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체될 수 있는 사람인가
"나 사랑해?"
언젠가 남편에게 물었다. 커플들 사이에서 흔히 할 수 있는 질문이었고, 내가 기대하는 대답은 뻔했다.
그럼. / 얼마큼이나?/ 하늘만큼 땅만큼.
대강 이런 식의 대화를 원했다. 물론 지금은 아주 재빠르고도 참신한 비유로 나를 만족케 해 주지만, 무방비로 맞닥뜨린 초기 질문에 남편이 내놓은 솔직한 답변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럼. / 나 왜 사랑해? 내 어떤 점이 좋아?
"네가 내 아내라서 사랑하는 거야."
평소 남편이 각종 공모전에서 입상할 만큼 아이디어가 참신한 사람이란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이 질문에 이만큼 신박한 대답이 있을까. 왜(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에 이어서 던진 왜(그런 대답을 했느냐)라는 질문 앞에 선 그를 보니 참신해 보이려는 눈치는 아니었다.
처음엔 그의 대답이 서운했다. 꼭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여자와 결혼했더라도 자기 아내이기 때문에 그녀를 사랑했을 거란 말 아닌가. 당연한 말인데도 섭섭했다. 나는 사랑스러운 점이 없단 뜻일까?
그건 마치 너마늘사랑해, 너뿌니야라는 커플들의 대전제를 무너뜨리는 말과도 같이 들렸다. 그래, 알겠어. 변명과도 같이 맛없는 그의 논리를 그땐 심드렁하게 질겅질겅 씹어 넘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그것은 단단한 뿌리에서 발휘되는 사랑에의 의지였다. 내가 화를 이기지 못하고 어떤 막말을 해도, 그가 내게 어떤 실망을 해도, 사랑스러웠던 나의 모습이 사라져 버린다 해도, 그가 내게 느낀 설렘의 감정이 떠나간다 해도 내가 그의 아내로 곁에 있는 한 그는 나를 사랑할 것이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남편의 사랑은 마치 이사야서 43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랑과 어딘지 비슷했다. 자기가 선택한 백성이 끊임없이 자기를 떠나고 배반하여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 오히려 자녀 삼아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대상의 사랑스러움을 전제로 하지 않았다. 그것은 전적으로 그의 의지에서 비롯한 약속에 근거한 사랑이었다.
내가 어떤 자격을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사랑을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은 퍽 위로가 되었다. 내가 나로서도 온전치 못하고, 그에게 별로 좋은 아내가 되지도 못하는 날에도, 그는 내가 <그의 아내라서> 사랑해 주었다. 나와 이루고 있는 <그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그는 내게 져주었다.
나를 향한 사랑의 근거가 그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이 더 신뢰할만했다. 누군가는 내게 그렇게 자신이 없는가 물어보겠지만, 내게 아무리 자신 있어도 차마 자신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상대방의 마음이 그렇다. 사람도 변하고 사랑도 변한다. 그러나 흔들리는 마음과 감정에 기반하지 않고 약속에 기반한 사랑은 다르다.
물론 제도로서 결혼은 사회적 약속이기도 하지만, 합의 하에 아내와 남편이라는 관계를 깰 수도 있는 상황에서 네가 내 아내라서 사랑한다는 말은 어쩌면 더 단단하면서도 가벼운 대답이었다. 내가 그의 아내이기만 하면 된다는 말이니까. 그의 옆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된다는 말이다. 물론 그는 나의 남편으로서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겠지만. 나는 그의 옆에서 가끔 귀를 틀어막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나는 그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이를테면
그래도, 그러나. 그럼에도.
- 정영욱,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될 것이다>
* 사진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