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안 다니던 일곱 살 때였다. 나는 그날도 역시 우리 집, 초록색 대문 맞은편에 있는 슈퍼마켓 앞에 서 있었다. 친구들은 유치원에 갔는데 나는 갈 데가 없었다. 그렇다고 집에만 있기는 싫었다. 입술을 앙 다문 채 우두커니 서 있는 꼬마 정승 같아 보였을까. 큰 키에 삐쩍 마른 마네킹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병악이 오빠가 슈퍼로 들어서던 길이었는지, 학원을 향해 동네 어귀에 위치한 슈퍼를 지나가던 길이었는지 모르겠다. 병악이 오빠는 우리 언니 친구의 동생이었고 나보다 세 살이나 위였다. 나이차이가 있으니 평소 어울릴 일도 없었건만 병악이 오빠는 내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었던 걸까.
나를 지나치던 병악이 오빠의 걸음이 갑자기 방향을 틀었다. 순식간이었다. 병악이 오빠는 내 멱살을 잡고 나를 벽에 밀쳤다. 내게 말도 걸지 않던 병악이 오빠가 이런 만행을 저지르리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기에, 나의 저항력과 순발력은 발휘될 틈이 없었다. 무엇보다 나보다 세 살이나 많은 오빠라는 존재에게 감히 대들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보다 키가 작긴 했어도.
왜 그러냐고 물어봤는지, 그저 겁에 질린 눈으로 그를 바라봤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병악이 오빠가 내 멱살을 잡고 으르렁대며 뱉은 말은 또렷하게 기억한다.
"네가 무슨 일곱 살이야. 사실대로 말해."
".....?"
어안이 벙벙했다. 당시에 거짓말 탐지기가 있었다면 나는 기꺼이 응했으리라. 거짓말할 이유도 없는 것을 가지고 거짓말쟁이로 몰린 나는 그를 내려다보며 사실대로 말했다. 일곱 살이 맞다고. 나는 생일이 빠른 것도 느린 것도 아닌 딱 초여름에 태어난 일곱 살이었다. 병악이 오빠는 나를 올려다보며 더욱 치켜뜬 눈으로 나를 윽박질렀다. 거짓말하지 말라고.
이 오빠는 도대체 내게 왜 이러는 걸까. 억울하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헛웃음이 나온다. 왠지 목 주변이 답답해져서 공연히 쓰다듬어본다. 이후 그 장면이 어떻게 넘어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병악이 오빠의 이유 없는 씩씩거림과 이유 없이 봉변을 당한 나의 두근거림이 의문스럽게 남아있을 뿐.
이후 가끔씩 짐작해 본 바로는 병악이 오빠네 집안에서 나라는 존재가 많이 회자되었을 게 뻔했다. 조이는 일곱 살인데 그렇게 크더라, 뭐 먹고 그렇게 컸을까. 너는 열 살인데 조이보다 작네, 너도 잘 좀 먹어라, 편식하지 말아라 등등.
어른들이 무심코 던진 말들에 병악이 오빠는 누구보다 억울했을 것이다. 병악이 오빠가 또래보다 작은 것도 맞지만 내가 또래보다 큰 탓도 있었다. 그 차이가 병악이 오빠에게는 그렇게도 비현실적이었나 보다. 믿을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이유 없이 비교당한 병악이 오빠는 어쩌면 나보다도 더 억울했을 터.
친구들과 놀 때는 거칠지 않았고 여자아이들에게도 짓궂지 않았던, 병아리처럼 귀여운 얼굴의 병악이 오빠는 내게만 그렇게 위협적인 존재로 남았다. 병악이 오빠는 이후 성장기에도 또래보다 키가 작았을까. 분명한 건 병악이 오빠만큼이나 나도 키로 인한 고민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누군가는 내게 배부른 소리 말라했지만, 차마 나는 병악이 오빠처럼 멱살을 잡진 못했다.
* 사진 출처: 드라마 추리의 여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