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아이들을 내보낸 자로서

내가 갖는 책임은

by 조이


아이들을 데리고 자주 방문하려고 노력하는 장소는 바로 도서관과 박물관이다. 서울에 십 년 동안 살면서도 롯데월드 한 번 데리고 가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놀이터가 더 이상 크게 느껴지지 않을 때, 미끄럼틀이 시시해질때즘 롯데월드에 데리고 가려한다. 어른이 가도 입이 떡 벌어질 만큼의 화려한 퍼레이드와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하기 때문이다. 물론 어릴 때일수록 엄청난 신세계를 경험하게 되겠지만, 시시하고 잔잔해 보이는 것들로도 내면세계가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을 일찍이 경험하면 좋겠다. 어쩌면 그런 능력은 어린아이들만 가지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아이들은 시끄럽고 왁자지껄해 보이지만, 풀 한 포기와 모래 한 줌, 굴러가는 낙엽으로도 아이들은 재미있게 놀 수 있다. 거대하고 화려한 것에 만족하는 건 되려 어른일 수도 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인 아들은 게임에 눈을 떴다. 생일선물로 만원도 되지 않는 인싸맨 게임기를 요구했다. 내가 어릴 적 해본 적 있는 다마고찌 같은 게임기라서 가볍게 사주었는데 그것도 남편에게 한 소리 들어야 했다. 이것 이상으로 게임의 세계를 확장시켜 줄 의지는 없다. 고학년이 되어 스마트폰을 갖게 되면 친구들과 함께 하기도 하겠지만, 게임으로 인한 아들과의 실랑이를 최대한 늦추고 싶은 마음이다. 작은 것에 충성되어야 큰 것에도 충성하는 법이니, 이 작은 게임기를 어떻게 다뤄가는지 지켜보는 중이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규칙을 준수하고 있다. 규칙을 정하는 목적은 '통제'가 아니라 '칭찬'이라는 전문가의 말을 명심하고 있다. 지나친 통제는 아이가 자기 절제력을 발휘하는 기회를 빼앗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아이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


종이 접기에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집중해서 변신로봇을 만들어내는 지금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게임이 본인의 능력치를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에서 자기 효용성을 느끼게 하는 순기능이 있다면, 종이접기 실력이 업그레이드되는 것도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지. 무엇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이다음에 어떻게 접어야 이 모양이 되는지' 연구하고 반복하는 과정에서 몰입력과 이해력이 자연스럽게 길러진다. 아이는 종이접기 과정을 즐긴다. 결과물에 크게 집착하지 않는 탓에 작품(?)은 여기저기 굴러다니기도 하고 버리기도 편하지만, 이제는 전용 전시장을 만들어줄 생각이다. 아니면 유튜브를 찍어 올려볼 생각이다. 재미의 영역에 있어서도 일찍이 생산자의 시각을 갖기 원한다.


어른이 되어 새롭게 배우는 투자의 세계는 어쩌면 '돈놀이'같기도 하다. 돈을 불리는 게임에서 많이 불리는 사람이 승리하는 자본주의 세계. 패자의 존재를 암시하는 승자라는 표현이 어쩐지 잔인하지만 현실이 진정 그러하다. 돈이 있는 사람은 머니게임에 자주 참여하고 또 종종 승리하지만, 돈이 없는 사람은 게임을 제대로 즐겨보지도 못한 채 있는 것마저 더 있는 사람에게 빼앗기고 만다.


나는 생존을 위한 오징어게임처럼 투자의 세계를 어렵게 공부하고 있지만, 아이는 좀 더 유연하게 진입하길 원한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게임은 재미적인 요소가 있으니 필경 재미있어야 할 텐데. 그 재미는 나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하는 것과, 나의 선택이 틀렸다면 그 요인이 무엇인지 복기하고 다시 기회를 엿보는 것까지도 포함될 수 있을까. 아직은 보드게임에서 지면 커튼 뒤에 숨어 우는 아들이지만, 나는 그의 승리를 기원한다.


그전에 돈 모으는 재미를 알게 하고, 돈이 교환되고 불어나는 금융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겠다. 세상이 돌아가는 상황, 산업의 흐름과 기업의 가치, 각 국의 정치적인 문제들도 세계 경제와 주식을 비롯한 금융시장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도. 아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 힘이라는데, 아는 것이 있어야 해 볼 수 있는 영역도 있다. 특히 머니게임은 그렇다. 그러니 어른들도 머리를 싸매고 공부하는 것일 테다.


아이들이 왜 공부를 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이 게임을 '재미있게 즐기기 위해서'라고 대답해주려 한다. 게임을 좋아하는 아들에게 게임을 만들어보라고 권하는 엄마도 있다던데, 유망산업이 맞긴 하지만 내 아들에겐 개발자의 자질이 없을 수도 있으니 섣부른 권면은 하지 않으려 한다. 다만 무엇을 하든지 '머니 게임'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남보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살아가기 위해서다. 나의 삶을 지켜내기 위해서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두가 플레이어로 강제 참여하게 되는 상황에서, 나와 팀을 이룬 내 가족과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다.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나와 나의 팀은 전멸하고 말 것이다. 팀을 이루어 협력하는 것과 팀에게 의존하는 것의 차이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팀에게 의존하지 않으려면 나부터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나는 잘 알지 못하지만 아이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세상을 공부한다. 이제야, 이제라도.


교과 공부를 잘하는 것과 '머니 게임'은 이제 큰 상관관계가 없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아는 것, 나를 알고 세상을 아는 것. 그것이 유능한 플레이어의 자격이라고 말해줄 것이다. 아이들이 보기에 나는 어떤 플레이어로 기억될까. 승자까지는 못 되더라도, 아이들이 이 세상의 플레이어로 당당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감당하고 싶다. 게임의 규칙도 모르고 능력치도 없는 부모를 지켜내기 위해, 조금의 여유도 없이 홀로 힘겹게 싸워야만 하는 상황을 물려주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이 세상에 아이들을 내보낸 자로서의 나의 책임이다.



*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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