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거리 두기 몇 단계일까
남편과 거리 두기를 한다면 몇 단계까지 가능할까? 부모님과 함께 살 땐 자주 내 방문을 굳게 닫곤 했지만 남편에게는 그게 통하지 않았다. 다투면 졸린 눈을 하고서도 해결이 될 때까지 나를 놔줄 생각이 없는 남편에게서 나는 내내 도망갈 궁리를 했다. 그가 바란 해결이란 바로 우리가 하나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둘이 하나가 될 순 없었다. 다름 속에서 조화를 이루는 과정이 필요했건만 한쪽이 한쪽을 따르고 흡수되는 형태는 하나를 지우는 과정과도 같았다. 나는 변화되길 원했을 뿐 지워지길 바란 건 아니었다. 자꾸만 나를 지우려는 그에 맞서 코로나19 재난에 상응하는 경보를 발령하듯 나는 자주 파업을 외쳤다.
대화를 시도하는 것 치고 대화가 잘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20:80의 비율로 본인보다 나를 더 바꾸고 싶어 하는 남편과, 대충 대답하고 빨리 벗어나고자 하려는 나의 대화는 맥없이 종결되기 일쑤였다. 그가 나를 바꾸고 싶어 한다기에는 나부터가 변화를 추구한다 밝혔지만, 당연하게도 오래된 사고와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그리고 점점 더, 내가 변해야 할 부분보다 남편이 변해야 할 부분이 커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니 처음부터 관계의 설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감지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전히 그만이 나의 변화에 대한 어떤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처음 만났던 날, 그는 내게 지하 20층에 있는 것 같으니 끌어주겠다고 했다. 앞선 진단이 너무나 적확해서 나는 뒤엣말까지도 믿어버렸다. 보통 남자들은 끌려갈까 봐 두려워서 내던지고 갈 텐데, 귀하게 자란, 밝고 맑게 자란 여자들을 좋아하던데 그는 달랐다. 그렇다 해도 그가 빛이 아닌 이상 나를 끌어줄 순 없었다.
어쩌면 그에게 결혼생활이란 빛과 어둠의 싸움이었던 것 같다. 본인의 말에 책임을 지려 노력했지만 사실은 자기도 지하실이라는 구렁텅이에 빠질까 봐 두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사사건건 나를 바꾸려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나름대로 처음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가정을 이루었으니 함께 같은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같이 간다기보단 따라가는 기분이 들었다. 가장을 따르는 게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그의 구령에 맞추기란 여간 피곤한 게 아니었다. 내게 그의 음성은 피곤하다 못해 괴로운 잔소리가 되었다. 어쨌든 내가 선택한 길이니 가야 하는데, 가려면, 가기는 가도 요령을 피워야 했다.
결국 나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걷기 시작했다. 그가 뒤돌아보면 먼저 가라는 손짓을 했다. 그건 쫓아내는 손짓에 가까웠다. 그는 가족과 함께 하는 걸 중요시했지만 그의 '함께'와 나의 '함께'는 어딘가 많이 달랐다. 그럼 뭐 어때, 각자 편한 방식을 존중하며 사는 거지. 각방을 쓰는 부부, 별거를 하는 부부들도 있는데. 주말부부가 부럽다가도 육아만은 혼자 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그와 평행선을 이루고 걸었다. 동선을 확인할 수 있는 거리에 있되 원할 때만 넘어가고 넘어올 수 있는. 출퇴근시간이 맞지 않아서 아이를 픽업해야 하거나 병원에 데리고 가줘야 할 때는 서슴없이 넘어가고 넘어오게 했다. 나는 그것이 부부의 협력이자 동행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업무분장이 확실한, 합이 잘 맞는 부부라고 자부했다.
그러나 이것은 내게만 편한 방식이었다. 피차 회사에 있는 동안 별로 중요한 일도 아닌데 남편은 매일 전화를 하고 문자를 하고 답장을 요구했다. '무소식이 희소식'으로 알라 했더니 '무소식은 무소식'일 뿐이라고 답했다. 암만 성향차이라 해도 내가 그를 대하는 방식은 점점 이기주의로 치닫고 있었다.
평행선 너머에서 쓸쓸하게 걷고 있는 그가 보였다. 내 허락이 없어 건너오지도 못한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쓸쓸한 눈빛이 보였다. 우리 함께 가고 있는 거 맞아? 그가 물었다. 이럴 거면 왜 사는지, 부부란 무엇인지, 하나 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는 부담스러운 질문들을 내 앞에 하나둘 던져내기 시작했다.
* 사진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