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배우자 기도'라는 게 있다. 고등학생 때부터 결혼 전까지도 나는 신앙심이 매우 깊었다.(여기서 깊다는 건 성숙하다는 의미보단 말 그대로 깊이 빠져있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스무 살 성인이 되던 때부터 배우자 기도에 완전 진심이었다. 배우자 기도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고, 내가 꾸린 배우자 기도 목록의 1순위가 다름 아닌 키였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다른 많은 염원들 속에서도 배우자의 키는 부동의 1위였다.
같은 신앙을 가진 자여야 하는 게 2순위였으니 이것이 제대로 된 기도인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끝까지 내려놓을 수 없던 키라는 기준, 키가 대체 무엇이길래 나를 이토록 속물로 만들어버리는가. 배우자 '기도'에서 응당 1순위여야 할 신앙적인 가치관마저도 혼란시키는가. 남자들은 키 큰 여자를 싫어한다고 풀 죽어 있으면서도 사실 나부터가 배우자를 키로 제한하고 있었다.
왜였을까? 나보다 딱 1cm만이라도 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건. 10cm에서 점점 욕심을 빼고 마음을 내려놓아도 그 1cm를 버릴 수가 없었다. (훗날 그 1cm마저 빼먹게 하는 사람이 나타난 건 그야말로 내겐 혁명이었다. 키는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내 입에서 나올 줄이야. 사랑에 국적이 어디 있으며,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는 사랑꾼들의 고백을 나는 키로써 공감한다.)
어딜 가나 거인 취급받던 나를 누군가가 감싸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큰 키로 인해 성숙하단 소리를 많이 들었고, 내면도 키에 맞춰 크느라 애썼지만 사실 어리광 부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내가 덩치에 맞지 않거나 엉뚱한 행동을 하면 가끔 동성 친구들이나 언니들이 '귀엽다'라고 말해주었는데, 나는 그 말이 참 좋았다. 내겐 귀엽다는 말이 최고의 칭찬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귀엽다는 말은 사랑스럽다는 말과 같았다. 나를 귀엽게 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늘 애어른 같았던 내가 신나게 까불 수 있는 사람. 동성 친구 말고, 언니 말고, 이성에게서 귀엽단 말을 듣고 싶었다. 그런 눈빛을 받고 싶었다. 그런데 키가 174cm나 되는 나를 귀여워해줄 사람은 당연히 나보다 큰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자기보다 큰 여자를 귀엽다고 느끼긴 어려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나를 커 보이지 않게 하는 사람, 평생 거추장스럽다 생각했던 나의 허우대를 안정감 있게 지지해 줄 사람은 나보다 키가 큰 사람이어야 할 것만 같았다. 큰 키에서 왠지 모를 안정감을 느꼈다. 아마도 그것은 본능일 것이다. 남자가 굴속을 찾는 것처럼 안정감 있는 집의 처마 밑에 들어가고 싶은 여자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허우대에 속아 결혼한 여자가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160cm를 조금 넘는 엄마는 그 시절 흔치 않았던 182cm의 아빠와 결혼했다. 세 모녀가 공통적으로 평가하길 아빠는 외모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고 할 정도였으니, 일평생 함께 할 배우자를 고르는 데 있어서 허우대만 멀쩡한 사람을 경계해야 마땅했다.
그런데도 엄마는 딸들의 남자뿐 아니라 이웃집 아저씨에 대해 평가할 때도 여전히 키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나마저도 그것을 기본값인 것도 모자라 제1순위로 여기는 우를 범하고 있었다. 자신의 몸뚱이 하나만 지지할 줄 알았지, 가정의 단단한 기둥이 되어주지 못한 아빠와 평생을 내려앉은 지붕 밑에 살면서도 우리는 정작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키만큼이나 부풀려진 나의 속사람을 온전히 감싸줄 수 있는 사람은 과연 키가 큰 사람이었을까. 내가 정말 원했던 사람은 마음이 깊은 사람이었다. 늘 경직되어 있는 나를 여유 있고 귀엽게 바라봐줄 수 있는 사람. 그래서 내가 마음 놓고 까불 수 있는 사람. 그것은 키와는 상관이 없었다. 키 큰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여유, 나를 편안하게 내려다보는 그 눈빛에 잠시 착각했을 뿐이다.
그러니 어쩌면 내가 포기하지 못했던 1cm는 키가 아니라 마음의 그릇이 지닌 높이가 아니었을까? 태곳적으로 돌아가서라도 엄마의 품에 있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좁은 엄마의 자궁 속, 양수에서 헤엄치던 때에도 나는 그곳에서 충분히 아늑했으니. 몸만 커져버린 채 유리하던 세상 속에서, 나보다 1cm라도 깊은 마음을 가진 자 안에서 쉬고 싶은, 충분히 노닐고 싶은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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