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텐트에서 조촐한 여름휴가를 보냈다. 그리고 뜻밖의 장면이 내게 잔상으로 남았다. 앞으로도 잊지 못할 아이의 모습이. 이것만으로도 나는 이번 휴가를 잘 다녀왔다고, 이번 여름을 잘 통과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덕지덕지 붙여놓은 모기패치가 무용하게도 산모기에게 물리고야 말았고, 텐트에 바짝 붙은 매미가 모닝콜처럼 옴팡지게 울어대는 바람에 평소보다도 더 일찍 일어나 버렸지만.
두 달 동안 일주일에 세 번, 아이들을 데리고 수영장에 다녔다. 가장 늦은 강습 시간에라도 맞추기 위해 휴가를 야금야금 헐어 썼다. 작년에 무리해서 괌에 다녀왔으니 올해 여름휴가는 계획하지 않았다. 대신 여름에 물놀이하듯 수영을 배우길 바랐다. 물을 무서워하다 어른이 되어 수영을 배웠어도, 호흡하며 나아갈 줄 모르는 내가 아이들만큼은 일찍 수영을 배워 즐기길 바랐다.
일찍이 물 만난 고기처럼 수영을 즐기던 사촌 조카들의 영향도 있었고, 다음 학년에 편성된 생존수영 수업시간에 아이들이 당황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퇴근 후 종종걸음으로 아이들을 픽업하고, 수영장에 데려가고, 아이들이 강습받는 동안 대기하고(중간에 유리창에서 손을 흔들어주는 건 필수다), 끝나면 도서관에 들러서 책 읽는 일상을 반복했다. 이것을 핑계 삼아 회사에서 일찍 나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좋았다.
그러나 여러 가지 문제가 겹쳐서 다음 달부터는 수영을 이어가지 못하게 되었다. 체력적으로도 힘들었지만 스케줄 문제가 틀어지니 우선순위에서 밀려버렸다. 고민하며 스트레스를 받던 내게 수영에 목맬 필요 없다고 말해준 남편 덕분에 깔끔하게 포기했다. 그동안 아이들이 잘 따라와 준 건 분명하다. 나올 땐 뿌듯해하면서도 매번 들어가기 싫다던 아들을 달래던 나도 참 애썼지 싶다.
그러나 무엇인가를 일정 수준으로 마스터하지 못한 채 그만둔다는 게 못내 아쉬워서 한동안 제자리를 빙빙 돌았다. 캠핑장에 마련된 야외 수영장에서 꼭 튜브를 끼고 노는 아이들과, 튜브에 그려진 유치한 캐릭터마저 마뜩잖았다. 아이들도 자라면서 흥미를 잃어버린 캐릭터들이었다. 예쁜 튜브로 새로 사주고 싶은 마음보단 이젠 튜브 없이 놀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컸다. 첫 술에 배부르려 한 못된 심보도 잠시, 신나게 노는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음 날 오전, 휴가철이 지난 평일이라 그런지 체크아웃 전후로 수영장엔 사람이 없었다. 딸은 갑자기 용기가 났는지 수영을 해서 내게로 오겠다고 했다. 수영장에서 늘 함께 하던 킥판과 거북이 등판 같은 헬퍼가 없이도 수영을 하겠다는 게 기특하기만 했다. 딸은 머리를 물속에 넣은 채 숨을 참고 손을 뻗고 발차기를 해서 내게로 왔다.
성공의 기쁨을 만끽한 딸은 계속해서 주문했다. 한 걸음 더 뒤로 가봐, 그다음에 또 한 걸음 더, 한 걸음 더... 나는 장난치지 않고 딱 그 자리에 있었다. 은근슬쩍 뒤로 가서 딸이 가늠하는 거리보다 멀게 느끼지 않도록, 오히려 손을 내밀었다. 어느새 꽤 넓은 수영장의 한가운데 내가 서 있었다. 아이가 숨을 쉬기 위해 고개를 들 때마다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는 모습을 나는 마음에 꼭꼭 담아두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아이는 필사적으로 숨을 쉬었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숨을 참으며 내게로 왔다. 딸이 마침내 나의 손을 잡고 품에 안기는 순간에는 자랑스럽게 외쳤다. '나 땅에 발 안 닿았어!' 하고. 거친 숨을 몰아쉬는 딸을 바라보며 말했다. 대단하다, 엄마는 네가 정말 자랑스러워. 무서웠을 텐데 참고 엄마에게 와 줘서 고마워.
거북이 등판을 착용한 채 킥판을 잡고 연습했던, 옆으로 고개를 돌리며 팔을 시원하게 휘젓는 동작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딸아이는 킥판을 벗어던지고 도전했고, 두려움을 극복하고 내게로 와주었다. 그 거리는 결코 짧지 않았다. 내가 지금의 딸보다 훨씬 더 자랐던 시절에도, 한 발자국조차 내딛지 못하던 숱한 나날이 있었다. 그것을 이기게 하는 힘은 어디서 올까.
언젠가 다큐멘터리 실험에서 본 어린아이가 생각났다. 아래층이 내려다보이는 투명한 유리바닥을 기어서 엄마에게로 가는 장면이. 엄마가 웃지 않을 때 아이는 머뭇거리다 결국 건너가지 못했지만, 손 내밀며 웃어줄 땐 장애물을 거뜬히 극복해 냈다. 엄마의 그 얼굴을 보느라 바닥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엄마의 품에 안기는 것만이 오직 아이의 목표이자 본능이었을 것이다.
7월부터 시작한 아이들의 수영도, 그즈음부터 쓰기 시작한 나의 소설도 이렇다 할 만한 성장은 없다. 그러나 이 여름을 보내며 잘 지나왔다 말할 수 있는 건 부지런히 걸어왔기 때문이다. 작열하는 태양을 피하고 또 맞으며 부단히 오고 갔던 길이 있기 때문이다. 버스를 기다리고 타고 내리던 일, 손을 잡고 걷던 길, 여전히 밝고 덥던 여름 저녁의 풍경,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집에 돌아오던 길, 소설 속을 거닐던 한여름밤들...
유난히 뜨거웠던 여름을 보내며 아쉽기보단 홀가분하다. 여름의 끝에서 새롭게 시작된 것은 없다. 시작했던 것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이미 시작한 것을 다시 시작할 뿐이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의식을 갖고 다른 것들을 시작할 것이다. 나는 나대로 쓰던 소설을 계속 쓸 것이다. 새로운 장면이 시작될 것이다.
《내가 듣고 싶던 말, 네게 하고 싶은 말》
"아들아, 탈의실에서 혼자 옷을 벗고 수영복으로 갈아입는 게 싫다며 울던 너의 모습이 생각난다. 키에 새겨진 번호와 같은 번호의 사물함을 못 찾고 뛰쳐나오며 울먹이던 모습도. 몇 번이나 다짐받고 약속하며 들어간 후엔 유리창 너머에서 반갑게 손 흔들어주었지. 보란 듯이 발차기도 더 힘차게 하면서. 나올 때 넌 누구보다 환하게 웃었지. 그때마다 드러난 앞니가 매번 더 자라 있는 것 같아 내심 아쉬웠던 엄마의 마음을 알까? 두려움을 극복하며 조금씩 자라는 너를 간절히 응원해.
딸아, 매번 시간에 맞춰 수영 강습을 받을 수 있었던 건 네가 엄마와 소통을 하고 약속을 잘 지켜준 덕분이야. 매일 보는 얼굴이지만 우리 만날 때마다 어찌나 반갑던지! 엄마는 반복되는 일상이 하나도 지겹지 않았단다. 너와 손잡고 걸어오던 길, 중학생이 되면 혼자 걸어 다니게 될 그 길에서 우리의 여름을 추억하면 좋겠어. 엄마는 우리 함께 걷던 길과, 네가 혼자 헤엄쳐서 엄마에게로 오던 길을 결코 잊지 못할 거야. 물속에서 너무 힘을 주어 다리에 쥐가 나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날에도, 우리 서로를 떠올리며 버텨볼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
* 사진 출처: https://unsplash.com/ko/@jeremybish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