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악이 오빠에 이어서 나를 경악하게 했던 사람은 버스기사 아저씨다. 스쿨버스는 아니었지만 OO여고 학생들이 자주 우르르 타고 내렸으니 아저씨는 그 교복에 익숙해질 법도 했다. 나도 그 학교의 학생이었고, 당연히 교복을 입고 있었다.
그날따라 버스카드를 안 챙긴 바람에 현금으로 버스 요금을 냈다. 그런데 아저씨는 거스름돈을 남겨주지 않았다. 아저씨가 거스름돈을 왜 안 남겨주실까. 에이, 왜 이러실까.
"?"
아저씨의 표정을 보니 영문을 모르시는 듯했다. 오히려 어서 자리로 가서 앉지 않고 뭐 하느냔 의문이 묻어있었다. 어쩌면 성인요금 기준으로 몇 백 원을 더 내야 한다는 추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 저 고등학생인데요."
버젓이 교복을 입고 있는데 성인 요금을 받다니, 아저씨 너무하신 거 아닌가요. 아저씨까지 이러실 거냐고 원망하고 싶었으나 역시 소심한 나는 조용히 사실을 바로잡는 수밖에 없었다. 성인이라고 오해받은 것도 억울한데 요금을 더 낼 순 없었다. 얼굴은 성인 같아도 고작 돈 없는 학생일 뿐이었다.
짤그랑, 아저씨는 아무 말없이 동전 굴리는 소리로 대답을 대신했다. 되찾은 얼굴값을 주섬주섬 집어 들고 자리를 향하는 동안 나는 괜히 민망했다. 교복을 안 입고 있었다면 그냥 모른 척 올라탔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옛날 같으면 시집가고도 남을만한 열일곱 살 아니던가. 키만 보면 다 컸다고 볼 수도 있다. 거기다 무르익은 얼굴까지 스쳤다면 충분히 오해할 만했다고, 스스로 위로하기 위한 변명을 대신했다.
비단 아저씨뿐이던가. 친구와 다닐 땐 물론이고 나이 차이가 꽤 나는, 이미 성인이었던 언니와 다니더라도 나는 늘 언니 취급을 받았다. 그때의 난 몸만 성숙한 게 어쩐지 억울해서, 말투와 생각도 어른스러워지고 싶다고 바랐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나를 어른 취급하는 사람들로 인해 자라지 못한 마음을 키에 맞춰 살았는지도.
어른인 척하던 그때의 나, 지금 돌이켜보면 참 애썼지 싶다. 알 수도 없는 것을 알 것 같다면서, 진지한 얼굴로 애써 고개를 주억거리던 그 시절의 내가 지금의 내게 이렇게 묻는 것만 같다.
'난 그때 모르는 걸 아는 척하느라 힘들었는데, 지금의 넌 어떠니? 살아보니 좀 알 것 같아?'
세월이 꽤 흐른 지금도 난 알 수 없다. 안다고 했던 것들이 사실 아는 게 아니었으며, 그것을 역으로 깨닫고 나니 겨우 다시 원점으로 온 것만 같다.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은 점점 더 사라져 간다.
글을 쓰면서 나와 세상을 아주 조금씩 더 알아가고 있지만 지금 내가 깨닫거나 안다고 하는 것들이, 남들에겐 이미 알았거나 여전히 몰라도 되는 것이자 알고 싶지 않은 것, 알아봤자 소용없는 것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그러니 내가 그렇다 하는 것이 남들에겐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나는, 내가 깨달은 가치들을 묵묵히 써 내려갈 것이다. 정답이라서가 아니라 너무나 소중해서, 소중한 것을 전하고 싶은 마음으로. 이 글을 읽고 있는 소중한 당신에게. 그리고 과거에 웃자라던 나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