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에 관하여(6)

조원강 에세이 - 이 별에 관하여 ,

by 조원강

우리는 그렇게 적당히 술잔을 기울이고 일어섰다. 맥주 석 잔정도를 마셨기에 우리에게 취기 같은 건 없었다. 그녀가 이끄는 대로 나는 그녀의 뒤를 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최종목적지인 명동에 도착했다. 명동에는 정말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를 가득 메웠다. 그중 대부분이 외국인이었다. 길바닥에 대충 걸터앉아 길거리 음식을 먹고 있는 외국인들을 명동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고, 매장 앞 입간판에는 외국인들을 매장 안으로 들이기 위해 영어를 포함한 몇 가지 언어가 쓰여있었다. 우리는 일단 갈 곳을 정하지 않고 명동을 걸었다. 날은 덥고 몸은 땀에 절어 끈적였으나 건물들이 오밀조밀 모여있는 거리를 잠시 지나갈 때를 제외하고는 오후의 태양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언니와 명동으로 쇼핑을 하러 자주 왔었다며 명동 여기저기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주었다. 명동에 오면 주로 무엇을 먹었고 어디를 들어가 무엇을 샀었는지도.


나도 그전에 명동에 딱 한 번 와본 적 있었다. 수능이 끝나고 동네 친구들과 서울에 가기로 약속하고 왔었던 기억이 났다. 완전 촌놈이었던 우리는(나는 충청도 어느 작은 마을 출신이다) 명동을 비롯해 서울 몇 군데를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가 용산역에서 막차를 타고 내려간 적이 있었다. 성인이 되기 전에 서울을 와본 적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명동에 왔었던 기억도 내 머릿속에 완전히 잊혔었다. 사람들로 꽉 차있는 좁은 길 사이로 뜨거운 열기를 뿜어대는 노상음식점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우리는 뭐 하나 집어 먹을까를 고민하다가 그냥 스쳐 지나가기로 했다. 유명한 스포츠 브랜드 매장에 들어가 에어컨도 쐴 겸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그리곤 그녀는 홀린 듯이 어떤 매장에 들어가 옷과 액세서리를 만져보더니 이게 무엇으로 유명한 브랜드라고 알려주었다. 매장 안에는 남자 광고 모델이 멋있는 자세를 취하고 손님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돌 멤버 중에 유독 잘생겨 거의 모든 광고를 독차지하고 있는 연예인이었다. 이 브랜드는 살면서 난생처음 들어봤다. 유명한 명품 브랜드는 아닌 것 같았다. 여자들이 착용하는 브랜드에 대해 남자들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아니 일반화하기는 좀 그렇고 내가 잘 모르는 것 같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그녀는 스포츠 브랜드 매장에서 내가 몇 번 매만졌던 옷을 같이 사는 게 어떻냐고 물었다. 지금껏 커플티 비슷한 옷을 같이 입는 것도 질색하던 그녀가 같은 옷을 사자 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은 날이 너무 더워 바로 입기는 어렵겠지만 다음에 다시 만날 때 같이 입고 나오면 좋을 것 같았다. 우리는 매장에서 몇 개의 티셔츠를 사이즈별로 집어 탈의실에 들어가 입어보고 잠시 나와 거울을 바라보며 사이즈가 좀 큰 건 아닌지 너무 타이트하지는 않은지 세심하게 서로의 옷태를 봐주고 그중에 제일 괜찮아 보이는 것으로 골랐다. 그녀는 나와 똑같은 디자인이나 색상을 고르지는 않았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우리가 같이 입을 옷을 샀다는 게 중요했다. 내가 계산을 하려는데 굳이 그녀가 계산을 한다고 한다. 이 매장에 들어올 때 그녀는 나한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자기는 OOO브랜드가 자기한테는 명품이라고 했지?”


“응, 나한테는 그렇지.”


나는 아무렇지 않게 그렇게 대답했다. 그녀는 내가 한 말을 진심으로 들었던 걸까? 그녀에게 아무런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지나치며 했던 말이었다.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는 주로 옷 위주로 선물을 사줬다. 이따금씩 집 어딘가에서 종이가방에 옷을 꺼내어 입어보라며 주곤 했다. 마치 남자친구가 생기면 선물공세를 하려고 기다렸던 사람처럼. 나중에 누나에게 물어봤을 때, 일반적으로 사람마다 차이는 좀 있겠지만 사귀는 초기에 여성들이 많은 선물을 해주는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를 내게 해주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녀가 내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애정표현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와 사귀고 나서 얼마 안 되어 그녀의 생일이 찾아왔다. 사귀고 나서 우리는 거의 같이 살다시피 했다. 나중에 두어 달쯤 지나서는 그녀에게 사정이 생겨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평일 저녁에 우리 집 주변에서 저녁을 먹고 다음날 출근할 때 입을 옷을 챙겨 그녀의 집으로 간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그녀를 태우고 근처 지하철역에 내려주는 것, 이것이 우리의 일상이었다. 이런 일상이 지속되던 중 그녀의 생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가 가끔 말하기를, 나는 친구들이 생일 선물하기 정말 까다로운 편에 속한단다.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어떤 선물을 해줘야 좋을지 고민을 했다.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아 맞이하는 첫 생일인데 그녀에게 실망감을 주고 싶지 않았다. 이건 선물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그녀는 아파트에 청약되어 방 3개, 화장실 2개가 딸린 집에 혼자 살면서 침대를 비롯해 소위 신혼가전이라고 이야기하는 거의 모든 가전제품을 갖춰놓고 살고 있었다. 20대부터 30대까지는 그 나이 때 여자들이 가지고 싶어 하는 명품도 꽤나 가졌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고 명품 그거 다 의미 없다고 이야기한 적도 있었다. 그니까 현재의 그녀는 물질적으로 무언가 부족한 상태는 아닌 것처럼 보였다. 대신 아파트라는 공간을 홀로 살면서 치러야 하는 은행대출이자와 관리비는 있었겠지만 말이다.




그녀에게 무엇이 필요할지 고민을 하던 중 귀걸이는 자주 바꿔도 목걸이는 항상 같은걸 차고 다니길래 목걸이를 하나만 차고 다니는 이유를 물었다. 그녀는 별다른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종종 언니를 제일 친한 친구이자 소울메이트라고 이야기했었다. 그래서 혹시 언니와 같이 맞춘 목걸이라면 내가 사준 들 그녀가 차고 다니지 않을 수도 있어 확인 차 슬쩍 물어본 것이다. 나는 그녀의 생일이 임박해 오자 다급하게 친누나를 찾아 어떤 선물을 하면 좋을지 물었다. 누나와 연령대가 비슷해서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받으면 좋을만한 선물리스트를 확보해 그중에서 이제 고르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누나가 만들어 준 리스트가 있었음에도 너무 많은 고민을 하는 바람에 타이밍을 놓쳐 바람에 하루 전날까지도 선물을 사지 못했다. 다행히 회사 앞에 백화점이 있었고 그곳 1층 주얼리 매장을 한 바퀴 돌며 그녀가 좋아할 만한 목걸이(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었겠지만)를 찾았다. 그녀가 매일 차고 다니는 목걸이의 색상이나 디자인을 생각하면서 차고 다니기에 너무 부담스럽지 않은 것을 골랐다.


생일 전날, 여느 때처럼 우리는 퇴근 후 바로 만날 수 있었지만 나는 선물을 사야 했기에 갑자기 회의가 생겨서 늦을 것 같으니 오늘은 집에서 보자고 말했다. 당시 통화를 했을 때, 얼버무리는 내 목소리에서 무언가 눈치를 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시치미를 뚝 떼고 선물을 조수석에 놓고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그날 그녀의 집에서 무얼 먹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돌이켜보니 화이트와인을 먹었는지 아무튼 술을 마신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밤에 그녀가 씻고 잘 준비를 하려던 때, 그녀의 목에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그녀가 얼마나 기뻐하던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왜 선물을 줘야 하는지 그제야 알게 되었다. 주는 것의 기쁨을 모르고 받는 것의 기쁨만을 알고 있던 내가 오히려 부끄러워졌다. 그녀는 내가 준비한 선물을 정말로 기대하지 않았던 듯 너무 놀라 거울 속 자신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매만지며 연신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어디서 이런 걸 샀냐며 나는 이런 거 안 받아도 된다느니 하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는 그녀를 보면서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이제 그녀의 목에는 언제부터 착용했었는지 모를 목걸이가 사라지고 내가 사준 목걸이가 그녀의 목에 걸렸다. 방의 불은 꺼졌고 화장대의 불빛만 남아 유난히 목걸이에 빛이 났다.


너무 좋은 출발임이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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