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pa Nui & Pos de Iguaç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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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 저니, 스테이시
세상은 넓고 볼거리는 왜 그리도 많은지.
세계일주를 하면 후회 없이 다 가볼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웬걸?!
순간순간이 선택과 포기의 연속이다.
"저니, 이스터 섬 어쩔까요? "
"난 '이스터 섬' 가려고 세계일주 나온 거야.
'다음'이란 없는 거 알지? 더 이상 말 않을게"
한 달 간의 커피 농장 체험이 끝날 무렵, 이스터 섬을 가느냐 마느냐를 놓고 또다시 고민에 빠졌다. 때론 목적지를 두고 서로 입장이 다른 경우가 있다. 이번이 그랬다. 스테이시에겐 그곳이 마음이 닿지 않는 곳이었다. 리마로 돌아가면 한동안은 북으로 달리는 일만 남았는데... 페루를 떠나고 나면 영영 기회는 없을 것이고, 단품으로 가기엔 부담이 컸던 터. 이리저리 궁리 끝에 그녀가 묘안을 내놓았다.
“당신은 이스터 섬, 나는 이과수 폭포. 둘 다 가는 거 어때요? 호호호~”
서로가 맘에 두고 있던 곳을 하나로 묶어 떠나기로 한 것. 두 곳을 가기 위해 비행기를 다섯 번이나 갈아타야 하지만, 그것은 문제도 아니었다. 기회는 지금 뿐이다.
그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아이
남태평양의 작은 섬 라파누이(Rapanui).
1727년 네덜란드 탐험가가 부활절에 섬을 발견한 데서 영어로는 '이스터 아일랜드(Easter Island)', 스페인어로는 ‘이슬라 데 파스쿠아(Isla de Pascua)’라고 불린다. 하나의 대상에 붙은 수많은 이름들. 이름이란 존재를 기억하는 최소 단위일까. 저니는 줄곧 이곳을 '모아이 섬'으로 알고 있었다. 저니가 처음 이 섬을 알게 되었던 것은 고교시절, 7080 세대의 아이콘 ‘서태지와 아이들’을 통해서였다. 8집 솔로 앨범 '모아이(Moai)'의 배경이 된 곳. 그 이름이 방향이 되어 우리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항가로아(Hanga Loa)란 이름만큼이나 한가로운 공항은 나무 지붕 하나를 지나 바로 밖으로 이어지는 작은 공항이었다. 밖으로 나서자 꽃과 조개로 만든 목걸이를 목에 걸어준다. 픽업 나온 안주인들의 환영인사. 그동안 공항을 지날 때면 마중 나온 사람들 손에 들려 있는 플래카드, 내게 와락 달려들 것 같은 아이, 그리고 따스한 포옹과 미소, 그것들은 우리의 것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공항 마중'이란 걸 받으니 괜스레 가슴이 뭉클하였다.
첫날 저녁. 기분을 내고 싶어 들어간 레스토랑. 좋아 보이긴 해도 그렇게나 비쌀 것 같지 않았는데 '라파누이 프리미엄'을 깜빡한 우리. 그냥 나오기엔 아쉽고 가지고 나온 현금 한도 안에서 겨우 1인분을 시킬 수 있었다. 맛도 좋고 분위기도 딱이었지만, 음식값보다 부담스러운 것은 주변 사람의 눈길이었다. 1인분을 나눠 먹는 모습에 자꾸 직원이 눈치 주는 것 같고, 몇 안 되는 손님이 쳐다보는 것 같아 대화도 겉돌기만 했다. 그땐 그랬다.
'남들이 뭐라던 간에 신경 쓰지 마, 자신만 떳떳하면 되는 거야.'
물자 공급이 어려워 물가 높기로 유명한 라파누이를 실감한 저녁 식사. 출발 전 생수도 챙기자는 저니의 말을 듣길 잘했다. 채소와 간편 요리 제품 등을 준비해 온 덕에 부담을 줄였다.
둘째 날. 숙소에서 차를 빌려 해변을 달렸다.
중심가 렌트업체를 통하면 더 높은 차종에 조금 낮은 가격에 빌릴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기엔 우리는 게을렀고 숙소 제시 가격이 좋았다. 무엇보다 숙소에 대한 인상이 좋아서였나 보다. 무보험이 약간 걸렸지만 속도낼 구간도 없고 언제나 안전 운전하는 저니니깐.
모아이는 라파누이의 전역에 걸쳐 있는 석상을 말한다. 그 규모와 기이한 모습 때문에 한때 외계인이 만들었다는 의혹까지 있었다. 그 신비의 존재가 지금 우리 앞에 우뚝 서 있다.
'당신을 만나기 위해 여기 왔는데 당신은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있네요.'
그들의 별로 돌아가기 위한 우주선이라도 기다리는 것일까. 커다란 눈은 하나 같이 모두 하늘을 향하고 있다. 우리도 한 동안 그들이 바라보는 곳을 바라보았다.
제주도의 십 분의 일도 되지 않는 작은 섬.
모아이를 보고 있자면 제주의 돌하르방이 떠오른다. 모아이 사이로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은 그리움으로 번진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가족, 친구들이 그리웠다. 섬 일주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우체국에 들러 엽서를 샀다.
그리운 얼굴을 하나씩 떠올리며 엽서에 담았다. 찰싹찰싹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소리는 그리운 목소리가 되어 들려오는 듯하다. 절로 미소 짓게 되는 얼굴들 그리고 가슴 사무치게 저며오는 그리움. 잊혔던 마음이 가슴에 스며든다.
‘내 가슴속에 남은 건, 이 낯선 시간들
내 눈에 눈물도 이 바닷속으로
이 낯선 길 위로 조각난 풍경들
이런 내 맘을 담아서 네게 주고 싶은 걸
in the easter island’
*서태지 모아이 곡 가사 중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폭포, 이과수
'세계 3대 폭포’라고 불리는 폭포 중 가장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이과수(Pos de Iguaçu, Portuguese). 폭포가 있는 강을 경계로 브라질, 아르헨티나 국경이 나뉜다. 공교롭게도 3대 폭포 모두 두 나라의 국경에 걸쳐 있어 폭포의 다른 모습을 보려면 각각 출입국 심사를 받고 넘어 다니며 봐야 한다는 것이다. 간밤에 비행기에서 바라본 이과수의 야경. 가로등을 따라 비친 이과수의 실루엣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봉 지아(Bom dia, 아침인사)!"
아주 간단한 포르투갈어 몇 마디를 공부하고 갔지만 막상 들으니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스페인어에 대한 생각에 이어, 또 한 번 식민지배와 언어 상실이란 문제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또한, 일제 치하에서 필사적으로 지켜낸 우리 한국어가 더욱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한글과 한국어. 기회만 되면 현지인에게 한글을 알려주는 저니. 남미 친구들이 한글로 써준 자기 이름을 보고 웃음 짓던 모습이 떠오른다.
**식민지 :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아 독립 국가로서 주권을 가지지 못한 나라. 또는 그러한 지역(*출처 : 국어사전)
일제 치하에서 한국어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운 분들을 위해 묵념.
우리는 브라질 '상 파울로(São Paulo)’로 들어왔기에 브라질의 이과수를 먼저 향하였다. 공원 입구에서 15분가량 버스를 타고 내리자 강을 따라 이어진 산책로가 나왔다. 크고 작은 폭포가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낸다. 풍부한 수량 덕분인지 주위는 늘 푸르다. 촉촉이 가랑비도 내려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길 끝에 다다르자 거대한 폭포수 커튼이 눈앞에 나타났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규모에 입이 벌어진다. 낙차로 생긴 물줄기는 끊임없이 물보라를 만들어 낸다. 넋을 놓고 있는 사이 옷은 시나브로 젖어버렸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강 가운데로 아르헨티나 측의 전망대가 보인다. 백 미터도 안 되는 거리. 지척인데도 저곳은 다른 나라다. 내일은 저곳에 서서 오늘 서 있던 이곳을 바라보겠지. 서는 곳이 다르면 풍경도 달라진다지만 대상은 하나이다. 그 어느 쪽에서 바라본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상 그대로 인지하고 느끼는 일이 중요하지 않을까.
산이나 강을 경계로 지역을 나누고 국가의 경계를 정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그리고 미국이나 아프리카 국가들처럼 땅을 자로 그은 듯 나눈 것은 한 덩이 땅이 너무 넓어 편의를 위한 것일까? 인간이 만든 인위적인 경계가 대자연마저도 나누어 버린 건 아닌지 모르겠다. 좋든 싫든 이 경계로 인해 하나의 대상은 비교의 대상으로 만들게 된다. 이과수 폭포를 두고 브라질 쪽이 좋다던지, 아르헨티나 쪽이 좋다던지… 그저 이 폭포는 오래전부터 하나로 존재했고 지금도 그러할지라도. 경계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리는 그 틀에 맞춰 움직일 수밖에.
다음날 숙소에서 만난 프랑스 커플과 함께 아르헨티나로 향했다. 출입국 절차는 택시에 앉은 채로 간단히 마쳐 좋았다. 이십여분 달려 도착한 공원 입구에서 기차로 갈아탔다. 이과수의 하이라이트 '악마의 목구멍'으로 가는 기차라... 걸어가기엔 조금 먼 거리. 유모차를 탄 아이에서 머리 희끗한 어르신들까지 기차를 타려고 늘어선 줄이 길다. 한 시간 남짓 지나고 경쾌한 도착음을 알리며 열차가 들어왔다. 손님을 빽빽하게 실은 열차가 출발하자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종착지 이과수 역에 내려 이어진 나무다리에 오르자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비옷을 벗으며 걸어오는 그들은 모두 무표정하거나 뭔가를 끝냈다는 느낌만 전해질뿐, 악마의 목구멍을 보며 무슨 생각들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2km 남짓의 가교를 따라 걷자니 내가 서 있는 곳이 강인지 호수인지 모르겠다. 이윽고 어제 맞은편에서 보았던 전망대가 나타나고 드디어 악마의 목구멍 앞에 섰다. 낙차가 훨씬 더 큰 탓에 물보라의 규모도 엄청났다. 전망대에 서자마자 물세례를 받았다. 옷이 젖든 말든 아래로 떨어지는 물줄기를 멍하니 바라본다. 어느샌가 물줄기는 그 흐름을 멈춘듯한 느껴지고 점점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착각이 든다. 실제로는 빠르게 쏟아져 내리고 있는데도... 얼굴에 한 차례 물세례를 얻어맞고서야 정신이 들었다.
이 세상엔 말과 글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가득하다. 비록 경계의 틀에 갇혀 그 진면목이 왜곡되어 전해질지라도, 그렇기에 직접 보고 느낀 자신의 경험으로 판단해야 하지 않을까.
떠나자! 아직 세상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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