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Chile, Coñaripe
네이버 블로그로 이전되었습니다. 브런치에서는 더 이상 업데이트 되지 않습니다.
http://blog.naver.com/hopedenkorea
우프란?
WWOOF(World-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는 유기농가와 자원봉사자를 연결하는 세계적인 네트워크로 금전적인 교환이 없는 신뢰를 바탕으로 그들의 문화교류와 교육의 기회를 넓히고 자연과 공존하며 지속가능한 글로벌 사회를 만드는 운동(프로그램)입니다.
새해 첫날, 우프 칠레에서 반가운 이메일이 왔다. 기다리던 호스트 목록이었다. 200여 개 밖에 안 되는 것으로 보아 최소한 취미농은 배재된 듯하다. 산티아고 이남의 농업지대로 지역을 좁히자 하루 만에 윤곽이 나왔다.
마티니 유기농 블루베리(Martini Brother’s Organic Blueberries)
하나. 때는 남반구의 가을인 수확철, 게다가 블루베리는 관심 작물이다.
둘. 30헥타르 규모. 우핑하기에 딱 좋은 크기의 준기업 농장이다.
셋. 일꾼 대부분이 마푸체(Mapuche), 파타고니아의 주인. 그들의 삶이 궁금하다.
넷. 기계를 전혀 쓰지 않는다?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알아보자.
다섯. 장발, 액세서리 사절. 제대로 된 일꾼을 원한다면 우리가 적격이다!
언제든지 와도 좋다는 호스트의 웰컴 메시지에 부랴 부랴 짐을 쌌다.
우핑지 코냐리페와 푸콘 사이에 있는 중소 도시 비야리카에서 호스트 파트리씨오(Patricio)를 만났다. 우리의 어설픈 스페인어보다는 그의 서툰 영어가 훨씬 수준이 높았지만, 보다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딸 카트리나(Katherina, 중학생)와 동행하였다.
"너 어릴 때부터 투자한 게 얼만데 이제 아빠 좀 도와주라"
코냐리페로 이동하는 한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카트리나의 영어 통역 덕분이었다. 우퍼를 처음 맞는다는 파트리씨오. 농장에 일손이 충분한데 왜 우퍼를 받는지 궁금했다.
“우리 농장 식구들이 외국인을 접할 길이 있어야지. 국내 여행도 어려운 형편인 걸. 그러니 우프가 딱인 거야. 누군가 여기로 와주면 얼마나 좋겠어? 같이 일도 하고 얘기도 나누고 말이야. 몇 차례 연락이 있었는데 말만 하고는 오지는 않더라고. 자네들이 처음이야”
유난히 반갑게 맞아주고 싱글벙글 하는 것이 마음에서 진정으로 우러 나온 것이었다. 이야기가 이어진다. 오랜 벌목으로 한쪽 귀가 잘 안 들리게 되면서 목소리가 커졌다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손수 지은 것인데, 그동안 벌목하면서 모아 둔 좋은 나무만 써서 만들었다며 반 백 년은 끄떡없다고. 카트리나의 '또 그 얘기냐’라는 듯한 표정에 모두 미소만 지었다.
코냐리페의 파트리씨오의 형인 로베르토(Roberto)의 집에 도착하였다. 우리가 묵을 곳은 바로 옆 캐빈. 로베르토가 동생들 놀러 오면 쓰라고 마련해 둔 곳으로 주방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수고해 준 파트리씨오 부녀에게 건조 김치로 만든 퓨전 볶음밥을 대접한 후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현관과 창문을 마구 두드리는 요란한 소리에 잠을 깼다. 새벽 3시에 누군가 했더니 로베르토다. 화산이 폭발했으니 서둘러 대피를 가야 한다고? 꿈결인가 하는 순간 나무숲 사이로 불기능을 내뿜는 비야리카(Villarrica) 산이 보인다. 저 산 너머 푸콘에서 한가롭게 있던 때가 바로 전날이었는데 화산 분출이라니 믿기 어렵지만 실제 상황이다. 사이렌 소리가 한 차례 들리고 대피 차량 행렬은 얼마 지나지 않아 언덕에 멈춰 섰다. 어둑한 호수 건너로 보이는 비야리카. 시뻘건 용암이 산등성이를 따라 끊임없이 흘러내린다. 강 건너 불 구경인 셈이지만 장관이었다. 천재지변의 난리에도 차분한 분위기다. 허겁지겁 카메라 하나 달랑 들고 나온 우리와 달리 비상식량과 담요까지 챙긴 주민들은 대피에 익숙한 듯했다.
날이 밝아오자 분출은 사그라들었고 비상 상황은 인명피해 없이 7시간 만에 종료되었다. 두려운 재앙이지만 우리에게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난리 통에 하루를 쉬고 이튿날부터 정상 출근이다. 약간 싸늘한 아침 공기를 가르며 페달을 밟는다. 등 뒤로 보이는 화산 비야리카. 타오르던 연기의 양이 줄었다.
30 헥타의 농장을 자유롭게 둘러보았다. (비야리카를 배경으로 주변은 적절한 높이의 산들이 둘러 쌓다.) 호수는 말할 것도 없고 강을 따라 흐르던 작은 개울 줄기가 농장 가운데를 지난다. 전체적으로 포근하고 환풍이 잘 되는 시원함에 있다. 사람 살기에도 무척 쾌적한 자리 배치, 풍수에 따랐다더니 사실이었다. 이론이기 전에 누구나 보자마자 저절로 좋은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 풍수인가 보다.
스무 개 정도로 나뉜 구획은 입구에 세워 둔 푯말 덕에 품종과 심은 시기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아침 이슬을 머금은 블루베리는 무척 건강해 보인다. 고랑 여기저기로 수확하는 손길이 바쁘다. 군데군데 벌통도 보인다. 농장 한 켠에는 드넓은 해바라기 밭이 있는데 유익한 곤충을 위해 심어둔 것이다. 반면, 통로 및 구획 가장 자리마다 가득한 허브는 해충 방지에 특효란다. 이 외에 병충해 예방 목적으로 칠리 발효액을 뿌린다고 했다. 유기 액비 제조장에서 정말로 고추를 발효하고 있었다. 바로 옆에는 말린 고추 포대가 쌓여 있고 소형 탱크에 시커먼 액체가 부글거리는데 맵지 않은 냄새다. 단순히 물만 넣고 발효하는 것인지는 연구 실험 과제다.
대양주에서 워밍업은 마쳤고 남미에서 일 좀 제대로 해 보자!
농장 한바퀴 도는데 두 시간이 걸렸다. 겨울에 비가 많고 여름은 건조한 칠레 날씨. 초가을 햇살은 여전히 따갑지만 그늘만 가면 땀은 금세 식는다.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에서 화훼와 민박을 하고 있는 '다빈이네' 아주머니 말씀이 생각난다. "수확하는 일이 제일 쉽지." 그렇다. 블루베리 따는 일은 쉽다. 다만 덥고 지루할 뿐. 라디오 대신 스페인어 교본을 틀어 놓고 옆 골의 처음 만난 분들과 함께 언어를 배워 가며 하니 시간이 잘 간다. 작업 반장인 재키(Jacky)의 지시 가운데 납작한 녹색 트레이는 블루베리로 채워져 간다. 가지 구석구석 주렁주렁 달린 모양이 탐스럽다. 까맣게 잘 익어 당분이 묻은 알알들. 연약해서 쉽게 짓무르거나 터질 것 같지만 제법 단단하다. 게 중에 엄지 손톱보다 큰 것들은 더욱 먹음직스럽다. 먼지도 별로 없어 씻지 않고 바로 먹어도 될 정도다.
오전 세 시간 동안 우리 두 사람 합쳐서 10 트레이, 약 20 키로를 탔는데 이는 다른 숙련된 분들 한 사람 분량이다. 각자의 수확량을 재어 꼼꼼히 기록하는 재키. 수당을 키로 별로 지급하기 때문이다. 저 멀리서 리키의 단짝 미겔(Miguel)이 소형 트랙터를 끌고 온다. 기계를 전혀 쓰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블루베리 가득 담긴 트레이를 옮길 때만 사용하고 있다. 하루에 한 차례 유일하게 기름 냄새와 기계음이 나는 순간이다. 생기 넘치는 아침 나절. 작업장은 상자를 접느라 분주하다. 막바지 수확철. 남은 분량은 파트 타임 온 아이들과 주민에게 양보하고 이제부터는 상품화 작업 개시다. 저마다의 포지션을 찾아 자리를 잡자 포장 라인이 돌아간다.
냉장 보관해 두어 탱글탱글 싱싱한 블루베리. 한 팔레트씩 꺼내어 선별에 들어간다. 언뜻 보기에 뭐 골라낼 게 있을까 했는데 선별 라인이 가장 바쁘다. 벌레 먹은 것, 밑동에 거미줄 낀 것, 터지거나 찌그러진 것, 덜 익은 것 등을 재빠르게 골라내야 한다. 분주한 가운데도 아주머니들은 재잘 재잘 하하 호호 이야기가 끊이질 않는다.
자동화 라인을 거쳐 투명팩에 담긴 블루베리 알갱이들. 노란 스티커와 함께 아침에 접은 종이 상자에 담겨진 모습이 드디어 어엿한 완제품으로 탄생하였다. 담는 일이 제일 쉬운 작업이다. 노란색의 로고 스티커와 함께 완제품으로 변신한 상품을 탄생시키는 작업이기에 뿌듯함이 있다.
파트리씨오의 막내 아들 파또(Pato)도 함께하였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현장 체험 성격의 자원봉사를 이곳으로 오는 것이었다. 겨우 여덟 살인데 경쟁심을 불태우며 욕심 부려 일 하는 것이 기특하다.
단단히 포장된 상품은 전량 미국으로 수출된다. 물론 비행기로. 유기농이기에 비싸게 팔 수 있어 좋지만, 칠레 자국 내에서는 '비유기농'으로 유통할 수밖에 없다며 속사정을 털어놓는다.
"곰팡이 억제를 위한 미량의 구리가루 사용이 문제라는 거야. 유럽 및 북미의 유기농 선진국에서는 통용되고 있지만, 세계 최대 구리 생산국이란 이유로 칠레 정부는 구리 사용에 대해 엄격한 제한을 두고 있어. (벽에 붙은 유기농 인증서를 가리키며) 이걸 보라고, 어쩔 수가 있어야지. 결국 독일에서 인증을 받을 수 있었어. 조합이 끈질기게 탄원하자 인증 기준을 고치겠다는 답변이 있었지만 행정 처리가 매우 느려. 몇 년이 걸릴지 아무도 몰라”
수출로 얻게 되는 수익은 늘지만, 수송 및 유통 시간이 길어져 상품의 신선도는 점점 떨어지게 된다. 정작 칠레 국민은 마티니 형제의 신선한 블루베리를 만날 수 없다니 안타깝다.
벌목으로는 더 이상 미래는 없다.
불과 십 수년 전만 해도 칠레에는 블루베리가 없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2005년 경 새로운 맛을 찾던 음료 회사의 판촉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된 이후 생산 농가도 많이 늘었다. 북미와 동유럽이 주산지인 블루베리. 여타 베리류보다 풍미가 무난하고 영양적으로 우수하다는 평가로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좋다. 스페인어로는 아란다노스(Arandanos)로 불리는 블루베리, 칠레에서는 아직도 블루베리에 대한 인지도가 낮다. 게다가, 유기농.
“여기서 지나는 사람 붙잡고 이게 유기농 블루베리요 하면, '유기농? 그게 뭐요?'라고 할걸?”
파트리씨오의 이 말이 의미심장하다. 칠레를 포함한 남미의 가난한 소작농에게 농약과 화학비료는 먼 나라 얘기일 뿐이다. 너무 비싸서 사 쓸 엄두 조차 내지 못하니 자연적으로 참농업, 순수 재배일 수밖에 없다. 오늘날의 친환경, 무농약, 유기농 등의 복잡한 분류와 까다로운 인증 기준, 고비용의 인증 절차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때다. 그나저나 그 당시에 파트리씨오는 어떻게 '유기농 블루베리’를 할 생각을 했을까.
“내가 예전에 벌목꾼이었다고 한 거 기억하지? 배우지 못한 우리 4 형제도 그 일 밖엔 할 줄 아는 게 없었다고. 대대로 이어온 그 가업이 싫었던 건 아니야. 수입도 꽤 좋았단 말이지. 그런데 우리 자식에게까지 벌목을 시킬 수는 없지 않겠어? 지금은 세상이 많이 달라졌잖아"
스페인어와 영어가 뒤섞인 영화 같은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늘어가는 민둥산을 보며 4형제는 고민했을 것이다. 뭔가를 심어도 시원찮은 판에 이래서는 미래가 없다. 그렇다고 뭘 어쩌잔 말인가? 딱히 대안도 없지 않은가! 그러던 어느 날, 운명 같은 만남이 찾아온다.
“그날도 어김없이 안데스 산자락에서 나무를 베고 있던 중이었어. 등산복 차림의 관광객 둘이 다가오는 거야. 아르헨티나로 이어지는 유명한 트래킹 코스 바로 옆이 작업장이었거든. 그들은 미국인이었는데 스페인어를 곧잘 하더라고. 이런 저런 이야기가 이어졌고 근처 숙소로 자리를 옮겨 맥주도 한잔씩 나누었더랬지. 무슨 일 하느냐고 물으니 워싱턴주에서 유기농 블루베리 농장을 하고 있다는 거야. 무식한 벌목꾼이 유기농을 알겠냐고? 또 블루베리라니, 금시 초문이었어.”
하지만 본능적으로 ‘기회’라고 느낀 파트리씨오. 얼마 후 그 인연으로부터 초청을 받아 미국으로 향했다. 두 달 간의 우핑이 시작된 것. 어설프게나마 영어를 익혀 나갔고 미지의 세계였던 작물에 대한 기초 공부를 마친다. 형제들을 설득해 있는 자금 모두 끌어 모아 묘목을 구입하고 땅을 마련했다. 지금의 꼬냐리페 이 땅은 마푸체 영역으로 매매가 금지된 대신 저렴한 비용에 장기 임대가 가능했다. 한국에도 그런 곳이 있으면 좋으련만. 형편 되는 대로 차츰 늘여간 것이 십 년에 걸쳐 30 헥타에 이르렀다.
“농장을 시작하고 7년간은 계속 재투자만 들어가지 뭐야. 본업인 목재일과 건축일을 겸해야 했지. 다른 형제들도 마찬가지고. 겨우 제 작년부터 수익이 조금씩 나기 시작하더라고. 조금 보태서 얼마 전 산티아고에 작은 아파트 하나 마련했어. 우리 아이들 대학 공부할 때 필요할 거 아냐”
감동이었다. 농장을 시작한 뜻이 이렇게 이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잠정 후계자까지. 겨우 여덟 살이지만 매주 아버지를 따라 농장에 오는 것이 무척 기쁘다고 하는 파또. 후손, 후대의 존재 이유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다.
파타고니아의 주인 마푸체와 함께
즐거운 주말, 우핑도 주말은 쉰다. 우핑의 하루 작업 시간은 4 ~ 6 시간이지만, 이곳에서는 일이 재밌기도 하고 마푸체들과 함께 하는 것이 좋아 풀타임 근무를 하였다. 때로는 잔업까지 도왔던 터라 더욱 기다려지는 주말이었다.
첫 일요일. 마티니 형제의 어머니 생일이라고 우리를 가족 식사 자리에 초대했다. 자신은 없지만 바이올린을 들고 갔다. 생일 축하 노래에 맞추어 반주를 하자던 멋진 계획을 했던 우리. 연일 이어진 열심 우핑으로 연습은커녕 악보조차 못 다 외운 상태였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겨우 겨우 ‘고향의 봄’을 연주하였다.
박수를 받았지만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자전거, 우핑, 바이올린. 어느 것 하나 포기할 수 없는 여행이지만 자연스레 후순위로 밀리는 바이올린이다. 최소한 생일 축하곡은 마스터해야겠다고 다짐하였다. 우애 좋은 네 형제의 어머니, 오래도록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바란다.
스무 명 정도 되는 농장 식구 가운데 셋은 혼혈칠레인(마푸체+유럽인)이고 나머지는 모두 마푸체이다. 남미의 끝자락 파타고니아 지역의 원주민. 그들 고유의 언어는 마푸둥군(Mapudungun). 동료들은 아침마다 “마리 마리(Mari mari, 안녕하세요)”를 외치며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다. 몇 마디 배워보았다. 뭣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뺑이(Peñi, 남자에게 쓰는 호칭)”라고 하자 모두 까르르 넘어간다. 그저 재밌나 보다. 바뀐 역사의 영향으로 현재는 자기네끼리도 마푸둥군은 거의 쓰지 않고 스페인어를 쓰고 있다고 한다. 몇몇 지방 학교에서는 마푸둥군을 정식 교과목으로 채택하여 명맥을 잇도록 하고 있다니 좋은 소식이다.
생초보 수준에 불과한 우리의 짧은 스페인어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인칭별로 동사 활용이 필요하지만 당연히 기본형으로 밖에 쓸 수 없던 우리. 몇몇은 금세 알아차리고 대답할 때엔 기본형과 활용형을 함께 말해 주었다. 센스 만점! 남미 첫 우핑 그 후 어디서도 그런 “대접”은 받아 보질 못했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마푸체 가족과 함께한 시간.
토요일 오후. 할머니 생일 때 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바이올린을 들고 문을 나서는데 마당에서 파트리씨오(Patricio)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하고는 우리를 멈춰 세운다.
“자네들, 그거 알고 있어? 마푸체 집에 가면 음식을 절대 남겨서는 안돼. 남긴다는 건 그를 공격하겠다는 뜻이니까. 싸오는 방법이 있긴 하지. 비닐 봉지를 꼭 챙겨가라고.”
농장 건너 길에 사는 산드라(Sandra).
집 확장 공사로 분주한 마당을 지나 집안으로 들어가자, 파트리씨오 말대로 역시 한 상 차려져 있었다. 온세(Once)라고 하는 간식 시간인데 고기까지 구워놓았다. 생각지도 못한 이른 저녁을 먹게 되었다. 갓 튀겨 따뜻한 소파이야(sopailla), 설탕을 솔솔 뿌린 것이 찹쌀 도넛 맛이 났다. 커피 대신 쌉쌀한 마테차를 곁들였다. 독특한 모양의 작은 금속 잔에 이따금씩 물을 첨가해 가며 다섯 사람이 돌려가면서 한 모금씩 대롱을 빨았다. 마치 담배를 나눠 피는 모양새다. 음식이 많이 남아 슬쩍 걱정되던 참에 많이 드셨으면 호수가로 산책이나 가잔다. 언니 가족도 먹을 거라며 남기는 것에 전혀 맘 쓰지 말라는 눈치다. 아 다행이다.
산드라의 아버지는 세상의 이치를 깨우친 듯한 그런 어진 눈빛으로 우리를 따스하게 맞이해 주었다. 웃음거리가 되면서 배운 “마리 마리 뺑이”를 써먹었다. 반은 눈빛으로 알아들은 마푸체 삶의 이야기. 자연의 섭리에 따라 서로 존중하며 살아온 역사, 이 땅 파타고니아는 대지의 어머니로부터 잠시 빌린 것뿐이라고. 대지의 아들 딸은 그저 마음으로 통하였다.
스페인을 비롯한 서양 국가로부터의 갖은 침략에 맞서 그들의 터전을 지켜낸 파타고니아의 주인, 마푸체. 구식 가옥에 전통 복장을 상상한 건 아니다. 다만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산업화, 현대화된 오늘 날에도 여전히 가축을 키우며, 농사만으로 생계를 꾸리고 있는지. 확인은 간단히 끝났다. “나는 그대로요. 당신들은 변하였소?”라고 묻는 듯한 그의 표정이 눈에 선하다.
일요일 오후 1시. 멜리사(Melisa) 가족이 픽업을 와 주었다. 3km 정도의 거리지만 산 자락에 위치한 로사(Rosa) 아줌마네로 가는 길은 제법 복잡했다. 주소도 길 이름 조차 모르는 초행길을 자전거로 가겠다고 했으니 주변에서 그렇게 말렸나 보다. 예쁜 꽃무늬 블라우스를 차려 입은 로사는 무척 신나 보였다. 음식량은 적당했다. 알고 보니 파트리오가 우리를 놀린 것이었다. 적포도주와 백포도주를 여러잔 섞어 마신 우리는 술에 취했고 로사는 이야기에 취했다.
“내가 말이야. 지금은 이래도 산티아고(Santiago) 살던 도시녀였어. 아들 넷 낳고 직장일 하며 그럭저럭 괜찮았지. 그런데 한 해 두 해 가면 갈수록 여기 고향 생각이 점점 깊어지더라고. 결국 내려온 거지, 우리 잘 생긴 막내 하고 이렇게 둘이서 말야. 어때? 여기 정말 좋지 않아? 아들~ 여기 한국에서 온 손님들한테 네 애마 좀 구경시켜 주렴!”
수줍음 많은 앙헬(Angel, 로사의 막내 아들)은 다 낡은 수건 한 장을 들더니 따라 오라는 손짓을 한다. 산 한 가운데 펼쳐진 평지 군데군데 가축들이 노닐고 한 켠에서 풀을 뜻고 있는 말이 보였다. 앙헬의 말 까바쵸(Cabacho)다. 느슨한 고삐를 풀고 가져온 수건을 말 등에 깔더니 그 위를 턱 하고 올라탄다. 바쁠 것 하나 없는 길, 까바쵸와 함께 천천히 걸었다. 한 낮의 가을 햇볕이 평화로움을 더하는 그때 비로소 로사의 말이 실감되었다. "그래요 참 좋군요." 이 곳이 잊히지 않더라는 로사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까바쵸의 꼬리를 만져보았다. 앙헬에게 바이올린 활을 보여주면서 말 꼬리로 이걸 만든다는 제스처를 하니 그저 수줍은 미소를 보일 뿐이다. 그러고선 자기 방으로 들어가더니 곱게 땋은 단발 머리 말총을 가지고 나온다. 자랑스러워하는 그를 향해 엄지를 추켜올린 순간, “자 가져요”라는 눈빛으로 말총을 내민다. 분명 그에게 아주 소중한 것일 텐데, 괜한 얘기로 부담을 준 꼴이 됐다. 난처한 표정의 우리에게 로사는 신선한 토종 달걀과 지난 봄에 만들었다는 산딸기잼을 가져와 부담을 보탠다. 감사히 받는 수밖에. 하나 거절하려다가 세 개가 생겼다 :D
해가 산고개를 넘어가자 우리도 산을 내려왔다. 왔던 길과는 다른 지름길. 로사의 다이어트용 출퇴근 길이란다. 산등성이 사이로 샛강을 따라 내리막이 이어진다. 오랜 고심 끝에 고향의 품으로 돌아온 로사. 그녀는 더없이 행복하다.
특별한 선물
마지막 날 저녁. 마티니 형제가 준비한 특급 바비큐 만찬으로 서로의 아쉬움을 달래었다. 참숯향 솔솔 나는 고기를 한 입 베어 물고 한 손엔 맥주잔을 들어 살룻(Salud - 스페인어로 건강, 건배)을 외쳤다. 유달리 열심히 일을 했고 그렇게 만드는 뭔가가 있는 이 곳. 이것도 풍수의 영향일까? 식사를 마치자 파트리시오가 조그마한 상자를 꺼낸다. 카넬라(계피) 나무 열매와 아기자기한 귀걸이 세트. 카넬라는 농장에서도 많이 본 것인데 마푸체가 귀하게 여기는 약용 식물로 함부로 손을 대면 안된다고 했었다.
“이게 뭔 줄 알아? 이곳 마푸체 지도자로부터 구한 아주 귀한 거야. 특히 스테이시는 늘 몸에 지니도록 해. 그러면 곧 아기가 생길 거니까”
자식이 넷인 그는 자신도 그 열매 덕을 많이 봤다면서 희주 거 린다. 보답할 것이 딱히 없는 우리는 그저 마음속에 새길 뿐이다. 잊지 말자, 우리가 떠나온 목적. 그리고 언젠가 이들에게 들려주자고, 또 하나의 ‘식목’ 이야기를.
보다 많은 사진과 이야기는 저희 홈페이지와 페이스북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홈페이지 http://www.flybasket.com
페이스북 http://www.fb.com/flybask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