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 등굣길이었다. 대로변으로 통하는 골목길에서 꼭 그 아저씨와 마주쳤다. 정확히는 트럭에 탄 아저씨와. 그는 흰색 트럭을 몰고서 그 길을 통과해야 했다. 나는 자연스레 골목의 벽 쪽으로 몸을 붙였다. 내 뒤에서 앞으로 가는 방향이었으니 나를 지나쳐서 유유히 빠져나가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그러지 않았다.
뒤에서 차가 오는 것이 신경 쓰여서, 벽 쪽에 몸을 기대서고도 혹시나 닿지는 않을까 옆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나를 바라보고 있던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운전대를 잡았으면서도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서까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마치 내 얼굴에서 무엇을 훑고 가는 것처럼. 그의 끈적한 시선에선 니스 칠을 하는 듯한 역한 기운이 훅 하고 느껴졌다.
골목길이었으니 조심스레 운전해야 마땅했겠으나, 내가 충분한 공간을 내어주었음에도 그는 지나치게 천천히 트럭을 몰았다. 내가 예민했던 걸까 몇 번을 테스트해 보았지만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미처 그를 피해 가지 못한 날에도 그는 꼭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었다. 몇 번의 테스트 끝에 나는 그가 일부러 그러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 등굣길마다 수시로 뒤돌아보며 떨었다.
환한 아침이었지만 뒤에서 흰색 트럭이 나타나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그 골목길에서 마주치지 않으려 미리 빠져나가도 길 끝에는 도로가 있었고, 결국 우리는 만나게 되어있었다. 그나마 넓은 길이라는 것, 인도와 차도가 구분되어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을 뿐. 흰색 트럭이 같은 방향으로 꺾어서 저 멀리 사라질 때까지 나는 그 방향으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백미러로 나를 보며 히죽거릴 그 얼굴이 너무나 소름 끼치고 무서워서.
그는 나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무 생각이 없었을 수도 있다. 무심코 돌아본 얼굴에 괜한 경계심과 긴장감이 가득한 게 되려 기분 나빴을 수도, 그래서 골려주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참 예민하던 사춘기 소녀에게 그의 시선은 폭력과도 같았다. 잘못한 것도 없이 고개를 들지 못하게 하는 게 폭력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내게 손을 대지 않았어도 수치감을 느끼게 만드는 시선, 그것은 피차 예민하여 못 본체 하던 또래보단 아저씨들과 할아버지들에게서 더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성숙한 외모를 갖고 있으나 교복을 입고 다니던 나는 그들에게 그저 신기한 존재에 불과했길 바란다.
아저씨와 할아버지의 중간 나이였던 한 도덕 선생은 수업시간에 꼭 아이들 책상에 걸터앉았다. 한 손에는 책을 들고 읽으며 한 손은 주머니에 넣곤 했는데, 어느 날엔 내 책상에 앉길래 그러려니 했다. 당시 나는 책상에 바짝 붙어 앉아 팔꿈치를 바닥에 댄 채 팔짱을 끼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의 팔이 쑥 들어와서 나의 팔 안쪽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나를 비롯한 모두의 시선은 그가 읽는 부분을 좇아가느라 교과서에 고정되어 있었다.
"........."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는 왜 수업 중에 나의 팔을 주무르고 있는가. 그는 내게 장난을 걸 정도로 나와 친근한 사이가 아니었다. 애초에 나는 선생님들께 살갑게 다가서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그는 내게 이런 은밀한 스킨십을 행하는가. 수업시간에 대놓고 하는 것이니 은밀한 게 아닌 걸까? 그런데 나는 왜 이토록 기분이 더러울까. 그가 꼭 내 가슴을 주무르는 것만 같았다.
내가 원치 않는 스킨십이었으니 팔짱을 풀거나 팔을 뿌리치면 되었을 텐데, 나는 수업이 끝날 때까지 그 자세를 고쳐 앉지 못했다. 뻣뻣하게 굳은 몸으로 경직된 상태. 원치 않는 성적 접촉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니 다행이라 해야 할까. 그러나 겨우 중학생이었다. 내가 짝사랑하고 있던 짝꿍이 알아채고 도와주었으면 하는 마음과 동시에 몰랐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는 내 살을 주무르면서도 태연하게 수업을 진행했으니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만진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중학생이 느꼈던 아저씨들의 시선과 손길은 결코 부드럽지 않았다. 그것은 어딘지 음흉했으며 더럽히는 기운이 있었다. '기분이 더럽다'라는 느낌은 다행히 '내가 더럽다'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고개를 들지 못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들의 말마따나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열네 살, 열여섯 살의 머리마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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