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언니를 잡아먹고 컸나 보다. 같은 부모님 아래서 나왔지만 언니는 160cm, 나는 174cm다. 키가 큰 아빠의 유전자 덕분이라고 해도 왜 나에게만 몰빵이었을까. 반반 섞였으면 좋았겠다고 우리는 매번 아쉬워했다.
"네 키에서 3cm만 떼어서 나 좀 주라."
실없는 농담을 건네는 얼굴들은 매번 바뀌었어도 나로서는 수없이 들었던 말이다. 이 정도 반응은 스트레스받을 수준도 안된다. 그나마 내가 뭐라도 줄 수 있는 입장이 되었으니까. 나 또한 대본같이 늘 똑같은 반응을 한다.
"그럴 수만 있다면 제발 떼어가세요."
입을 앙다물고 있는 게 기본 표정이었을 만큼 내향적이었던 나의 어린 시절을 지나, 방황하던 청소년 시절, 결혼하기 전까지의 솔로 시절까지 내 인생에서 큰 키로 인한 고민은 빠진 적이 없다.
키가 크다는 사실 자체보다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타인의 반응에서 비롯된 고민이었다. 시간이 지나 이제는 그 고민을 내려놓고 다른 고민들이 주를 이루게 되었지만, 키 큰 여자로 살아오면서 오래 겪은 고민과 에피소드를 하나씩 풀어보려 한다.
1년에 훌쩍 9cm나 컸던 해도 있었지만 나는 언제나 또래보다 컸다. 나이차이가 나는 언니가 있는 데다 내향적인 성향 탓에 초면엔 말수도 없어서 더욱 성숙해 보였을 터. 겨우 일곱 살 인생에 황당무계한 일을 겪었다. 단지 큰 키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