쟁 심화, 쿠폰 고객 차별 대우, 서비스 퀄리티 저하 논란 등 위기에 봉착했다. 그러자 2012년 쿠팡은 전략을 수정해서 자체 물류센터를 짓고, 택배기사를 직고용하며 이커머스 인프라의 발판을 마련했다. 처음에는 무모해보였던 이 결정은 지금의 쿠팡을 만들어낸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이커머스 기업으로 진화한 쿠팡은 배송과 결제에서 혁신을 이루어냈다. 먼저 2014년 택배 역사를 바꾼 '로켓배송'을 런칭했다. 굳이 당일배송까지 필요한가 의구심을 가졌던 사람들도 이제 이틀만 지나도 현기증이 날 지경이 됐다. 그리고 2018년 월 2900 원에 무조건 로켓배송, 로켓프레시 등의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로켓와우' 멤버십을 도입했다. 한편 2016년 런칭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쿠페이'는 훗날 'OO페이' 전쟁의 서막을 알렸다. 2021년에는 'BNPL(Buy Now Pay Later)'이라는 후불결제 서비스를 통해 쿠페이를 신용카드처럼 쓸 수 있게 했다. 이렇게 쿠팡은 터치 몇 번으로 헐거워진 고객들의 지갑에서 돈을 빼가고 있다.



이커머스까지 장악한 쿠팡은 미국으로 향했다. 2021년 3월 11일, 쿠팡은 뉴욕증시에 데뷔하자마자 당일 주가가 40% 이상 상승하며 기업가치가 100조 원을 넘어섰다. 그렇게 실탄을 확보한 쿠팡은 본격적으로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다. 쿠팡이 다음 단계로 선택한 산업은 대표적으로 배달과 OTT다. 쿠팡이츠는 단건배달을 앞세워 단숨에 업계 3위까지 올라서며 업계 2위인 요기요를 턱밑에서 추격하고 있다. 그리고 쿠팡플레이는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라는 글로벌 OTT 양대산맥과 왓챠, 티빙, 웨이브라는 토종 OTT 3사 사이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최근 정치 풍자로 부활한 SNL코리아를 앞세워 도약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Business] 한국의 아마존을 꿈꾸다.

출처: 쿠팡


쿠팡이 영위하는 사업은 너무 많기 때문에 여기서는 이커머스 위주로 다루고자 한다. 쿠팡의 비즈니스 모델은 아마존과 거의 똑같다. 먼저 멤버십 매출이 있다. 하지만 로켓와우로 쿠팡이 버는 수익보다 드는 비용이 훨씬 큰데, 로켓와우의 핵심 목적은 수익 창출이 아니라 고객 확보이기 때문이다. 아마존이 아마존 프라임 멤버십으로 고객들을 아마존 생태계에 가둔 것을 생각하면 쉽다. 최근 쿠팡은 로켓와우 가격을 4990 원으로 인상(기존 고객 멤버십 가격은 6월까지 동결)했다. 그런데 의외로 2배 가까운 가격 인상임에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분위기다. 심지어 이 정도 혜택이면 월 4990 원보다 더 낼 수도 있다는 고객들도 상당히 많다.



다음으로 직판 매출이 있다. 우선 직판 모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픈마켓과 직판의 차이를 구별해야 한다. 대부분의 이커머스 기업은 구매자와 판매자를 연결만 하는 오픈마켓으로, 기업이 물건을 취급하지 않고 거래가 발생하면 수수료만 가져간다. 반면 쿠팡은 물건을 구입해서 창고에 보관하고, 주문이 들어오면 배송까지 직접 한다. 쿠팡의 직판 모델이 가능한 이유는 물류창고, 택배차량, 배송기사로 구성되는 인프라를 자체적으로 구축했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는 직판 모델은 오픈마켓 모델보다 비효율적이지만, 모든 사람이 쿠팡만 쓰게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 시점이 올 때까지 쿠팡의 자금이 버틸 수 있을지가 시장의 화두이다.



마지막으로 풀필먼트(물류 일괄 대행 서비스) 매출도 있다. 아마존은 대형 물류센터를 지어 직접 사용하고 남는 용량은 다른 기업에 돈을 받고 빌려준다. 아마존이 재고 관리, 보관, 포장, 배송, A/S까지 해주는 덕분에 소규모 사업자도 손쉽게 제품을 팔 수 있다. 쿠팡의 물류센터도 아마존의 발자취를 따라 풀필먼트의 중심지로 활용되고 있다. 판매자는 비용 부담이 줄어서 좋고, 구매자는 물건 배송이 빨라서 좋고, 쿠팡은 수익도 내면서 수많은 고객들의 소비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어서 좋다. 커머스 기업에게 '사람들이 어디에 돈을 많이 쓰는지'보다 중요한 데이터는 없다. 따라서 쿠팡 이커머스의 미래는 풀필먼트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Performance] 언제까지 투자만 할 건데?

출처: 쿠팡


쿠팡의 현재 상황은 썩 좋지 않다. IPO 당시 100조 원을 넘겼던 기업가치는 40조 원 밑으로 떨어졌다. 쿠팡이 돈을 잘 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는 큰 오산이다. 물론 어마어마한 돈이 쿠팡으로 들어온다. 하지만 그만큼, 아니 그보다 훨씬 많은 돈이 쿠팡에서 나간다. 쿠팡은 창립 이후 2021년까지 흑자 전환에 실패했다. 오히려 누적 적자만 5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적자를 내면서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기업은 금리 인상기에 버티기 힘든데, 여전히 돈 벌 생각이 없어 보이는 쿠팡에게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라는 든든한 후원자가 있다.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는 쿠팡에 2015년 10억 달러, 2018년 20억 달러 대규모 투자를 집행했다.



손정의 회장과 쿠팡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조 단위 적자를 감수하면서 판을 키울까? 아마존도 이익을 전부 재투자해서 주주들에게 비난받은 적이 있다. 그때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가 냅킨에 그림을 그려 자신의 비전을 모두에게 이해시켰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바로 비용 효율화를 통해 가격을 낮추면 고객 경험이 향상되고, 트래픽이 몰리면 판매자가 유입되어 상품군이 확대되고, 이렇게 기업이 성장하면 또 다시 고객 경험 향상에 재투자해서 선순환을 만든다는 '플라이휠' 이론이다. 쿠팡은 지금 플라이휠을 돌리면서 사람들이 쿠팡 없이 못 살겠다고 외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과연 쿠팡의 계획된 적자는 성공할 수 있을까?



[Competition] 사방이 적이다.

출처: 쿠팡


쿠팡의 가장 큰 리스크는 경쟁이다. 어떤 기업이 경쟁을 안 하겠느냐만 쿠팡만큼 적이 많은 기업도 찾아보기 힘들다. 쿠팡이 죽어라 투자해서 평정한 줄 알았던 이커머스에서는 대기업과 2차전을 치르고 있다. 현재 이커머스 시장은 쿠팡과 반쿠팡연대(네이버-신세계-CJ)가 양분하고 있다. 네이버와 신세계는 이해진 GIO와 정용진 부회장이 직접 만나 지분 교환까지 하면서 동맹관계를 다졌고, CJ대한통운까지 가세하면서 '데이터-유통-물류' 삼각편대를 완성했다. 한편 SK그룹의 이커머스 플랫폼 11번가는 아예 쿠팡의 롤모델인 아마존을 데려왔다. 두고두고 한국 시장을 탐냈던 아마존이 SK와 손을 잡고 국내 이커머스 업계 판도를 뒤흔들 수 있다.



쿠팡이 새로 진입한 시장은 상황이 더 암울하다. 쿠팡이츠가 단건 배달로 치고 나가나 싶었지만 배달의민족은 '배민1'으로 바로 맞불을 놓았다. 게다가 요기요는 GS리테일에 인수되면서 퀵커머스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또한 쿠팡플레이가 SNL코리아의 부활로 기대를 받고 있지만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의 벽은 너무 견고하다. 그리고 콘텐츠 산업은 엄청난 선투자금을 필요로 하면서도 흥행을 예측할 수 없다 보니 굉장히 불안정하다. 즉, 본업인 이커머스부터 신사업인 배달, OTT 전부 돈을 쏟아붓고 있는데 만만한 상대가 하나도 없다. 쿠팡의 치킨게임은 결코 오래가기 힘들다. 하나만 잘하기도 힘든데 셋 다 잘하려다가 모두 망칠 수도 있다.



출처: 쿠팡


쿠팡이 혁신적인 기업임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쿠팡은 국내 1호 유니콘으로서 대한민국 스타트업 생태계를 창조했고, 고객들에게는 대체불가능한 서비스를 제공했다. 게다가 코스피가 아닌 뉴욕증시에 상장하면서 국내에 한정됐던 창업가들의 좁은 시야를 세계로 확장시켰다. 또한 커질 대로 커진 덩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장'이라는 스타트업의 DNA를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 스타트업이 한 가지 제품이나 카테고리에만 머무르는 경향이 있는데, 쿠팡은 유망한 시장 3개에 발을 걸치고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카테고리를 확장하고 있다. 먼 훗날 '쿠팡 없이 살 수 없는 세상'이 올지, 아니면 '쿠팡이 없는 세상'이 올지 참으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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