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끈
겨울연가의 욘사마가 일본에서 그토록 인기 있었던 이유는 '뜨거운 포옹'때문이라 했다. 욘사마가 지우히메를 안아주는 장면들에서 감정이입한 여인들이 많았던 것이다. 일본 남자들은 그렇게 안아주질 않는다고 했다. 진짜 그렇다고 해도, 그게 뭐 별 건가 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 나의 최대 힐링타임을 꼽으라면 남편과 포옹하는 시간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품에 안겨 살짝 잠드는 시간이다. 가끔 글을 쓰느라 수면시간이 어긋나기도 하지만, 삼십 분이라도 그렇게 있으면 짧게 취한 수면에도 힘이 생긴다. 우리의 포옹자세는 이러하다.
1. 남편은 베개를 베고 옆으로 눕는다.
2. 남편의 팔을 베고 옆으로 눕는다.
3. 마주 누워 남편 품에 얼굴을 묻는다.
4. 남편은 내게 다리를 감는다(?)
남편은 문어처럼 나머지 한쪽 팔과 다리로 나를 감싼다. 이 상태에 머물면 하루의 모든 피로가 녹아버리는 기분이다. 힘의 총량이 더 세지는 합체라기보단 마치 충전기 몸체에 달칵, 하고 배터리 본체를 끼우는 것 같아서 우리는 이것을 '차징(충전시간)'이라고 부른다. 이 시간에는 아이가 등 뒤에서 안아달라고 할 때도 쉽게 풀고 싶지가 않다. 엄마가 먼저 충전해야 너를 안아줄 수 있다고 기다려달란 양해를 구한다.
나는 이게 너무나 신기했다. 프리허그가 유행했던 때도 포옹의 효과를 들어봤지만 직접 경험할수록 인체의 신비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어린아이가 엄마의 품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건 어릴 적부터 엄마의 품에 안겨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엄마의 몸으로부터 나오기도 했으니 본능에 가까운 거라고.
그러나 한평생 남남이었던 부부 사이의 포옹에 이렇게까지 치유의 효과가 있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그건 마치 바다를 보거나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숲이나 경치 좋은 자연 속에서 누리는 근본적인 평화와 안식과도 같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고, 신체적 정신적인 안정을 위해서라도 타인과의 스킨십이 필요하며... 등등의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다. 이건 부부사이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고자 하는 탐구의 욕망이다.
이것과 관련해서 남편이 내린 결론은 '너는 내 갈비뼈'라는 것이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은 남자를 만들고 나서 그 갈비뼈를 취해 여자를 만드셨다고 한다. 남자는 여자를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했다.(창세기 2:23) 나와 신앙이 같은 남편은 본질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남편과 나는 다른 자세로 동일한 안식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이 부분도 신기했다.
나는 그의 품에 안겼을 때 안정감을 느끼는 반면, 남편은 나를 안았을 때, 그러니까 내가 자기 품으로 쏙 들어왔을 때 나와 같은 안정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래서 팔이 저릴 때까지 빼지 않고도, 반대쪽으로 돌아누워서라도 우리는 그 자세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느 한쪽만을 위해서였다면 비몽사몽 간에 그렇게까지는 못했을 것이다.
과학적으로 밝혀진 포옹의 효과는 관계성이 없는 사람과의 프리허그나 일시적인 포옹만으로는 충분히 발휘되지 못할 것이다. 또한 연인과의 낭만적이고 달콤한 포옹과는 또 다른 성질의 것이다. 부부의 세계에서 사랑이란 무미하고 불친절한 날의 저녁 밥상 앞에서도 유지되는 사랑*이며, 뜨거운 불이 튀지 않더라도 습관처럼 뛰어드는 품에서 달궈지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결혼 전 아빠랑 왜 사느냐, 아빠의 장점은 대체 뭐냐고 따지듯 물었던 나의 질문에 엄마가 했던 대답이 생각났다. 늬 아빠는 그래도 따뜻한 사람이다, 잘 때 팔베개를 하고 꼭 안아준다던 대답이. 그때도 속으로 그랬다. 그게 뭐 별거냐고. 평소에 가장 노릇이나 제대로 하라지. 무뚝뚝한 엄마가 아빠의 팔을 베고 누워있는 장면은 어쩐지 조금 어색했다.
이제는 알 것 같다. 일본 아주머니들이 그토록 갈망했던 이유를, 엄마가 남편의 품 안에서 만족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주야장천 딸들에게 아빠 욕을 하던 엄마도 그의 품 안에선 안식과 사랑과 위안과 용기를 얻었던 것이다.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마태복음 19장 6절에 나오는 말씀처럼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 즉 부부라는 공동체 안에는 사람이 나누지 못할 끈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건 단순한 정으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끈끈하고, 본능이라고 하는 것보다도 훨씬 숭고한 선물이다. 세상에 감춰진 비밀들이 있다면 그중 하나는 분명 부부 사이에서 누릴 수 있는 성스러움일 것이다.
나눈다는 개념은 결혼이란 제도에서 벗어나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합의 하에 이혼하고 나서도 힘든 시간을 보내는 건, 보이지 않는 끈을 끊어내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경험이 많지 않아서 연애와 결혼 후 이별의 차이는 알 수 없지만, 부부는 분명 쉽게 끊어낼 수 없는 신기한 인연이 틀림없다.
이 시대에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되었고, 결혼 이후에도 삶의 양식은 다양하다. 잠버릇과 생활방식이 다른 서로를 존중하며 각자의 침대를 쓰고, 각자의 방을 만들고, 직장과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각자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기도 한다. 옛날 어른들이 그러다 갈라선다고 말하는 것은 저주가 아니라 염려일 것이다.
그렇게 떨어져 있어도 가정이 유지되는 것은 부부 사이에 보이지 않는 끈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속에서 나온 자식이라도 파고들지 못할 정도로, 남편과 하나 되어 포옹하는 시간도 가져보면 어떨까. 그것은 보이지 않는 끈에 풀을 먹여서 더 단단하게 만들고, 엉켰던 실을 금세 풀어내기도 하는 시간이 될 테니까.
나아가 내 삶의 무너진 부분이 회복되고 다시 직립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시간이다. 말 한마디 하지 않더라도, 심장과 심장이 맞닿아 뛰는 것만으로도. 내 안에서 나갔던 갈비뼈가 다시 들어오듯이, 홀로 지탱하던 갈비뼈가 제자리를 찾아가듯이. 이것은 포옹의 효과를 넘어서 부부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부부의 세계란 이런 것이다.
* 브런치 작가 '참지않긔' 님이 아래 글에 달아주신 댓글에서 인용한 문장입니다
* 사진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