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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변했다

마음 쓸 줄 몰랐던 그녀는

by 조이


"생일이 뭐 대수냐."


우리 집에서는 생일을 축하해 주는 문화가 없었다. 이 외에도 생략된 것들이 많았지만, 일 년에 딱 한번 돌아오는 생일에 케이크나 외식은커녕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 건네주지 않았다.


친구들처럼 생일파티를 해달라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무심했을까. 때마다 곁에 있던 친구들이 축하해주기는 했어도 그게 다 네가 갚아야 할 것들이라며 엄마는 '안 주고 안 받기'를 주장했다.


그런 엄마가 변했다. 비록 하루가 지나서 연락을 주었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서 기대를 내려놓고 살았기에 감동이 더했던 것 같다. 엄마가 내 생일을 먼저 축하해 주다니. 이건 정말 기념할만한 일이다.


"우리 조이 생일이네~ 어제는 내가 너무 바빴어. 조이를 안 낳았으면 어쩔 뻔했나. 내가 조이 덕분에 살지."


내 덕분에 산다는 건 가당치 않다. 출가한 지 십 년이 넘었고, 결혼 후 고향에 자주 내려가지도 않고, 당신들 생활에 금전적인 보탬을 주는 것도 아닌데. 엄마는 왜 내 덕분에 산다고 했을까.


그저 한 번씩 전화해서 사는 것을 공유했을 뿐이다. 전화해서 잘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만 했다. 어차피 엄마 아빠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없으니까. 실제로 예전 우리 형편에 비해 잘 지낼 수 있는 환경이기도 했고.


그래도 삶이란 게 녹록지 않아서 힘든 마음이 있으면 새벽기도를 다니며 털어냈다. 이왕 기도하는 거 엄마아빠, 언니에 대한 기도도 덧붙였다. 그래봤자 가족으로서 내 부담을 덜어내기 위함이었지만.


그래도, 그 자체로, 엄마는 내 삶에 안심을 했던 것 같다. 딸을 시집보내는 게 왜 자식을 여의는 것과 동음어로 사용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만큼 떼어놓고서도 걱정이 되는 게 부모마음일 것이다. 걱정을 끼치지 않고 평안하게 잘 사는 같아서 그게 내심 고마웠던 걸까.


결혼하기 전까지도 교회에서만큼은 자랑스러운 딸이었기에, 시집간 딸 잘 지내냐는 교회사람들의 안부에 엄마는 진심으로 답할 수 있었다. 내가 새벽기도 다닌다는 소식이 그곳까지 퍼질 정도로 나의 안녕은 엄마의 안녕이 되었다.


한참 엄마와 아빠를 주제로 글을 쓸 때는 애정인지 애증인지 모를 마음에 자주 전화해서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옛날 얘기도 하면서 우리는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갔다가 회한을 나누기도 했다. 뜬금없는 기억의 소환도 나의 치유를 위해서라면, 그녀는 좋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엄마는 내가 온라인에 글 쓴다는 것을 알고 나선 한강작가처럼 노벨상을 받게 해달라고 기도한다고 했다. 어이가 없어서 큰 소리로 웃었지만 엄마는 진심인 모양이었다. 이런 게 자식 사랑일까, 웃다가도 코끝이 찡해졌다.


그래, 엄마는 이렇게 자기 방식으로 나를 사랑했다. 표현이 생략되었을 뿐. 엄마의 눈빛과 한숨을 받아내고 자란 나는 그것을 어렴풋이나마 알았지만 남편은 알 리 없었기에 결혼 후엔 연기를 해야만 했다.




내가 시부모님과 시누이에게 받는 환대에 비해 우리 집에서는 남편에게 너무나 무관심했다. 선물도 받아봐야 줄 줄 아는 것처럼 마음도 써봐야 쓸 줄 알 텐데, 우리 부모님은 마음 쓸 줄을 몰랐다.


한평생 그러려니 하며 익숙했던 나도 결혼 후에야 서러움과 서운함이 폭발했지만, 언니와 내가 한꺼번에 쏟아놓는 그것을 받아낼 능력도 없어 쩔쩔매는 부모님이 안쓰럽긴 매한가지였다.


그래서 시작된 부탁이었다. 남편 생일에 연락을 해달라고 한 것이. 내가 돈을 보내고 엄마 아빠가 주는 것처럼 했다. 수고비는 없었지만 그 과정을 통해 부모님은 남편에게서 감사하단 인사를 받았다.


딸들 생일도 넘어가는 부모님이 사위들 생일은 알아서 챙겨줄 리 없었다. 편하게 해 드리려 '아들같이' 굴었던 첫째 사위의 생일도 생략했던 부모님이다. 살갑지 않은 작은 사위로 인해 조금은 불편해진 마음이 오히려 그들을 움직이게 했을까.


그런 분들이 내 부탁으로 작은 사위의 생일을 축하해 주길 몇 년째, 어느새 큰 사위의 생일을 챙기고, 언니의 생일을 챙기고, 내 생일을 챙기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부모님께 남편 생일에 앞서 돈을 보내지 않는다. 부탁하는 걸 잊어도 이제는 '알아서' 연락해 주신다.


이제 마음 쓰는 법을 조금은 알게 되신 걸까. 어쩌면 늘 자식들을 향해 있던 마음이 이제야 멀리 있는 자식들에게 닿을 수 있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멀리서 발걸음을 해도 늘 텅 빈 가슴을 달래며 되돌아왔던 길, 다신 가고 싶지 않으면서도 마음 쓰이는 그 길을 따라 엄마는 내게 마음을 보내왔다.


낳아주고 길러준 것만으로도 자식들에게 감사 인사를 받아야 마땅하겠지만, 표현이라는 건 쌍방의 성질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태어나지가 않는다. 나 또한 노력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마음 쓰는 법을 더 배워야만 한다.


편지는 아들도 썼지만.. 맞춤법과 내용적인 측면, 내 글의 흐름(감동파괴 방지)을 고려하여 딸의 편지로 첨부했다


생일날 아들이 접어준 꽃다발을 받고, 딸이 써준 편지를 읽었다. 딸아이의 표현에 가슴이 뭉클했다. 딸아이의 편지를 읽고 나의 생일, 나를 낳아준 엄마가 생각나긴 했지만 이번엔 따로 전화하지 않았다. 나 오늘 생일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딸처럼 나를 낳아줘서 감사하다고 말하기엔 어쩐지 작위적이기도 했다. 지난 생일엔 그렇게 말하면서도 여전히 서운해하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도 어릴 때 종종 이런 편지를 써드리기도 했던 것 같은데, 별다른 효도를 하진 못하고 떠나온 것 같아서 겸연쩍기도 했다.


어쩌면 효도라는 건 어릴 때 다 하는 거라는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 나의 딸도 저 편지를 써준 것으로 내게 이미 효도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내게 마음 썼다는 것, 표현해 준 것 자체로 나는 행복하다고.


그리고 일평생 무심했지만, 결혼한 지 십 년 만에 내 생일을 먼저 축하해 준 엄마에게도 나는 감사했다. 지나치게 한정된 자원 속에서 마음까지 쥐고 사느라 마음 쓸 줄을 몰랐던 그녀가, 내게 건네준 마음은 너무나도 소중했다. 참 행복한 생일이었다.


마음을 쥐고 사느라 마음 쓰는 법을 잊어버려서, 꽁꽁 닫아둔 녹슨 수도꼭지에서 녹물처럼 녹슨 마음이 터져 나왔다. 쇠비린내 나는 눈물을 뒤집어쓰고 나는 울었지만 이제야 입을 벌리고 한 모금 머금어본다. 꿀꺽 삼킨 그 물이 달다.



<내가 듣고 싶던 말, 네게 하고 싶은 말>


"마음을 표현하는 건 중요해. 마음은 쓰지 않으면 녹이 슬어버리는 것 같아. 마음을 쓰지 않으면 마음 쓰는 법을 잊게 되기도 하니까. 표현하지 않으면 모르는 법이니 마음을 쓰지 않는 사람과는 관계가 단절될 수도 있단다. 가족이라는 건 표현하지 않아도 쉽게 단절될 수 없는 관계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힘들어지기도 해.


그래서 네가 엄마에게 마음 써준 게 참 고마워. 네가 표현해 준 마음들을 잘 간직하고, 엄마도 너에게 때마다 마음을 표현해 줄게. 부모가 자식에게 마음을 쓰는 거야 당연하겠지만, 나를 감당하듯 너를 감당하려 하진 않을 거야. 너는 내가 아니니까. 너로서 너에게 필요한 마음들이 있겠지. 그것을 놓치지 않도록 마음 써볼게.


그래도 혹시나 엄마가 세세하게 마음 쓰지 못해서 서운한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 말해주렴. 켜켜이 쌓인 원망이 아닌 기대가 있는 바람으로 전해준다면 더 좋겠어. 그것 또한 너의 마음을 써야 하는 일이겠지만. 가끔은 다 받아내지 못해서 마음이 넘치더라도, 우리 언제든 마음을 주고받았으면 해. 꼭꼭 닫아두어서 녹이 슬지 않도록 말이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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