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육아는 외롭다. 그래서 육아 동지가 필요하다. '아이 친구의 엄마'같은 피곤한 관계라도,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서 '구독'하고 참고하는 온라인 멘토라도 엄마들에게는 절실하다.
내 아이를 육아하는 데 있어 남편에게선 그다지 참고할 만한 게 없어 보인다. 엄마가 처음인 나처럼 그도 아빠가 처음이니까. 그래도 그렇지, 모르는 소리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 아이 친구 엄마보다도 말이 안 통하니 공감대 형성부터 어렵기만 하다.
좋은 것을 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은 엄마가 제일 잘 알기 때문에, 가치관이 맞는 엄마들 간의 연대는 좋은 육아방식이 될 수 있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공동 육아라는 개념은 이상적인 대안이다.
그러나 모든 건 참고값일 뿐이었다. 가끔 내게 도움을 주는 아이 친구 엄마도, 온라인 멘토들도 육아에는 정답이 없으며 아이마다 다를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을 붙인다. 전문가의 시각을 빌리더라도 내 아이에 대한 모든 것을 공유할 수는 없다.
그리고 놓치고 있던 중요한 한 가지, 육아에 정답이 없다는 변수에는 아이마다 다르다는 점 말고도 부모마다 다르다는 점이 있었다. 아이마다 다를 수 있음이 아이의 성향에서 비롯되었다면, 부모마다 다를 수 있음은 아이의 양육 환경에 해당되었다.
결국 나와 남편이 아이의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나와 남편의 성향이 아무리 다르다고 한들, 아이에게 그것은 자기가 속한 하나의 환경이 된다. 아이의 행동 양식에 주양육자가 영향을 더 미치더라도 아이의 세계는 결코 나뉠 수가 없다.
부부간 양육방식이나 교육적 가치관, 관심도와 적극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한쪽을 배제하거나 한쪽에 전적으로 위임하게 될 경우 우리는 같은 세계에서 얼마나 공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함께 있어도 함께 할 수 없는 가정은 과연 천국이라 할 수 있을까?
경제활동과 육아를 분담한다고 해도 공유를 바탕으로 한 존중이 있어야만 우리는 가족이라는 하나의 세계에서 공존할 수 있을 것이다.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은 무관심에서 비롯되지 않았는지, 알려주지 않는 것은 독단에서 비롯되진 않았는지 부모는 각자에게 스스로 질문해봐야 한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마음이 사랑인 것처럼, 우리 가정이 함께 있어도 함께 하고 싶은 공동체였으면 좋겠다. 모든 순간을 함께 할 수 없고 우리에겐 각자의 시간이 분명 필요하지만, 그마저도 우리가 함께 하기 위한 시간이기를 바란다. 그렇게 함께 한 시간들이 또 다른 시간을 살게 하는 근간이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