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에 관하여(7)

조원강 에세이 - 이 별에 관하여 ,

by 조원강

그녀는 내가 생일선물로 사준 목걸이 가격을 알아봤는지 왜 이렇게 비싼 걸 사줬냐며 핀잔을 줬다. 며칠 후 그녀는 처음 들어본 브랜드의 재킷(친구에게 물어보니 가격이 꽤 나가는 브랜드였다)을 하나 사 왔다. 할인해서 싸게 산 옷이라며 부담 갖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녀가 그랬듯 나도 가격이 얼마인지 검색해 보았다. 구태여 가격을 확인한 이유는 내가 준 생일선물에 부담을 느껴 더 값비싼 선물을 받았으면 오히려 내가 미안할까 봐 찾아본 것이다. 나는 단지 그녀가 생일이어서 선물을 준 것이고 그녀는 내게 비싸게 받은 선물에 대한고마움의 표시였을 거다. 선물을 받은 후 내 옷장에 걸려있는 옷들을 생각해 봤다. 겨울 점퍼 같은 두꺼운 의류 한 두 개를 제외하면 내가 가지고 있는 옷 중에 제일 비싼 옷이었다. 이후에도 그녀는 할인해서 산거라며 남방과 티셔츠를 이따금씩 선물로 주었다. 그게 그녀가 주는 사랑의 방식이었으리라. 나는 사주면 여지없이 다음 데이트에 그 옷을 입고 나갔다. 그녀에게 일종의 효능감(?) 같은 것을 주고 싶어서였다. 그녀가 옷을 많이 사준 이유를 생각해 보니 아마 몇 개 없는 옷을 돌려 입고 매번 데이트에 나오는 나를 배려해서였을 거다. 거의 매일 만났던 연애 초기에 제일 신경이 쓰였던 게 옷이었다. 그걸 그녀가 알아챈 듯했다.




함께 입어봤던 옷 중에 하나씩 골라 계산하고 2개의 종이봉투에 각각 나눠 담았다. 다음에 갈 데가 있다며 아까 지나쳐 온 주얼리 매장으로 향했다. 그녀가 을지로에서 맥주를 마실 때, 내가 사준 목걸이를 환불해도 되냐고 물었다. 내가 왜냐고 물으니, 그 목걸이는 본인과 잘 어울리지 않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주관이 뚜렷했던 그녀는 귀걸이에 대해 이렇게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줬다. 투피스 정장에 귀에 걸면 딱이라나. 그녀는 청바지에 노멀 한 복장으로 출근을 해도 되는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아마도 그렇게 표현했으리라. 내가 준 편지만 빼고 선물로 준 그대로 가지고 있으니 다음 주 월요일에 가져다줄 테니 되도록이면 환불을 하라고 말했다.




귀걸이를 선물로 줬다는 자체가 그녀에게 부담을 준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는데 오히려 본인의 취향에 맞는 걸 사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그런데 어찌 보면 연인 사이에 당연한 일이었다. 난 그런 류의 대화가 우리 사이에 너무 없었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을 계기로 서로에 대해 좀 더 알아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랐다. 주얼리샵에 수천 가지의 귀걸이가 걸려있었다. 그녀는 물 만난 고기처럼 이것저것을 만지고 귀에 갖다 대며 나는 정확히 이런 스타일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층수가 3층인 매장의 1층이 귀걸이와 같은 액세서리를 파는 매장이었다. 그녀를 졸졸 따라다니며 그녀에게 어울리는 것을 추천하고 퇴짜를 맞기를 여러 번 반복하다 그녀는 딱 한 개의 귀걸이를 골랐다. 은색의 약간 두꺼운 귀걸이였다. 어울리는 게 많을 것 같으니 몇 개 더 골라보라고 권했지만 그녀는 집에 비슷한 게 많으니 한 개만 사줘도 충분하다고 했다. 1만 원도 채 되지 않는 귀걸이 한 개를 계산하고 매장을 나왔다.


오후 대여섯 시쯤이 되었을 무렵, 시계를 봤을 때 놀란 건 시간 때문이 아니었다. 우리가 오늘 걸었던 거리가 10km가 넘었던 것이다. 걸었던 거리를 알고 나니 나도 피로감이 몰려왔다. 걸어서 뿐이겠나 그렇게 덥고 사람 많은 곳을 종일 돌아다녔으니 피곤할 법도 했다. 하지만 오늘의 바이브는 불안했던 일주일 전의 바이브가 아니었으므로 나는 저녁까지 먹고 들어가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그녀는 많이 피곤하다며 집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기대에 부풀었던 마음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오늘의 하루가 나에게는 평소와는 다른 하루였으나, 그녀에게 어떤 하루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우리는 그 대화를 끝으로 지하철로 향했고 각자의 옷이 담긴 종이봉투를 들고 헤어졌다. 6월 6일 금요일은 그렇게 끝이 났다. 주말은 각자 집에서 쉬기로 하고 이따금씩 끼니때마다 밥은 챙겨 먹었는지 저녁에는 어떤 프로그램을 보았는지 정도의 메시지만 주고받았다. 모든 메시지는 내가 먼저 보냈을 뿐 별 다를 것 없는 주말이었다.




다가오는 주말에는 각자의 집에 이벤트가 있었다. 나에게는 아버지 칠순을 기념해 가족끼리 2박 3일로 가는 여행이 있었고, 그녀에게는 올해 칠순이신 아버지를 기념해 가족끼리 모이는 식사 자리가 있었다. 나는 우리 관계가 어느 정도 회복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평일에 만나 같이 밥을 먹고 집에 데려다주는 우리 연애의 일상으로 돌아온 것에 감사했다. 화요일에 만나 저녁을 먹으며 가족끼리 가는 여행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목요일에는 그녀가 내가 사준 귀걸이를 예쁘게 하고 나와 같이 저녁을 먹고 아이스크림도 하나 사 먹으며 우리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우리는 평소처럼 평일에 이틀을 만나는 패턴으로 돌아왔으나, 그녀는 좀처럼 우리 집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지 않았다. 그녀의 집에 사정이 생긴 후로는 둘 만이 편하게 있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인 우리 집에 들어가는 것을 꺼린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그녀의 집 앞에 차를 세우고 우리는 평소처럼 입을 맞췄다. 그리고는 얼른 들어가라며 조수석 문을 열고 손을 흔든다. 그런데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언젠가부터 잠시라도 그녀의 집에 들어가려고 하면 피곤하니까 일찍 집으로 가서 쉬라고 말했었다. 조금 서운했지만 지금의 우리 관계가 완전히 회복된 것이 아니라면 그녀를 기다려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금요일이 되어 나는 가족끼리 강원도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 사이사이에 그녀에게 내가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 사진을 찍어 보내거나 메시지를 보냈으나 읽고 답장이 없었다. 부모님이 하루 먼저 그녀의 집에 올라와 아침 일찍 미역국을 챙겨드렸다는 메시지 이후에는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그녀도 그녀 나름대로 가족과 시간을 보내느라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심리가 불안한 상태였으므로 그 상황을 정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나도 가족끼리 간 첫 여행이었다. 그런데 가족 여행에 집중을 못하고 여자친구에게 더 신경이 쓰여 가족에게 티가 날까 봐 미안했다. 평소에도 그녀는 메시지를 보내서 할 말이 없으면 답장을 아예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게 그녀의 원래 성격이려니 생각하고 이해해 보려고 노력도 해봤다. 하지만 사랑하는 상대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그게 누구든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게 내 마음속에 쌓이고 쌓여 그녀에 대한 서운함과 불만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조심스레 술기운을 빌어 그녀에게 이런 속내를 말한 적도 있었지만 그녀는 바뀌지 않았다. 그녀를 만나면 가끔 생각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이런 걸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사소한 것 하나를 바꾸지 못하는 것이 나이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늘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하루 종일 일하고 퇴근하고 만나는 게 힘들 수는 있다. 하지만 매번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과의 데이트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감흥이 떨어졌다. 나도 사람인데 피곤하고 힘든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에 대한 존중이 있었다면 그런 말이 매일 이렇게 쉽게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왔을까?




여행의 첫째 날에도 기다리던 답장은 오지 않았고 다음날인 토요일에는 사귀고 나서 처음으로 서로 메시지를 주고받지 않았다. 나도 왜 보내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읽고 답장도 없는 그녀가 원망스러웠다. 한편으로는 여행을 하고 있는 우리 가족보다 더 많은 가족이랑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 그녀를 떠올리면 평소대로 하는 건데 신경 쓰지 말자 라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평소에도 같이 있을 때 여러 번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그녀가 잠시의 짬을 내어 나에게 답장도 보내지 않는다는 건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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