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의 자격
책임감이 부족했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내게 결혼이란 새로운 집을 짓는 것과도 같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의 결혼은 집을 바꾸는 것에 더 가까웠다. 나는 연약해서 함께 집을 지을 수 있는 능력이 없었지만, 그는 가정을 이끌어가고자 하는 의지가 확고했다. 다만 나는 결혼을 통해 누군가의 인생에 편승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월급이 이만큼이고, 나랑 결혼해서 살려면 학습지 교사라도 해야 할 거야."
그의 월급은 당시 내가 졸업 후 학교 연구소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며 받던 금액과 비슷했다. 근로장학생보다는 많고 사회초년생보다는 적었던 나의 월급보다 약간 많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내겐 월급의 많고 적음이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몇 년째 공직에서 성실하게 근무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남을 돕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었다.
평생 이렇다 할 직업도 없이 일용직을 전전하며 무급의 생활이 길었던, 사지가 멀쩡하여 늘 누군가를 만나러 다니면서도 나라의 도움받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나의 아버지. 냄새나는 쓰레기 더미에 앉아 고물을 줍는 어머니와는 달리 늘 멀끔하게 다니던 아버지. 그런 나의 아버지와는 달리 그는 가정에 대한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의 말에 웃음이 났다. 이 사람, 너무 솔직하잖아. 손에 물 한 방울도 묻히지 않을 거라며 감언이설을 하는 것보다도 훨씬 믿음직해 보였다. 자기 월급만으로는 서울에서 생활하기 어려울 거란 현실 감각도 있고. 허세는 없구나. 그러면서 본인이 만들어가고 싶은 가정의 모습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하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나는 이 사람과 살면 열심히 살 수밖에 없겠다. 그저 이 사람 곁에서 발맞춰 사는 것만으로도 나는 저기 멀리까지 가있겠구나. 이 사람은 절대로 주저앉아있을 사람이 아니다. 하늘이 무너진대도 나 몰라라 하고 있을 사람이 아니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솟아날 구멍을 찾아낼 사람이다. 필요하다면 불구덩이에라도 뛰어들어 무엇을 가져올 사람이구나.
그렇게 만난 지 두 번 만에 결혼을 결심하고 석 달 만에 결혼해서 십 년째 사는 동안 그는 한결같이 가부장적이다. 학교에 교장이 있고 회사에 사장이 있듯 가정에는 가장이 있다고 주장한다. 안으로는 가족을 통솔하고 밖으로는 가족을 대표해야 한다는 생각과 태도를 가진 그는 분명 자타공인 가부장적인 사람이다.
남녀평등 시대에 가부장이 웬 말일까. 그러나 가장의 권위를 주장하는 만큼 가정에 대한 책임감이 있다면 가부장적인 것도 좋은 요소라고 생각한다. 이 시대에 남녀를 불문하고 가정에 대한 책임감이 강한 사람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기본적으로 무엇을 지켜내려는 자는 강하기 때문이다.
권위는 질서다. 교사의 권위가 추락하면 교육이 무너지고 리더십이 부재하면 조직이 와해되듯 가장이 무너지면 가정은 위태롭다. 가장의 역할을 아내가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권위가 있어야 한다. 다만 권위는 스스로 지켜내는 게 아니라 부여하고 지켜줘야 하는 영역에 가깝다. 구성원들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국가의 수장이 권력을 남용하는 경우 권력을 부여한 국민들이 그것을 다시 박탈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맞벌이의 시대에도 가장은 존재한다. 능력 있는 여성시대에 아내의 벌이가 더 크거나 아내가 벌고 남편이 살림하는 가정도 많아졌다. 그러나 돈을 아내보다 덜 번다고 해서 귄위가 추락되어서는 안 된다. 가정 공동체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서라도 가장의 권위를 함부로 박탈해서는 안된다. 가정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지켜내려는 의지와 노력이 있는 한 그는 가장의 자격이 있다.
이 모든 글의 내용이 가부장적인 남편의 아내로 살아남기 위한 정신승리의 산물일까. 사실은 가정을 이끌어가는 수고와 책임을 슬그머니 위임하고 뒷짐 지며 따라가려는 꼼수다. 아이들 앞에서 가장의 권위를 지르밟고 지나갈 때도 많지만, 이내 아이들과 손을 잡고 다시 그의 지붕 밑으로 들어가길 선택한다. 거기만큼 안전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너무 높지 않은 그의 그늘 밑에서 쉬고 있으면 문득 엄마가 떠오른다. 속으로 나지막이 엄마에게 묻는다. 일어나면 머리가 부딪히던, 무너져가는 텐트처럼 열악한 지붕 밑에서도 엄마는 우리 손을 잡고 그곳에서 사는 동안 편안했냐고. 아무도 모르게 헤아려본다. 아마도 그랬나 보다고. 낡은 천막이라도 엄마는 자신을 감싸줄 존재가 필요했던 거라고.
그렇다면 나는, 나의 지붕을 열심히 보수하겠다고 다짐해 본다. 금이 가서 비가 새는 부분이 있다면 바가지만 갖다 놓고 피해있지는 않겠다고. 곰팡이가 피어난 천장의 벽지를 뜯어내고 락스칠을 해서 다시 도배를 하겠다고.(실제로 신혼 때 그 작업을 해봤는데 집에 대한 애정이 더 생겼다.) 어릴 적 나의 엄마처럼 전셋집이라며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방치하진 않을 거라고. 안전한 나의 집이 되어준 그와 함께 건강한 가정을 만들어갈 것이다. 이것은 순전히 내가 편하기 위해서다.
* 사진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