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뒷줄, 맨 끝. 교실에서 혹은 운동장에서, 심지어 사진을 찍을 때조차도 내 자리는 정해져 있었다. 다른 사람을 가려서는 안 되니까. 나는 뒤에 앉아도 끝에 서도 보이니까. 그 자체로 서럽진 않았다. 내 뒤에 누구라도 있으면 오히려 그게 더 신경 쓰였다.
"너 갑빠가 장난 아니네."
중학생 때 내 뒤에 앉았던 남자애가 내게 했던 말이다. 슬프게도 나는 키만 크지 않았다. 여리여리한 스타일은 아니란 말이다. 어깨도 골반도 넓어 전체적으로 골격이 컸다. 그러니까 덩치로 봐도 막 초등학교를 졸업한 남자아이들보다 우세했다.
갑빠라니. 사춘기 소녀에게 가당치 않은 단어였다. 갑빠란 남성의 큰 가슴근육을 지칭하는 은어이기 때문이다. 내 뒷자리에 앉아있던 남자애는 내게 어깨가 넓다는 말을 하려던 것이었을 테지. 네 뒤에선 엎드려서 자도 되겠다던 그 남자애 앞에서 내 어깨는 한없이 움츠러들었다.(지금까지도 내 어깨엔 단단한 담이 결려있다.)
나는 그 뒤로 맨 뒤, 맨 끝을 자처했다. 마치 양식장에서 가두리를 담당하듯이. 언제나 처음이나 중앙이 아닌 언저리에서 맴돌았다.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시선은 내게 집중되고 있었다. 처음부터 내가 원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시선은 나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갔다.
사람들의 눈에 띄게 하는 요소들 중 큰 키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사회에서는 '키가 크다' 정도로 끝나고 마는데, 학창 시절에는 그것이 또래보다 성숙해 보이는 요소이기에 무슨 힘의 상징처럼 보이기도 한 모양이다. 좋은 점이라면 인기가 있다는 것이었고 나쁜 점이라면 시비가 잦다는 것이었다.
복도를 지나다가 일명 '어깨빵'이라고 불리던 것을 당했다. 어깨라면 질 수 없었다. 갑빠가 될 뻔했던 내 어깨인데. 이대로 당하고 있을 순 없었다. 움츠러든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걷기로 했다. 당당한 척이라도 해야 했다. 절대로 만만해 보여서는 안 되는 순간이 내게 닥쳐오고 있었다.
평생을 싱겁다, 멀대같이 키만 크다, 답답하다, 야물지 못하다는 구박을 받던 내가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만났다. 내 멱살을 잡았던 병악이 오빠는 키가 작았어도 나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였다. 그런데 동갑인 여자아이에게까지 멱살을 잡히고 싶진 않았다. 나는 그렇게 생존 본능을 터득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