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나랑 싸지 먹자."
싸지가 무슨 말인 줄 아는가. 내가 청소년이던 시절, 싸움을 지칭하는 10대 사이의 은어였다. 싸지를 뜨자는 건 맞짱을 뜨자는 뜻, 아니 싸우자는 뜻이었다. 모르는 사이에 굳이 싸움을 거는 이유는 너를 이기고서 내가 짱을 먹겠다는 의지다. 아니면 네가 나대고 다니는 꼴을 보기 싫으니, 내 밑으로 다 조용히 하라는 뜻이다.
그녀가 나를 이겨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그녀에겐 왜 내가 이겨야 할 대상이 된 것일까. 나는 왠지 억울했다. 나는 나대지 않았다. 짱도 아니었다. 그저 키가 클 뿐이었다. 사실 키가 커서 받는 주목이 싫어서 표정이 굳은 채로 응수하고 다니긴 했다. 그런데 살아남기 위해선 역으로 큰 키를 이용해야 했다.
몇 번의 위기를 피했어도 여전히 시비는 있었다. 나도 평소엔 내 친구들을 대동하고선 무리 지어 다녔지만, 언제나 함께일 순 없었다. 무리에서 혼자 떨어진 동물은 잡아먹히기 십상이다. 나는 무리에서도 가장 키가 컸고, 혼자 다녀도 키가 컸다. 어떻게든 눈에 띄었다. 심지어 남자 어른들도 고개를 돌려서 쳐다볼 정도였다. 저게 학생이니 아가씨니 하면서.
이쯤 되니 키만 컸던 게 아니라는 걸 고백해야겠다. 나는 안면도 이미 꽤 성숙해진 상태였다. 동창들이 나더러 왜 안 늙냐고 하는데, 이십 년 세월을 미리 늙어 놓아서 그런 것 같다. 내가 겪었던 부작용을 생각하면 그냥 제 나이에 맞게 늙어가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입술을 앙다물고 다니던 어릴 적엔 벙어리냐며 쥐어 박히기도 했다. 그런데 이젠 누구에게도 쥐어박히고 싶지 않았다. 멱살을 잡히거나 어깨빵도 당하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누군가 시비를 걸어올 때 스스로 나를 지킬 수는 있어야 했다. 내가 쉽게 건들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무표정도 종류가 있다. 입매는 일자가 아닌 시옷자가 되도록 해야 한다. 입꼬리가 쳐질수록 좋다. 최대한 상대에게 냉기류를 전달해야 한다. 표정만 봐도 얼어붙도록. 말도 못 붙이도록. 내게 어깨빵을 하는 순간, 되려 그 어깨가 얼어붙어서 바스러지도록.
이 방법은 효과가 있었다. 홀로 앉아있던 버스 정류장으로 건너편 중학교의 무리들이 몰려왔다. 그저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우리 사이엔 은근한 기싸움이 있었다. 무리는 기세등등했고 자기들끼리 욕설을 주고받으며 낄낄댔다. 바로 옆에 있자니 마치 나를 욕하는 것 같기도 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도 거기 있었는데, 내가 거기 있다는 것으로 하등 눈치 볼 이유가 없다는 듯 그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무례한 그들의 몸짓이 내 앞까지 뻗쳐온 순간, 나는 인상을 쓰며 일어났다. 버스 정류장 한쪽에 팔짱을 껴고 기대어 섰다. 힘껏 경멸하는 눈빛으로 그들을 내려보았다. 그들은 조금 조용해진 것 같았다. 나의 표정에서 한기를 느낀 것이 분명했다.
소인들에게 결박당한 걸리버에서, 사람들이 감히 접근하지도 못하는 골리앗이 된 느낌이었다. 다만 키가 크고 덩치가 크다고 해서 다윗 같은 의로운 꼬마의 심기를 건드리지만 않으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그 시절엔 쓸데없이 시비를 거는 불의한 땅꼬마들이 많았다.
나중에 승무원 준비를 할 때 입꼬리 교정기를 사용하며 쳐진 입꼬리를 올리느라 애를 먹었다. 이젠 나이가 들어가니 자연스레 입꼬리가 쳐지고 있다. 다시 교정기를 살까 생각해 보았지만 자주 의식하고 온화한 미소를 짓는 편을 택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자꾸 한쪽 입꼬리만 올라가는 건 왜일까. 센 척하던 그 시절의 나, 가소롭기 짝이 없다.
* 사진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