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적이지만 하찮은 것

닭의 날갯짓, 구르는 깡통, 그리고

by 조이


내 인생에는 없을 것 같던 이혼이란 단어를 꺼냈다. 사실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다는 측면에서 정말로 이혼할 생각은 없었지만 심정만큼은 절실했다. 윤동주 시인이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면 나는 남편의 입김과 한숨에도 쉽게 뒤집어지고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지금이야 터득한 기술이지만 그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어마어마한 기술을 습득하지 못하여 그의 말들은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내 나름대로는 이미 최대한으로 노력하고 있었기에, 거기에 말 한마디라도 보태는 걸 도저히 수용할 수가 없었다.


물이 넘치는 건 마지막 한 방울 때문이라고 했나. 연년생 육아만으로도 이미 안팎으로 넘실대는 혼돈 속에서 그의 한마디는 '찰방'이 아닌 '첨벙'이 되어 기어이 내 안의 물을 쏟아내었다. 이럴 거면 그냥 엎질러진 잔이 되어버리자, 가까스로 서 있던 나는 괜한 오기가 생겼다.


그렇지 않아도 자존감이 낮은 내가 몸도 마음도 약해진 상태에서 그의 지적질을 받아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어느새 나는 그를 처단해야 할 적군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생존본능이었을까. 그렇다면 알을 깨고 나가기 위한 몸부림이었을까, 끝내 내 안의 문고리를 잡고 나가지 않으려던 두려움의 발로였을까.


결국 내가 꺼내든 이혼이라는 카드는 나는 더 이상 못하겠으니 될 대로 돼라, 배 째라는 식의 반항이었고 치기였다. 그렇게 나는 엎질러진 잔이 되어 한동안 바닥을 굴러다녔다. 겨우 일으켜 세운 뒤에도 마치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는 심정으로 지냈다. 만약 그가 먼지 한 톨의 무게라도 내게 얹는다면 당장에라도 주저앉을 것처럼.


부부상담을 통해 노력의 방향성을 점검해 본다던지, 서로를 더 이해해 봐야겠다던지 하는 생각도 나질 않았다. 그것도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있어야 하지, 도저히 저 사람이 바뀔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 채.


버티고 있단 칭찬은 안 해도 좋으니 제발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길, 내게 기대지도 무엇을 기대하지도 말아 주기를, 나는 한 공간에 있는 그를 누구보다 의식하면서도 날파리 쫓듯 부지런히 쫓아내고 있었다. 손짓은 필사적이었으나 날지 못하는 닭의 날갯짓만큼이나 하찮았다.


유리처럼 깨질 뻔하였으나 제멋대로 조각나버릴 파편을 감당할 자신이 없던 나는, 찌그러뜨리면 영락없이 찌그러지고 마는 알루미늄 깡통 따위 같았다. 깨지지 않으면서도 시멘트 바닥 표면이 얼마나 거칠고 울퉁불퉁한지 온몸으로 구르며 소리쳐댔다. 한없이 연약하고 시끄러운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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