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의 모글리
평소에는 내가 그의 허물을 덮기도 했으나 늘 극단으로 치닫는 건 내쪽이었다. 비교적 감정의 절제를 잘하는 그에 비해서 나는 늘 감정이 넘쳤다. 드라마의 장면에 비유하자면 기어코 상대방 얼굴에 물을 뿌려버리는 쪽이 나였다.
나는 평소 누군가에게 이렇게까지 화낸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그가 나를 이렇게 만든 거라고, 처음 마주하는 내 모습에 나는 남편만큼이나 혼란스러워했다. 그러면서도 물을 뒤집어쓴 얼굴로 나를 탓하는 그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민낯도 모자라 발가벗겨진 느낌. 내가 겨우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라는. 말을 할 줄 아는 어른이 되었음에도 통하지 않는 감정 앞에선 짐승이 되고 마는. 그것은 소리치고 화를 내며 남편에게 행한 가해이자 수치였다.
나로선 벽을 만난 느낌이었다. 그가 나를 몰아세웠다기보단 내가 그의 논리에 밀릴 때가 많았다. 그렇다 해도 너무나 한결같은 어떤 모습에 되려 질려버린 나는, 급기야 호소를 넘어선 포효를 하게 되었다. 사람과 짐승의 싸움. 과연 누가 이길 것인가.
인간세계에선 사람이 승리할 수밖에 없다. 사람이길 포기한 짐승은 쇠고랑 차고 감옥에 들어가야 하지만, 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었던 한낱 불쌍한 짐승에 불과했다. 그렇게 남편은 짐승을 길들이는 사람이 되었다.
정글북의 모글리도 아닌데 나는 왜 남편에게 이따위 것들로 잔소리를 듣고 있어야 할까. 방임적인 부모에게서 잔소리를 듣지 않고 자란 탓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부모님도 나를 길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확실히 내 안에는 반항끼가 다분했다. 남편은 나의 아빠가 아닌데도 나는 떼쓰고 악쓰는 어린아이처럼 굴었다.
단순히 어떤 성격적 결점이라고 보기에는 어딘지 이상한, 깊은 내면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쓴 뿌리에 가까웠다. 이제껏 내 곁에 머물던 그 많은 사람들은 쓴 뿌리에서 나오는 쓴 물을 맛볼 일 없었다. 흘러가 닿을 수 없는 거리를 나는 용케 잘 유지해 왔다. 그건 나를 내보이지 않으려는 본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내가 이 선을 넘게 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수풀을 헤치고 이 정글의 세계에 제 발로 걸어 들어온 사람이었다.
내가 아닌 이상 내 마음을 알아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걸 아는데도, 그가 내게 오던 순간처럼 나를 알아주길 바랐다. 나는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스스로의 한계에 부딪혀 이미 시끄러운, 압박감으로 괴로운 내 속을 보일 길 없어 겨우 버티는 중이었다. 이런 나를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런 속도 모르고 비집고 들어오는 남편의 말, 말, 말. 이성적이든 감정적이든 그것에 차분히 대응할 능력도 내겐 없었다. 일반적인 사람보다도 더.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기 위한 자원이 내겐 부족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세상에나, 이렇게나 빈약한 사람이었다.
그는 내게 배신감을 느끼고 있었다. 예쁘고 참한 여자인 줄 알았는데 돌연 짐승처럼 길길이 날뛰니 그럴 만도 했다. 미녀와 야수가 한 몸에 있는 지킬 앤 하이드라니... 한편 나는 그에게 절망감을 느꼈다. 빛인 줄 알았던 그를 만나니 내 안의 더 짙은 어둠을 보게 되었다.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는 그는 매번 내게 사과를 요구했다. 갈등의 원인을 생각하면 백 프로 내 잘못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선을 넘은 행동에 대해서만큼은 사과해야 했다. 그런데 왜 매번 내쪽에서 사과를 하고 사과를 받는 쪽은 그여야 하는지 나는 그저 억울하기만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인정하게 된 것은 그가 나보다 잘못을 덜 했다는 것보다도 허물을 덮을 의지가 더 있었단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내가 사과를 하면 반드시 받아주었다. 단, 진심이 느껴질 때까지 몇 번이고 다시 요구했다. 미안하면서도 자존심을 접지 못하고 서툴게 표현하던 나는 어느새 그에게 길들여지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남편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했다.
* 가스라이팅이라는 심리학적 용어를 비틀어서 사용했습니다.
* 사진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