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에 관하여(5)

조원강 에세이 - 이 별에 관하여 ,

by 조원강

“어떻게 해야 하지?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 앞으로 이런 선물 절대 하지 마.”


보통의 연인 관계라면 이런 이야기는 나누지 않았을 것이다. 상대가 가진 경제력에 비해 고가의 선물을 지속적으로 주지 않는 이상.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걱정이 아니었다. 그건 완벽에 가까운 불편함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불편함을 준 걸까? 나는 귀걸이 케이스 안에 편지가 있으니 잘 읽어보라고 이야기를 하고 그녀가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후로 불안한 마음만 안고 끙끙 앓다가 누나를(누나는 여자친구와 같은 연도에 태어났지만 학년은 달랐다) 찾았다. 지금의 내 상황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자 찾아간 것이다. 다른 남매와는 다르게 평소 이성 관계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는 편이었고 여자 친구가 생겼다고 말했을 때, 누구보다 뛸 듯이 기뻐했던 것도 누나였다. 최근에 있었던 이야기를 차근차근 설명하던 중에 여자 친구는 헤어짐을 고민하고 있는 것 같고 나는 그 만남을 지속하기 위해 선물을 주려고 했다는 말을 들은 누나는 상대가 헤어지려는데 부담스럽게 선물을 왜 주냐며 핀잔을 주었다. 누나는 그 관계는 이미 끝난 관계라며 네가 먼저 정리하는 게 너한테 좋을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 말이 영 틀린 말도 아니었지만 조금만 더 걸으면 어두운 터널 속에서 빛이 보일 것만 같아 나는 계속 그 길을 걷기로 했다.



며칠 후 우리에게 다시 공휴일이 찾아왔다. 이 날은 금요일이면서 공휴일이기도 해 연인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이었다. 전날 별다른 계획 없이 대화를 이어가던 중, 그녀는 시청역 쪽에 유명한 콩국수집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만나는 내내 나한테 어디를 가고 싶다고 이야기한 적은 별로 없었다. 같이 여행을 갔을 때 맛집이나 다른 가볼 만한 곳을 열심히 찾아봤던 그녀였지만, 평소 데이트를 할 때면 특별히 가고 싶어 하는 곳이 없어 일단 내가 먼저 장소를 찾아보고 정보를 보내면 거기서 그녀가 선택하는 방식으로 데이트가 이뤄졌다. 대부분의 연인이 그러하기도 그렇지 않기도 하겠지만.


나는 오랜만에 설렜다. 어제 줬던 선물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나와 다시 잘해보려는 노력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시청역 주변 광화문이나 을지로, 명동 등 가볼 만한 곳을 찾아보고 대략적인 동선도 미리 체크해 휴대전화 메모에 적어놨다. 우리는 신도림역에서 만나 시청역에서 내렸다. 출구로 나오자마자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곳이 그녀가 말한 유명한 콩국수집이었다. 11시가 조금 안된 시간이었지만 어디가 입구인지 모를 정도로 두 갈래로 줄을 서 있어 새로 줄을 서려는 사람들이 어디에 줄을 서야 하냐며 줄 서 있는 사람들에게 계속 묻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더웠지만 생각보다 오래 기다리지는 않았다. 나는 좀 시원한 국물의 콩국수를 좋아해서 그런 걸 기대했는데 그런 스타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가 좋아해서 먹고 싶다던 음식을 같이 먹은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우리는 식당을 기다리면서도, 청계천 쪽으로 걸어가 다리 아래에 잠시 멈춰 앉아 담소를 나누면서도 다정하게 사진을 찍었다. 하얗고 고른 그녀의 이는 보이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환하게 웃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나도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조금 걷다 보니 언덕길 위쪽에 명동성당이 보였다. 올라가기엔 너무 멀고 날이 더웠다. 성당이 보이게 비스듬히 서서 같이 사진을 찍었다. 이 날 못해도 서른 장 이상의 사진을 찍었던 건 기억이 난다.



날이 더워서 그런지 시원한 곳에 들어가 커피 한 잔이 하고 싶어졌다. 최대한 가까운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셨다. 머릿속은 오만가지 생각이 다 났지만 태연한 척 오늘을 즐기는 척하고 있었다. 우리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다가 을지로 쪽으로 향했다. 몇 년 전 대학동기 몇 명과 일명 “힙지로”라고 유명세를 떨칠 때쯤 왔었던 기억이 났다. 그 이후 을지로에 온 건 처음이었고 야외 테이블을 깔고 맥주를 팔았던 곳으로 향했다.

알고 보니 그녀가 20대 초반에 일했던 회사의 건물이 그 주변에 있었다. 지금도 나에겐 빛이 나지만 훨씬 더 빛났을 20대 시절에 대해 그녀가 이야기를 쏟아낸다. 무슨 일을 했고 저기가 어디였으며, 주변에 맛있는 중국집이 있었는데 거기를 자주 갔었다고. 심지어 잊어버린 기억도 주변을 조금 배회한 후에는 기어코 본인이 자주 가던 중국집을 찾아내 그곳이 여기라고 알려주었다. 이십여 년 전 어떤 건물은 허물어지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을 것이다. 나에게 어떤 건물이 새로 지어진 건물인지도 설명해 준다. 그 공간이 그녀를 잠시 20대 시절로 돌아가게 했음은 분명했다. 회상에 젖은 듯하면서도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는 듯한 그녀의 얼굴과 표정에서 많은 것이 느껴졌다.

금요일 오후 2시 정도였는데 술집에는 사람들로 넘쳐 났다. 우리는 비어있는 자리를 찾아보다가 테이블 하나를 찾아 앉았다. 점심으로 먹은 콩국수가 아직 소화되지 않아 우리는 생맥 두 잔과 노가리 한 개만 시켰다. 유난히 술을 , 유독 소주를 좋아하는, 그녀는 낮부터 내리쬐는 태양 덕에서 술을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는데 빨갛게 얼굴이 달아올랐다. 평소에 나도 얼굴에 안면홍조가 있어 약간 발그레한 편이었는데 내 얼굴도 더더욱 빨갛게 달아올라 열을 내려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원한 맥주가 우리 앞에 놓였다. 우리는 잔을 부딪히자마자 맥주를 들이켰다. 평소의 나라면 술은 적당히 목만 축이는 정도였지만 우리의 분위기는 연애 초기의 분위기같이 너무 좋았고 어쩌면 그때보다 더 좋아진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앉은 테이블 바로 옆은 공사장 펜스였다. 팔을 살짝만 움직여도 펜스에 팔이 닿았다. 계속 앉아 있으니 테이블에 먼지도 조금 쌓이는 것 같았다. 우리는 이게 진짜 힙지로 맞냐며 웃으면서 연신 건배를 하며 맥주를 들이켰고 기분 좋은 대화를 나눴다.


행복한 이때를 기억하기 위해 나는 휴대폰을 꺼내어 네모난 앵글에 그녀와 나를 담는다. 그녀는 내가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셔터를 누를 때마다 내 표정을 따라 하며 카메라 렌즈를 우스꽝스럽게 쳐다봤다. 이런 순간들이 영원하길 바라서, 그래서 연인들이 사진을 찍는 거겠지. 그러고 보니 그녀는 먼저 사진을 찍자고 한 적이 거의 없었다. 혼자 셀카를 자주 찍는 나와는 다르게 그녀는 사진을 찍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의 SNS에는 온통 먹는 사진뿐이었고, 이따금씩 가족과 함께한 해외여행 사진이 드물게 있었다. 그렇다 보니 보통 내가 카메라를 켜고 그녀를 찍어주거나 같은 앵글 안으로 그녀를 끌어들였다. 웃으면 좋고 안 웃어도 괜찮았다. 우연히 그녀가 사진첩에서 무얼 찾는 걸 보게 되었는데 손가락으로 스크롤 내리고 또 내려도 나와 같이 찍은 사진이 사진첩에 거의 없었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진을 공유했는데 왜 그걸 저장하지 않은 걸까? 모든 사진을 저장하길 바랐던 게 아니다. 그냥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면 함께 업을 때, 사랑하는 상대와 함께했던 시간들을 떠올리고 싶어 하지 않을까?

그녀는 내게 자기가 가지고 있는데 뭘 또 나까지 가지고 있어~ 라며 둘러댔지만 무언가 강요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굳게 믿었기에 약간의 이상함을 감지하면서도 사람마다 각자 연애하는 방식이나 생각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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