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
"오늘 꼭 일찍 와아!"
워킹맘인 내가 집을 나설 때마다 아들이 꼭 하는 말이다. 나의 퇴근시간은 정해져 있는데도 아이는 매번 간절하게 외친다. 여기서 '일찍'이란 자기보다 먼저 집에 와 있으란 뜻이다. 여기에 뒤따르는 말은 '태권도장 앞에 서 있으라'는 말인데, 태권도장이 위치한 아파트 상가 건물 앞에서 우리 동 현관까지는 끽해야 열 걸음도 되지 않는다. 현관문 비밀번호 치고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오면 되는 것을. 평소엔 놀이터도 혼자 왔다 갔다 하면서 왜 그럴까 싶었다.
부랴부랴 집 앞에 도착해서는 얼른 집에 올라가 밥을 차리든 집안일을 보고 싶지만, 아침부터 늘어져있는 간곡한 말을 붙잡고 아들이 나올 때까지 서성거린다. 일이 분 차이로 타이밍이 어긋난다면 용수철같이 늘어난 아이의 마음은 탄성을 잃어버릴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은 아이의 마음을 매일매일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이다. 늘어나버린, 탄성을 잃은 용수철은 손에서 놓게 되는 법이라, 나를 향한 아이의 마음이 늘어나고 엉키지 않도록 노력한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아이들을 인계하는 관장님과 나는 겨우 이삼 미터 지점에서 눈을 맞추고 멋쩍게 웃는다. 관장님은 우리가 어디 사는지 빤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내 아들은 자기 당부대로 서 있는 엄마를 보며 히 웃는다. 그러고선 놀이터로 향하는 친구를 따라 옆길로 향한다. 저렇게 씩씩한 뒷모습을 보여줄 거면서 아침엔 왜 그렇게 늘어졌을까. 출근시간이 임박한 내가 먼저 뒷모습을 보여서 그런가. 그래도 곤히 자는 아이들을 너무 일찍 깨워 채비시키고 싶진 않다. 하루를 끝마치는 시간이 어른들과 같은데 그 시작을 더 이르게 하는 건 너무 안쓰러워서. 대체 뭐가 나은 걸까 하고, 하루의 2/3를 겨우 마친 나는 매일 생각한다.
어릴 적 엄마가 학교에 찾아온 날은 많지 않았다. 입학식과 졸업식 같은 공식 행사에 찾아오는 것도 초등학교 때까지였고, 운동회나 소풍날엔 다른 친구 가족의 돗자리에 앉아서 점심을 까먹던 기억이 난다. 요즘엔 점심시간 전에 운동회가 끝나버리지만, 당시의 운동회는 하루 종일 가족들과 함께 하는 학교 축제였다. 엄마가 따로 부탁했던 것도 아닌데, 내 자리를 선뜻 마련해 주었던 친구의 가족에게 아직도 감사하다.
엄마는 직장을 다니지 않았다. 하교 후에 집에 가면 어두컴컴한 집에서 모로 누워 책을 읽거나 졸고 계셨다. 평소엔 그러려니 하다가도 갑자기 비가 오는 날에는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아이들이 한두 명씩 제 엄마를 발견하고 뛰어나가는 걸 보면서, 혹시 우리 엄마도 교문에서 우산을 들고 마중 나와있진 않을까 목을 빼고 기다렸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결국 비를 맞고 집에 가면 엄마는 여전히 모로 누워 자고 있었다. 나는 그런 순간들에 차츰 배신감이 들었다.
집에 있으면서 왜 우산을 들고 날 데리러 오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비 맞는 게 뭐 대수라고, 하며 일축하던 엄마의 무심함은 시나브로 내게 스며들었다. 덕분에 이후 많은 상황들을 엄마 없이도 '그게 뭐 대수라고', '어차피, '그래봤자'라며 그럭저럭 넘길 수 있었지만 그날의 상실감은 여전히 남아있다. 어린 마음에도 엄마가 내게 해줄 수 없는 것은 포기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았던 것은 왜였을까, 하는 의문이 해소되지 않은 까닭이다.
우산 없이 비 오는 날. 어릴 적 누구나 겪었을 같은 상황에서 가수 이적과 배우 한가인의 상반된 반응이 신기했다. 어릴 적 배경을 보면 그것이 단순히 성향의 차이는 아닌 것 같다. 다른 면에서 결핍을 겪지 않은 아이는 독립심과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 반면, 크고 작은 결핍이 쌓였던 아이는 빗방울에도 처량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런 아이에게 비 오는 날 비를 맞고 가야만 하는 상황은 보호받지 못한 채 무방비로 맞이하는 순간인 것이다.
같은 상황에서 나의 아이들은 어떤 마음을 가질까. 워킹맘인 나는 아이들을 데리러 갈 수 없으므로 작은 우산을 늘 가방에 넣고 다니게 한다. 덕분에 아이들이 아직 무방비로 젖게 된 날은 없지만, 그렇더라도 결핍으로 인해 구멍 나지 않은 마음이길 바라본다. 결핍이 없는 삶은 없고, 모든 구멍을 내가 메워줄 순 없더라도, 그게 뭐 대수냐며 아이의 바람에 대해 바람 빠진 풍선처럼 반응하진 않겠다고 다짐해 본다. 늘어져버린 용수철처럼 제자리로 돌아가지 않는, 마음과 마음이 닿지 않는 엄마가 되고 싶진 않아서.
《내가 듣고 싶던 말, 네게 하고 싶은 말》
"늘어진 고무줄과 같던 내 삶에 너는 탄성을 내지르게 하는 존재였어. 바람 빠진 풍선 같던 나를 다시 힘 있게, 그전보다 더 크게 부풀어 오르게 했지. 너로 인해 벅차오르던 마음을 기억해. 힘껏 치면 튀어 오르는 탱탱볼처럼 엄마는 네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어. 한낱 장난감에도 네가 기대하는 반응이 있는데, 엄마인 내게 기대하는 바를 당장 충족시켜 줄 순 없더라도 끝내 실망시키고 싶진 않았거든. 내가 돌아가야 하는 곳은 너의 마음, 너의 마음과 닿고 싶어서. 무심하게 흘려보내버리면 다시 닿을 순 없을 것 같아서. 귀에 고무줄이 달린 것 같이 자꾸만 내 입꼬리를 올려주던 네게 나는 어떤 힘을 줄 수 있을까. 지친 몸을 이끌고 너를 기다리며 서성이던 자리, 거기에 서 있던 존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네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어."
* 사진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