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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본주늬 Mar 23. 2022

주가 없는 주식학 #06 화장품&생활용품

화장품: 양 극단만 살아남는다.

#LG생활건강 #아모레퍼시픽 #한국콜마 #코스맥스 


의경 생활을 하던 어느 날, 용산에 있는 미군 기지 보초를 서게 되었다. 길거리에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는 어두컴컴한 새벽, 배정받은 근무지에서 혼자 생각에 잠겼다. 도심 한복판에 저렇게 반짝거리는 건물은 도대체 무슨 건물일까? 마치 세차게 쏟아지는 빗줄기에 차량 불빛이 비추는 것 같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건물은 아모레퍼시픽의 본사였다. 많은 취업준비생들이 아모레퍼시픽을 선호하는 이유로 젊고 트렌디한 기업문화와 함께 아름다운 사옥을 꼽는다. 하지만 직원이 된다고 아모레퍼시픽 건물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 뷰티업계에 관심이 많다면 화장품 기업에 취직하는 것도 좋지만 화장품 기업의 주식을 소유해보는 것은 어떤가?



한국 화장품 시장의 양대산맥은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이다. 지난번에 음료 산업을 소개하면서 설명했지만 LG생활건강의 화장품 매출은 약 70%, 생활용품 매출은 약 15%에 달한다. 아모레퍼시픽은 아예 화장품과 생활용품의 매출 비중이 각각 90%와 10%로 사실상 뷰티 스페셜리스트다.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의 사업분야가 거의 겹치기 때문에 화장품과 생활용품 산업을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음에도 굳이 구분한 이유는 두 산업이 반대되는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화장품은 경기에 민감한 사치재이고, 생활용품은 경기에 둔감한 필수재이다. 실적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 화장품 산업을 먼저 알아보자.


LG생활건강은 초고가 프리미엄 라인업 '후'와 '숨', 고가 라인업 '오휘'와 '빌리프', 저가 라인업 '더페이스샵'과 '비욘드'를 보유하고 있고 아모레퍼시픽은 초고가 프리미엄 라인업 '설화수'와 '헤라', 고가 라인업 '라네즈'와 '마몽드', 저가 라인업 '이니스프리'와 '에뛰드'가 있다. 2010년대 이후로 '후'에 초집중한 LG생활건강과 여러 브랜드에 분산한 아모레퍼시픽이 맞대결을 펼쳤고 LG생활건강이 승리였다. 로레알이나 에스티로더 같은 프리미엄 화장품의 인기는 날로 높아졌고 중국의 C-뷰티가 떠오르면서 K-뷰티의 중저가 라인업은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가는 놈만 더 가고 어정쩡한 놈은 사라지는 양극화 장세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K-뷰티가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2014년이다. 당시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한류 열풍이 불면서 K-뷰티에 대한 관심도 급증했고 사상 처음으로 화장품 수출액이 수입액을 넘어서는 쾌거를 거둔다. 2015년에도 기세를 이어가며 로레알, 유니레버, 에스티로더, 시세이도 같은 글로벌 화장품 기업에 도전장을 내민다. 하지만 2016년부터 시작된 사드배치에 따른 한한령으로 한국 화장품 기업들은 설 자리를 잃는다. 면세점 산업을 소개할 때도 설명했듯이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은 중국 시장을 공략해서 성공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중국에게 발목을 붙잡혀있다. 따라서 중국향 매출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제 1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한편 화장품 업계에는 브랜드는 없지만 다른 브랜드의 제품을 위탁생산하는 업체들도 있다. 이를 OEM/ODM이라고 하는데 국내 업체 중에서는 한국콜마와 코스맥스가 대표적이다. OEM은 브랜드업체가 제품 기획부터 홍보까지 하면서 생산만 외주업체에게 맡기는 방식이고 ODM은 외주업체가 제품 기획부터 홍보, 그리고 생산까지 하면서 브랜드업체의 로고만 부착해 판매하는 방식이다. OEM/ODM 생산방식이 대세가 되면서 좋은 제품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화장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어정쩡한 브랜드는 사라졌고 살아남은 브랜드끼리도 올리브영 매대에서 피튀기게 싸우고 있다.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의 관계처럼 한국콜마와 코스맥스도 겉보기엔 비슷하지만 사업 부문을 보면 차이가 있다. 두 기업 모두 OEM/ODM을 하지만 한국콜마는 화장품 뿐만 아니라 의약품 사업도 병행하는 반면, 코스맥스는 화장품 사업만 영위하고 있다. 한국콜마의 화장품과 의약품 사업의 매출 비중은 약 6:4이다. 일반적으로 사업 포트폴리오가 적절하게 분산되어 있으면 매출도 안정적이다. 예를 들어 화장품 업황이 좋지 않아서 주춤하더라도 의약품 실적이 받쳐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편 사업 다각화를 하지 않더라도 고객사를 국내외에 다양하게 보유하면 포트폴리오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마지막으로 코로나19 사태 이후 화장품 업계에서 급속도로 나타나고 있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커머스에 이어 퀵커머스가 발달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는 더 이상 넓은 매장이 필요없다. 비용만 축내는 일반 매장 수백 개보다 똘똘한 플래그십 매장 하나가 더 나은 것이다. 실제로 아모레퍼시픽은 ‘아모레 성수’라는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하며 사용자 경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편 LG생활건강은 '빌리브 유니버스 컬렉션'을 공개하며 업계 최초로 NFT를 발행하며 메타버스 확장을 모색하고 있다. 제품 판매는 온라인 몰에서 해도 무방하다. 화장품 기업에게 중요한 것은 브랜드 로열티다. 



2020년부터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이 또 다시 다른 전략으로 맞붙었다. '후'와 '설화수'의 실적이 두 기업의 운명을 결정한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코로나19 발생 이후 중국인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기자 LG생활건강은 따이공을 통한 대량판매 전략을 취한 반면 아모레퍼시픽은 판매수량 제한 조치를 취했다. 한편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라 화장품 매출이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 따이공이 프리미엄 화장품에 대해 40%에 육박하는 가격 할인을 요구했는데 LG생활건강은 거절한 반면 아모레퍼시픽은 일부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프리미엄 화장품은 명품 같아서 브랜드 가치 보존이 매우 중요한데 과연 이번에는 누구의 승리로 끝날까.



생활용품: 주식계의 명품 조연이 있다면...

#LG생활건강 #아모레퍼시픽


한국인은 유독 겨드랑이 냄새가 잘 안 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특정 유전자가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한국인이 다른 인종보다 자주 씻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거기에 더해 나는 한국인의 섬유유연제 사랑도 한몫한다고 본다. 나는 어릴 적부터 세제와 함께 다우니 섬유유연제를 꼭 넣었다. 빨래된 옷에서 나는 섬유유연제 향을 맡는 게 그렇게도 좋았다. 또한 면도를 할 때는 꼭 질레트 면도기를 사용한다. 가장 자극이 없고 깔끔한 느낌이 든다. 섬유유연제부터 면도기까지, 알고 보면 우리 생활 곳곳에 P&G의 제품이 숨어있다. 그런데 LG생활건강은 대한민국의 P&G라고 불릴 만큼 생활용품 카테고리에서도 압도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LG생활건강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8대 생활용품은 샴푸/린스(엘라스틴), 바디워시/비누(벨먼), 치약/칫솔(페리오), 세탁세제(테크), 표백제(산소크린), 섬유유연제(샤프란), 주방세제(퐁퐁), 주거위생제(홈스타)이다. LG생활건강은 모든 카테고리에서 상위권에 위치해있고 아모레퍼시픽은 샴푸/린스(려), 바디워시/비누(해피바스), 치약/칫솔(메디안) 3개 카테고리에서 경쟁하고 있다. 오히려 규모는 한참 작지만 애경산업이 샴푸(케라시스), 바디워시(샤워메이트), 치약(2080), 세탁세제(리큐), 표백제(스파크), 섬유유연제(르샤트라), 주방세제(트리오), 주거위생제(홈백신) 모든 카테고리에 걸쳐있다.


사실 생활용품 실적을 메인 투자 포인트로 삼기에는 역부족이다. 주식 투자 측면에서 생활용품 산업을 볼 때는 화장품 산업을 보조하는 안정적인 매출군이라고 봐야 한다. 생활용품은 가격탄력성이 낮은 대표적인 필수재이기 때문에 경기방어 산업이다. 따라서 생활용품 매출 비중이 높을수록 안정적인 실적 향상을 이룰 가능성이 높다. 생활용품 비중이 높은 순서대로 나열하면 애경산업(40%), LG생활건강(15%), 아모레퍼시픽(10%) 수준이다. 다만 반대로 경기가 좋아져도 생활용품 소비는 크게 늘지 않기 때문에 경기호황에 따른 상승 모멘텀을 받기도 힘들다. 최근 생활용품 기업 3사는 물가가 오르자 가격을 인상하며 인플레이션 헤지에 나섰다.


생활용품도 화장품 시장처럼 OEM/ODM 방식의 발전에 따라 경쟁이 심화되었다. 엘라스틴, 려, 케라시스 같은 메이저 기업들의 샴푸가 아니더라도 쿤달, 아모스, 닥터그루트 같은 헤어케어 전문 브랜드의 샴푸의 인기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게다가 쿠팡의 '탐사'나 이마트의 '노브랜드'처럼 대형 유통 기업들의 PB제품도 등장하면서 생활용품 기업들이 점유율을 빼앗기고 있다. 생활용품은 화장품 만큼 브랜드 충성도가 크지 않고 적당한 성능에 가격이 저렴한 제품으로 갈아탈 가능성이 높은 산업이다. 따라서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 그리고 애경산업은 특색 있는 생활용품 산업을 리드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취하고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전략 트렌드는 기능성 강화다. 김연아, 손흥민, GD까지 광고모델로 섭외하며 주목을 받았던 TS샴푸는 탈모 방지라는 기능성을 강조한 대표적인 사례다. 아모레퍼시픽은 '려 블랙'이라는 새치 커버 기능성 샴푸를, LG생활건강은 '엘라스틴 프로폴리테라'라는 영양 케어 기능성 샴푸를, 애경산업은 '케라시스 스칼프클리닉'이라는 두피 쿨링 기능성 샴푸를 출시했다. 예전에는 그저 향기 좋고 거품 많은 샴푸가 인기였다면 지금은 고객들의 다양한 니즈에 따라 다양한 기능성 제품이 등장하는 것이다. 또한 이목을 끄는 과감한 시도도 선보이고 있는데 LG생활건강의 펌핑 치약과 아모레퍼시픽의 비어스파 바디워시가 인상적이다.


다음으로 살펴볼 전략 트렌드는 더마 코스메틱이다. 기능성 강화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도 있고 '코스메틱'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화장품과도 연관된 부분이지만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카테고리라 아직 모호한 부분이 있다. LG생활건강은 2014년 CNP를 인수에 이어 2020년 피지오겔을 인수하며 더마 코스메틱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했다. 1조 원 이상의 시장을 놓칠 세라 아모레퍼시픽은 2021년 에스트라와 COSRX를 인수하며 더마 코스메틱 진출을 선포했다. 두 기업 모두 올해 주주총회에서 의료기기 제조업 및 판매업을 정관에 추가한 것만 보더라도 얼마나 진심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주목할 전략 트렌드는 펫코노미와 비거니즘이다. 아기를 갖는 대신 반려동물을 기르는 가정이 증가하면서 펫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는데 반려동물 관련 산업을 펫코노미라고 부른다. 무려 3조 원 이상의 가치를 잠재한 시장이기에 LG생활건강(시리우스)은 2016년에 일찌감치 진출했고 아모레퍼시픽(푸푸몬스터)은 2021년 반려동물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런칭했다. 한편 반려동물 시장 성장과 함께 동물보호가 사회적 이슈가 되자 동물 실험을 금지하는 비거니즘이 등장했다.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 같은 브랜드 업체는 동물 실험을 중단했고 한국콜마나 코스맥스 등 OEM/ODM 업체도 글로벌 기관으로부터 비건 인증을 받았다.



K-뷰티의 쌍두마차,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의 선두에는 훌륭한 경영자가 있다. M&A 귀재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과 한우물 뚝심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은 실적이 공개될 때마다 비교된다. 2000년대 흐름을 살펴보면 LG생활건강은 장기적으로 꾸준히 성장한 반면 아모레퍼시픽은 들쑥날쑥하며 기복이 심했다. '후'와 '설화수'의 실적 방향성이 중요하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생활용품과 음료 사업부에서 30% 안정적인 매출을 올리는 LG생활건강이 화장품에 90% 가까이 집중한 아모레퍼시픽보다 기복이 적은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화장품 및 생활용품 기업을 통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구성하는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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