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이야!

나를 존중하지 않는 친구에게

by 조이


얼마 전 아이를 속상하게 했던 A가 다시 딸아이의 입에서 나오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행히 저번처럼 울만큼 크게 속상했던 일은 아니었지만, 억울함이라는 감정이 쌓이지 않도록 나는 딸에게 신나게 맞장구를 쳐주었다. 직장 동료의 말로는 부모가 아이보다 미쳐 날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아이에겐 위로가 되고, 아이 스스로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는 상황 판단을 하게 된다고 했다. 아이의 성향이 비슷했던 터라 신선하게 받아들였던 유쾌한 조언이었다.


나는 딸아이가 A라는 아이로 인해 속상했다는 사실보다도, 그 상황을 아이가 스스로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내게 전달하는지 그 과정에 집중하기로 했다. 아이는 이미 저번에 내 생각을 뛰어넘은 문제해결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복되는 A의 잘못된 행동(주도권을 남용하는 모습)에 대해서 아이는 뭔가 부당한 것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그게 뭐야. A는 자기가 선생님도 아닌데 왜 혼내? 그리고 D는 너(B)와 C사이의 일을 왜 A한테 일러바치는 거야? 너와 C 둘 사이의 일이었고 이미 네가 C에게 먼저 사과해서 푼 일인데."


아이가 내게 상황을 전달해 주는 과정에서 사용한 '일러바쳤다'는 표현, '혼냈다'는 표현만으로도 A가 아이들 사이에서 갖는 권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B와 C사이에 있었던 일은 물건을 각자의 책상으로 서로 밀어낸 일이었다. B와 C는 베스트프렌드라 하면서도 평소처럼 티격태격하는 모습이었으나 굳이 둘 사이에 싸움이 났다고 A에게 '일러바친' D의 행동도, A가 선생님같이 B를 '혼낸' 행동도, B가 혼나는 걸 보며 옆에 있었으면서도 이미 풀었다고 말하지 않은 C의 행동도 모두 잘못된 거라고 말해주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직장 동료의 조언대로 미쳐 날뛰었다.


"유치해서 못 놀겠네, 정말! B야, 엄마가 보기엔 얘네들 없어도 될 것 같은데? 뭐 친구가 이래? 이런 친구들이면 없는 게 낫지 않아???"


"엄마 같으면 이렇게 말했을 것 같아. '나는 이미 C랑 풀었는데 네가 무슨 상관이야?'라고. 그리고 C에게는 '나의 옆에 있었는데도 함께 나서주지 않아서, 나의 기분이 좋지 않았던 걸 알면서도 달래주지 않아서 속상했다'라고 말해볼 거야."


아이도 유치하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초등학교 2학년은 함께 놀 친구들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감정을 처리하는 방식이 미숙할 나이다. 아이를 비롯해서 친구들 모두가. 다만 그 과정에서 아이가 적어도 스스로의 감정에 정직하게 반응하길 바랐다. 그래서 내게 있었던 상황을 그대로 전달해 주는 것, 친구들의 행동을 그들이 보여준 그대로 판단하는 것, 그것에서 느낀 자신의 감정 또한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 이 과정을 통해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하길 바랐다.


이런 나의 바람이 통했던 걸까. 며칠 뒤 다시 A를 입에 올린 딸아이는 사이다썰을 내게 들려주었다. 답을 쓰는 과정에서 한쪽 손으로 가리고 썼는데 A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 그런데 지난번과 달리 B는 이렇게 응수했다고 한다.


"내 마음이야."


A는 아무 말도 못 했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B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나의 마음을 존중하지 않는 타인에게 '이것이 내 마음'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건 먼저 스스로를 존중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앞으로도 기죽지 않고 위축되지 않고 자신을 존중하길 바란다. 나를 사랑해야 타인을 사랑할 수 있을 테니까.



《내가 듣고 싶던 말, 네게 하고 싶은 말》


"너를 존중하지 않는 친구에게 어떻게 해야 할까? 저번처럼 '네가 이렇게 해서 내가 속상했어'라고 말하는 것, 이번처럼 '이게 내 마음이야'라고 말하는 것 모두 엄마는 참 잘했다고 말해주고 싶어. 그러나 이런 일이 계속해서 반복되거나, 너를 존중하지 않는 타인의 태도가 또 다른 타인들에 의해 정당화되는 것 같을 때도, 너는 반드시 너 스스로를 존중해야 해. 어떤 대단해 보이는 사람이나 혹은 많은 사람들이 너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존중받지 못해도 되는 사람인 건가 하고 의심해선 안 돼. 다수의 행동이 항상 옳은 건 아니거든. 특히나 미성숙한 사회일수록 선동이 쉬운 법이지. 지금 너희 나이에서는 특정한 친구의 말에 휘둘리는 아이들이 많을 거야.


그런데 슬프게도 어른들의 세계라고 다르지는 않아. 그러니 늘 나 자신을 지켜야 해.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이게 내 마음이라고. 그것에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어. 네 마음을 알아줄 만한 사람이 네 곁에 없을 수 있고, 곁에 있는 사람은 네 마음을 알아주지 못할 수 있지. 이렇게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준 것처럼 엄마에게 말해준다면 엄마는 어느 때고 미쳐 날뛸 수 있어. 물론 네가 원한다면 말이야. 그러나 전달할 힘조차도 없을 때, 이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렴. 너만큼은 모든 걸 알고 있다고. 그 상황을 온전히 지켜보고 겪어내고 너의 편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은 너 자신뿐이라는 걸. 너는 존중받아 마땅한 사람이란다."



*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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