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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홉이든 HOPEDEN Nov 08. 2015

남미 여행을 향한 쉼표 D+150

칠레 Chile, Santi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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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hopedenkorea


칠레 산티아고. 

공항을 나오자 스페인어로 된 표지판이 눈에 띈다. 


"비엔베니도 아 칠레(Bienvenido a Chile, 칠레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 나라에 대한 첫인상은 별로였다. 

구멍 숭숭 뚫린 노후한 아스팔트, 먼지 풀풀 날리며 달리는 차들, 도로며 인도며 드러누운 유기견, 그리고 강한 경계를 보이는 주민들. 묘한 긴장감으로 손에 땀이 났다. 지금껏 달린 곳과는 풍경도 상황도 완전히 달라졌다. 


산티아고에서 한 달 머물기로 한 계획이 흔들리고 있었다. 밀린 여행기 작성, 사진 정리 등 그간의 여행을 마무리하고, 중남미 여행을 위한 스페인어 공부도 할 생각이었는데 어찌될지 모르겠다. 


매연과 흙먼지 속을 두 시간 달려 시내 중심가에 다다르자, 그제야 마음이 누그러진다. 동쪽이 부촌이고 서쪽은 빈촌이라는 산티아고. 서쪽에 위치한 공항에서 라이딩을 시작한 탓에 첫인상이 좋지 않았던 게다. 이제 예약해 둔 숙소만 잘 찾아 가면 된다.

산티아고 시내 풍경



카사 비레이나토(Casa Virreinato) 


“로빈(Robin)~ 에릭(Erick)~” 


주소는 맞는데 사람이 없는 것 같다. 근처에서 차 한잔 하며 기다리고 있자니 호스트 로빈이 나타났다. 아담하고 예쁜 그녀는 네덜란드 출신으로, 여행지에서 칠레인 에릭을 만나 산티아고에서 살게 되었다고 한다. 솔직한 그 모습이 좋았다. 


카사 비레이나토(Casa Virreinato). 개별 방에 공용 욕실과 주방이 있는 스튜던트 하우스. 지방에서 온 유학생이나 젊은 외국인이 주고객이다. 방 7개 모두 세 주었고, 호스트 커플은 다른 곳에 살고 있었다. 방학 동안 놀리던 방을 인터넷에 올리고 처음 맞는 손님이 우리라고 한다. 왠지 기분이 좋았다. 자전거는 마당에 두면 되고. 3일간의 예약을 즉석에서 한 달로 연장하였다. 단기 정착 준비 완료! 


한 달간 묵게 될 카사 비레이나토



아미고(Amigo, 친구), 한국 맛 좀 보여줘야겠군! 


한국을 떠나 처음 맞는 안정된 생활. 겨우 4개월 만인데 그 생활을 다시 하니 참 신선했다. 주어진 30일을 알차게 채우기 위해 각자 시간표도 만들었다. 그렇게 일상의 매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오직 하나의 고민은 ‘오늘은 뭐  먹지?’였다. 


장기 여행자 대부분이 공감할 것이다. 고국 음식이 몹시 그립지만 식재료 구하기가 쉽냔 말이다. 그런데 산티아고에 한인 마트가 있단다! 바로 자전거를 타고 그곳으로 향했다. 


센트럴 역서 가까운 ‘빠트로나토(Patronato)’라는 이름의 거리. 남대문 같은 곳으로 옷과 잡화뿐 아니라, 중국 상점과 식료품점이 여럿 있었다. 저니는 오른쪽, 스테이시는 왼쪽. 한글 간판, 찾았다! 서로 쳐다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장바구니에 마구 쓸어 담을 태세로 마트에 들어가자마자, 곧바로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태평양을 건너 온 귀한 제품들. 비싸다 비싸. 그래도 이게 어딘가. 오늘 저녁은 떡볶이다!! 장바구니에 재료를 담는 것만으로도 벌써 입안에 침이 고였다.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한 달이라니 행복하다. 


조리 과정서 부터 맛난 냄새를 풍기는 우리 음식. 옆방을 쓰고 있던 키에란(Kieran, 영국인)이 관심을 보이길래 조금씩 나눠주었는데 입맛에 맞나 보다. 그의 리액션에 신이 난 스테이시. 결국 일을 내고 말았다. 


"키에란, 한국 음식 맛있지? 다 같이 '코리안 푸드 파티' 어때?" 


하우스 친구들도 알아서 잘 해먹더구먼. 뭔가 시원찮다고 느낀 건지 요리 솜씨를 뽐내려고 그러는 건지. 분명 힘들다고 할 거면서, 미리 상의도 않고. 영 못마땅했지만, 요리엔 소질이 없는 저니로서는 그냥 넘어갈  수밖에. 


"그나저나 몇 인분을 만들어야 하는 거야? 로빈과 에릭도 초대해야 하니까, 10인분?" 


짜잔~ 대표 잔치 음식인 김밥, 잡채, 닭강정을 준비했다. 하나같이 손이 많이 가는 한국 음식. 정성과 사랑이 담겼으니 맛있을  수밖에. 약속시간에 맞춰 마실거리와 디저트를 손에 들고 찾아온 손님들. 풍성하게 차려진 잔치상에 탄성을 터트렸다. 이에 스테이시가 자랑스럽게 한마디 내뱉는다. 


“아미고(Amigo, 친구), 이건 김밥이라고 하는 거야. 초밥이 아니라” 
“뭐가 다른 거야?” 
“초밥은 설탕과 식초로 간을 하고, 김밥은 소금과 참기름도 맛을 내지" 


고개를 끄덕이며 하나 둘 집어 먹기 시작하였다. 처음 맛보는 한국음식, 맛있다며 만드는 법 알려달라고 난리다. 스테이시는 그저 이국의 친구들에게 '한국의 맛'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모두들 코리안 푸드를 즐기는 동안 밤은 깊어 간다. 


우리가 준비했던 한국 요리




다니엘라의 수제 엠빠나다 


어설픈 우리의 스페인어 연습 상대였던 다니엘라(Daniela). 

훤칠한 키에 다정다감한 그녀는 디자인 교수 겸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가 파티에 대한 답례로 칠레 대표 음식인 엠빠나다다(Empanada)를 만들어 주겠단다. 


엠빠나다 속재료를 준비하느라 분주한 다니엘라. 그녀 친구 안드레(Andrés)와 스테이시가 밀가루 반죽을 도왔다. 만드는 과정을 보니 영락없이 만두다. 다만 오븐에 굽는다는 것이 다를까. 그래서 겉은 오히려 빵에 가깝다. 모락모락 금방 구운 엠빠나다. 까르네(Carne, 소고기)와 뽀요(Pollo, 닭고기) 두 가지 맛. 칠레 맥주 에스쿠도(Escudo)와 궁합이 잘 맞았다. 서로 주거나 받거니 음식 하나로 문화를 교류한다. 오늘도 밤 늦도록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다니엘라! 맛있게 잘 먹었어! 고마워' 


다니엘라의 엠빠나다




왜 그렇게 카수엘라에 집착했을까. 


'미 카수엘라(Mi Cazuela, 내 카수엘라)'. 인터넷에서 우연히 듣게 된 음식 노래다. 특히, 재래 시장을 배경으로 카수엘라(Cazuela) 만드는 과정을 담은 뮤직비디오. 몇 번을 돌려봤는지 모르겠다. 그러다 점점 그 맛도 모르는 음식에 빠져들었고 직접 찾아 나서게 된 우리. 7키로를 달려 '카수엘라'란 이름의 식당에 도착. 그런데 정작 그 메뉴는 없고 전혀 다른 음식뿐이었다. 실망하고 있던 그때, 스테이시 뭔가 떠오른 모양이다. 


"바로 옆이 버스 터미널이던데, 기사 식당 같은 데서 팔지 않을까요?" 


복잡한 터미널. 건물은 좁은데 사람은 많고 까딱하다가는  소매치기당할 것 같은 그런 곳이다. 구멍가게와 간식만 있을 뿐 식당이라곤 변변치 않아 터미널 뒤로 가봤다. 두둥~! 조그만 식당 앞 입간판에 똑똑히 쓰여있는 카. 수. 엘. 라. 자리에  앉자마자 주문을 넣었다. 


"카수엘라, 뽀르 빠보르(Cazuela, por favor, 카수엘라 주세요)" 


국물이 찰랑찰랑 넘칠 정도로 수북이 담겨 나왔다. 뮤직 비디오에서 보던 그대로다. 쇠고기, 호박, 감자, 당근, 그리고 빠지면 섭섭할 노란 옥수수. 갖은 재료를 큼직하게 썰어 넣었다. 그리고 샛노란 옥수수 한 도막. 뜨듯한 고기 국물에 담긴 밥을 한 숟가락 뜨는 순간. '그래 이거였어' 눈빛으로 이구동성이 되었다. 


든든하게 먹고 돌아가는 길. 페달을 밟으며 생각에 잠겼다. 자각하지 못했는데 많이 그리웠던가보다. 한국, 가고 싶네... 


*카수엘라, 일반 식당 어디서든 먹을 수 있는 아주 흔한 음식이란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카수엘라


서핑에 도전하다 


코리안 푸드 파티 때 만났던 키에란의 친구 믹(Mick)과 카롤(Carolina)의 초대로 떠난 서핑 캠프. 이 아름다운 커플은 장애우를 상대로 서핑, 스노우보딩을 가르치고 있다. 그들과 함께 떠난 곳은 산티아고에서  2시간가량 떨어진 해변인 ‘뿌에르테씨요(Puertecillo)’.  도착하자마자 믹은 물 만난 고기처럼 보드와 함께 바다로 뛰어 들었다. ‘우리에게 서핑 가르쳐 준다더니 자기가 더 신났네…’.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차례가 돌아왔다. 


“보드에 엎드려 팔로 수영하듯이 휘저어 나아가. 그리고 적당한 파도가 오면 재빨리 보드에 올라타서 파도를 즐기면 되는 거야, 쉽지?” 


말만 들어서는 금방이라도 할 수 있을 거 같다. 먼저 물속에 들어간 믹.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몸에 딱 달라붙는 전용슈트. 입느라 낑낑댔지만 슈트 덕분에 덜 추웠다. 물을 거슬러 한참을 걸어 들어간다. 허리까지 물이 차고, 알려준 대로 보드에 엎드려 팔을 휘저어 보지만  좀처럼 나가질 않는다. 파도가 출렁일 때마다 보드도 울렁울렁. 쉽지 않다. 


믹이 뒤에서 보드를 잡아준다. 보드는 파도와 나란히 놓였다. 곧 밀려오는 파도와 함께 힘차게 보드를 밀어준 믹이 소리쳤다. 


“지금이야, 올라타!” 


이런! 도저히 올라탈 수가 없다. 몸을 일으키려고 움쩍하는 순간, 보드는 뒤집히고 그대로 파도에 휩쓸려 모래밭까지 밀려갔다. 몇 번을 시도해도 마찬가지. 바닷물만 잔뜩 마신 스테이시는 금방 포기하고 말았다. 슈트가 무겁다는 둥 짧은 팔로는 보드가 감당이 안된다는 둥. 계속하다간 몸살 나겠다고 투덜댔다. 


반면 저니는 엉망이긴 해도 재미있었다. 가고 또 가고 또 갔다. 그러더니 마침내 간신히 보드에 설 수 있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감이 오는 것 같았다. 아기가  첫걸음마 땔 때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 믹과 캐롤이 엄지를  치켜올려주었다. 


한번 더! 횟수를 더할수록 더 자주, 더 오랫동안 올라설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처음엔 볼 수 없었던 것들이 점점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하늘을 나는 새들, 일광욕을 하고 있는 사람들, 파도가 포말이 되어 사라져가는 모습. 내 거친 숨소리도 들렸다. 


여전히 보드가 전복되기 일쑤지만 이제는 그저 파도에 몸을 맡길 뿐이다. 보드에 두발을 올려놓은 짧은 순간. 그 기쁨을 간직한 채 오늘은 여기까지. 안 그럼 정말 몸살 날지도 모르니깐. 


*서핑은 생각보다 많은 체력을 요한다. 간식은 필수. 


믹과 캐롤의 도움으로 서핑에 도전해 보다



칠레인의 휴양지 푸콘 


바쁜 한 달이 지나고 농장체험 갈 차례. 짐을 꾸리다 말고 무슨 꿍꿍인지 콧소리를 내는 스테이시. 


"여봉~ 푸콘(Pucón)이 그렇게 좋다던데, 며칠 쉬었다 가면 안돼 용?" 


우리는 여행작가 코스프레로 문장의 폭풍과 사진의 급류 속에 정신적으로 지쳐 있긴 했다. 눈 덮인 화산과 넓은 호수, 평화로워 보이는 마을. 칠레인의 휴양지 푸콘. 게다가 농장과도 가깝다. 오케이. 가자고! 


대부분의 짐은 카사 비레이나토에 맡겨두고 자전거와 옷가지만 챙겨 터미널로 향했다. 2층 버스. 작은 화물칸에 짐이 차기 시작한다. 죄다 커다란 배낭. 자전거 넣을 공간이 간신히 남았다. 그런데 기사 보조(딱히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다짜고짜 자전거는 안된단다. 자전거 보다도 큰 짐도 싣는데. 실랑이가 계속되자 다른 승객들이 나서서 도와준다. 겨우 일정 비용을 치르고서야 실을 수 있었다. 


꼬박 열 시간을 달려 다음날 새벽 푸콘에 도착했다.  아침해가 떠오르고 눈 덮인 비야리카산이 보였다. 꼭대기에서는 회색빛 연기를 몽글몽글 내뿜는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활화산이지만, 눈 덮인 산기슭을 타고 내려오는 썰매로 유명세를 얻은 곳이다. 휴양으로 온 곳이니 풍경을 즐기는 것으로 만족하자. 


쌀쌀한 공기를 가르며 호숫가로 자전 거을 탔다. 한적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이것이 '휴양'이구나. 사흘 동안 몸도 마음도 푹 쉬었다. 그저 화산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고 담소를 나눴다. 때론 호수 주변을 산책하기도 하며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을 만끽하였다. 


여행을 떠나 온지 6개월 만의 쉼표였다.


칠레인의 휴양지 푸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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