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기준이 아이의 수준을 만든다
지인이 추천해 준 책을 사기 위해 중고서점 사이트에 접속했다. 관심이 가는 책 한 권까지 더해 장바구니에 넣고 보니 배송비 무료 기준까지 딱 500원이 모자랐다. 중고서점이니 500원짜리 책도 있으려나? 검색해 보니 300원짜리 책도 있다! 아무리 저렴해도 아무거나 사고 싶지 않아서 고심을 했다. 그중에서 제목이 끌렸던 책을 선택했다.
엄마의 기준이 아이의 수준을 만든다
두란노 서원에서 2008년에 발행한 책이다. 요즘 내가 꽂혀있는 엄마, 아이, 교육 등의 키워드가 담긴 책이었다. 제목의 라임도 마음에 들었다. 그대로 세 권을 결제하고 이틀 뒤 받아보고선 유레카를 외쳤다. 가장 기대하지 않은 막내에게서 가장 큰 기쁨을 누리는 기분이었다. 구색 맞추기 식으로 구매한 이 책에서 나는 나의 사명을 발견했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길 그리스도인 부모가 아이를 양육하는 것은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기독교 서적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 책을 읽어도 자녀 교육에 썩 유익할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기독교인으로서 그리고 부모로서 고민하던 것에 대한 해답을 찾았다. 반성이 되면서도 희망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부모의 지혜가 아닌 주(구세주)의 교양과 훈계로 자녀를 양육하라는 것이 주된 메시지이다. 주의 교양과 훈계는 바로 성경 말씀이다. 성경의 근거를 바탕으로 저자가 주장하는 '주교양 양육법'은 그리스도인 부모인 내게 큰 감명을 주었다.
'하나님의 기준'이 인생에 적용되는 것은 건축물을 지을 때 사용하는 다림줄과 같다. 엄마의 손에 들린 다림줄을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엄마가 하나님의 기준을 갖고 자녀를 대하기 시작하면, 하나님은 내 자녀를 책임지기 시작하신다. 하나님의 눈으로 자녀를 바라보면, 내 자녀가 하나님의 형상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기준이 엄마의 기준이 되기 시작하면, 하나님은 내 아이의 수준을 만들어 가기 시작하신다.
- <엄마의 기준이 아이의 수준을 만든다> 워크북 18p
언젠가 한 연구자가 유대인과 그리스도인(크리스천)의 차이를 설명하고 분석한 내용을 들어본 적이 있다. 뿌리는 같으나 유대인은 구약시대의 하나님을 믿고, 신약시대의 예수님은 믿지 않는다. 즉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반면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구세주로 믿으며, 경전으로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모두 포함한다.
구약시대부터 '선택받은 민족'이었던 유대인들은 현재까지도 교육과 문화, 경제 부문에서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민족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연구자는 그것이 토라(구약시대의 하나님 말씀에서 나온 율법)를 대대로 기억하고 가르치며, 말씀 중심으로 살아가는 유대인의 삶의 양식 때문일 거라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어떤가. 말씀공부는 열심히 하지만 말씀을 삶에 적용하는 능력은 부족하다는 분석에 나는 씁쓸하게 동의했다.
그리스도인은 구약을 포함하여 신약까지 성경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그 말씀대로 살고 있는가. 얼마나 그것을 중하게 여기며 자녀들에게 가르치고 있는가. 함께 교회에 데려가고, 기도하고 헌금하며, 봉사하고 선교 활동을 지원하는 것 외에 성경 말씀을 삶의 현장 곳곳에서 나침반으로 삼고 있는가. 어려운 율법을 강조하는 구약에 비해 은혜와 믿음을 강조하는 신약의 가르침을 편향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았는가. 아니 그전에 말씀을 얼마나 읽고 마음에 새기고 있는가. 이것은 바로 나에 대한 질문이었다.
빛이 있으라.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자기 백성을 다스리신 하나님의 통치를 생각해 본다. 말씀의 능력이 나타난 성경의 숱한 사건들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약속한 말씀대로 이루어주셨던 나의 지난날들을 돌아본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잘 키울까 고민하던 문제의 전제를 놓치고 있었다. 천국에서 온 아이들. 아이들은 천국에서 왔다. 천국과 한국은 본질적으로 다른 곳이다. 자꾸만 변하는 이 세상의 잣대를 아이들에게 들이대기 전에 아이들이 어디로부터 왔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내가 낳았다 뿐이지 어떻게 내가 이 아이들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을까. 눈과 코와 입, 손가락과 발가락, 장기와 혈관 하나하나까지도. 나는 이 아이가 어떻게 내게 와서 나와 연결되었는지, 세포 분열이라는 과학적인 설명을 뛰어넘는 생명의 신비를 알지 못한다. 나의 뱃속에 있는 동안 아이가 자라난 것은 결코 내가 한 일이 아니다. 나는 아이가 생겨나길, 그리고 무사히 태어나기를 간절히 바랐을 뿐이다. 또한 아이는 나를 통해 이 세상에 왔지만, 나에게서 비롯되지 않은 고유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아이가 어디서 왔는지 기억하는 일은 내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아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아이의 고유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바르게 인도할 수 있는 방법은 이 아이들을 지으신 이의 말씀을 기억하는 것, 그리고 가르치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살아계신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아이에게 새로운 것을 가르치고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회복을 꿈꾸는지도 모른다. 천국에서 왔으나 잘못된 교육 시스템 속에서 상처 입은 아이들을 바라보며.
세상은 변하고 가치도 변할 것이다. 그 속에서 나와 아이 또한 변할 것이다. 그러나 그 변화는 알을 깨고 나오는 변화,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변태와 탈바꿈의 변화가 되길 소망한다. 덧입는 것은 오로지 말씀의 능력이길 소망한다. 말씀대로 살고자 하지만 나라는 사람은 율법 하나라도 완벽하게 지킬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하나님과 동역을 이루는 존재로 삼아주신 부르심에 감사한다. 천국에서 온 아이들을 한국에서 주의 교양과 훈계로 키우는 동안 나도 아이와 함께 자라날 것이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사 40:8)
* 사진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