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믿어주는 사랑
결국 교육은 믿음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떤 가치를 믿고 어떤 것을 기대하느냐에 따라 어떤 것을 심을 수도 있고, 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심는 것도 믿음이고 심지 않는 것도 믿음이다. 믿음이길 바란다. 아이에 대한 믿음이라면 문제 될 게 없다. 그러나 불안 때문이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더군다나 실체가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면, 아이를 위한 것이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 되는, 방향성의 상실과 함께 끝없는 방황이 시작될 수 있다.
교육에 대한 나의 고민 역시 불안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유튜브 채널 교육대 기자 TV를 운영하고 있는 방종임 기자의 말처럼, 많은 경우 불안은 무지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정보의 부재, 내가 알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막연한 두려움이 자꾸만 다수가 가는 길을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공부해야 한다. 이 두려움의 실체를 제대로 알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영 쫓겨 다니기만 할 것이다. 전력질주를 하더라도 나의 의지로 뛰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만 진정한 승리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아무리 좋은 교육법이라고 해도 내 아이가 이것을 받아들일 만한 준비가 되었는지, 혹은 그러한 성향인지 부단히 살펴야 한다. 좋은 종자를 품은 씨앗이라는 믿음, 좋은 땅이라는 믿음, 이 땅에 심은 씨앗이 잘 자라나리라는 믿음이 있어야만 오랜 기간 밭을 일구고 가꿀 수 있다. 만약 사실과 다른 잘못된 믿음에서 비롯되었거나, 다른 요인으로 인해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중간에라도 밭을 갈아엎을 수 있다. 공고한 믿음이라도 우리가 믿어줘야 할 대상은 그렇지가 않기 때문이다. 입력한 만큼 출력물이 정확한 기계가 아니라, 의도치 않은 것에도 영향을 받는 영혼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심는 것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내가 심는 것을 받아들이는 아이의 존재와 그 상태에 집중해야 한다.
믿음은 아는 것에서 비롯된다. 제대로 알지 못하는 대상에 대해 믿음이 생길 리 없다. 일시적으로 생겼다 해도 지속될 수 없다. 현재의 교육상황에 대한 판단과 좋은 교육법에 대한 지식과 아이에 대한 앎이 필요하다. 불안이 아닌 애정 어린 관심에서 비롯한 관찰과 적용이 반복된다면 우린 연구자만큼이나 훌륭하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호기심으로 진행한 실험이 아닌 믿음을 바탕으로 한 실천으로써 새로이 탄생한. 그 존재는 부모일 수도 있고 아이일 수도 있다. 믿고 믿어주는 동안 우리는 온전한 사랑을 배워간다.
* 사진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