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버릴 도리가 없었다

나의 눈물버튼

by 조이


오래된 소설을 읽었다. 주인공인 쌍둥이 형제가 구걸하는 기분을 느껴보기 위해 일부러 걸인 행세를 하는 장면에서 나를 멈추게 한 문장이 있었다.


"우리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것은 버릴 도리가 없었다."
-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51p


쌍둥이 형제는 구걸하며 받은 돈, 식량, 물건들을 집에 돌아오는 길에 숲 속으로 모두 던져버린다. 그저 구걸하는 기분을 느껴보고자 실험했던 것이기에, 사람들에게 받았던 것들은 그들에게 필요치 않았다.


그러나 한 아주머니가 '너희에게 줄 것이 없어서 미안하다'며 머리를 쓰다듬어준 것은 버릴 도리가 없었다는 문장에 나는 턱 걸려 멈추었다.


나의 눈물버튼은 '진심'이라, 진심이 통하는 순간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속수무책이다. 이번에도 마음에 고여있던 물들을 순식간에 코로 빨아들여 눈으로 보내버렸다. 그렁그렁한 눈을 얼른 치켜뜨고 허공에 시선을 두었다. 아주머니의 진심으로 전해진 사랑은, 물질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그 문장에서 확인받았다.


당연히 사랑은 말로만 해서는 안된다. 배고픈 자에겐 양식으로 채워주는 것이 사랑이고, 추위에 떠는 자에겐 따뜻한 온기를 더해주는 것이 사랑일 것이다. 사랑에는 실체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때로는, 눈빛에도 작은 손길에도 사랑이 담겨 전해질 수 있다. 사랑은 그 자체로 힘이 있다는 것을 나는 이 문장에서 읽어냈다.


그 아주머니는 우리 엄마이기도 했고, 나이기도 했다. 나는 그 아주머니에게서 엄마의 눈빛을 떠올렸다.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에는 뿌듯함, 애달픔, 미안함, 걱정 등이 버무려진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건 분명 사랑이었다.


물질세계로 이루어져 있는 생활의 측면에서는 많이 힘들고 아쉬웠다. 나의 부모는 정말 그게 최선이었을까, 그것밖에 되지 않는 것일까, 왜 남들의 차선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인 걸까, 나는 그들을 등지면서도 멀리 나아가지 못한 채 괴로워했다.


그러나 그것이 엄마의 한계였고, 엄마의 세계였다. 그 세계 속에서 나는 그녀의 사랑을 받아먹고살았다. 그 세계에서 그녀가 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나는 받았다. 엄마의 눈빛은 버릴 도리가 없다. 결코 버릴 수 없는 사랑의 유산이다.


그리고 어느새 삼십 중반을 넘어 중년을 향해 가고 있는 나는, 나의 아이들을 비롯한 수많은 아이들을 떠올려본다. 그들 속에서 나를 보면서도 줄 것이 없다며 지나쳐버린 순간들을 생각해 본다. 그저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만이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머리를 쓰다듬으며 전해준 진심, 그것은 버릴 도리가 없었다는 어린 소년의 말에 용기를 내본다. 단 한 번 쓰다듬어줄 뿐이지만 그 손길이라도 먼저 내밀어볼 용기를. 머리로 재빠르게 계산 후 줄 것이 없다며 지나치기 전에, 줄 수 있는 것이 없음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이라도 전해줄 수 있다면.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버릴 수 없는 진심으로 다가간다면. 뻗은 손길이 뿌리쳐진다 해도 뻗어볼 만하지 않을까. 주머니 속에서 만지작거리는 손이 부끄러워지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버튼이 눌리면 눈물이 나는, 내 안의 진심을 슬며시 꺼내어볼까.



* 사진 출처: Unsplash


그동안 <내가 듣고 싶던 말을 내게 해줄게> 브런치북을 사랑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결핍이 있는 엄마로서 어떻게 아이들의 삶을 채워줄 수 있을까 늘 고민스러웠습니다. 이 기록이 그것을 채워주는 역할을 하길 바랐는데, 역시나 '내가 듣고 싶던 말'이었기에 글을 쓰는 과정에서 나의 결핍이 먼저 채워진 것 같습니다. 어느새 최대 연재 횟수를 채워서 마무리하지만 여전히 나의 딸(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많이 떠오르고 생겨납니다. 잠시 쉼을 갖고 쌓아놓은 할 말이 넘칠 때쯤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연재하는 동안 저의 독자가 되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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