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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남매와 뻔한 엄마

흔하다 못해 뻔한 우리들

by 조이


"시끄러워, 너희 둘 다 똑같아!"


소음에 취약한 나는 아이들에게 더 큰 소리를 지르고야 말았다. 연년생인 남매는 둘 다 수준이 비슷하여 티격태격하기 일쑤인데, 그 꼴을 보고 있기가 싫기도 하거니와 성급한 판단을 피하기 위해 섣부른 개입을 하지 않는다. 그럴지라도 상황 파악을 위해서는 귀를 열어둘 수밖에 없는데,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을 넘어서 짜증과 고성으로 번지기 시작하는 순간을 나는 견디지 못한 것이다.


소음이 소음을 덮어버린 격이다. 감정의 파도 앞에서 뛰어넘는 법은 언제나 가르쳐줄 수 있을까. 에라 모르겠다, 좋은 예를 들어주기는커녕 나의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아이들에게 시끄럽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나는 그 순간 제일 시끄러운 존재이자, 부서진 파도 앞에 드러누워 시위하는 어른아이가 된 것 같았다. 아이들은 숨죽인 채 그런 제 엄마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흔한 남매를 좋아하면서도 싫어한다. 도서관에 가면 흔한 남매 만화책을 한가득 가져와서 읽고, 대출까지 하는 걸 보면 흔한 남매에 푹 빠진 게 분명해 보였다. 그래서 아이들 용품을 살 때 흔한 남매가 그려진 것으로 사다 주었더니 착용하기는 싫어했다. 그러니까 흔한 남매인 으뜸이와 에이미가 재미있는 캐릭터이긴 하지만, 캐릭터 자체와 동일시하는 건 거부한 것이다.


이런 재미있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투닥대는 아이들에게 가끔 흔한 남매라고 놀리곤 했다. 아이들이 특별한 남매이길 바라는 마음에, 너희들이 좋아하면서도 닮기는 싫어하는 흔한 남매와 다른 게 무엇이냐며 도발을 한 셈이다. 그런데 성난 파도가 잠잠해진 후 아이들이 내게 슬쩍 다가와 흔한 남매 책을 펼쳐 보였다.


"엄마, 흔한 남매에서 나오는 엄마랑 똑같아."


아들이 히히 웃으며 보여준 부분은 흔한 남매의 엄마가 나처럼 화내는 장면이었다. 말풍선 대사가 어쩜 내가 한 말이랑 똑같은지. 마치 받아쓰기한 것처럼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다. 그건 정말 내가 봐도 너무 웃겨서 같이 웃었다. 민망한 웃음이었지만. 그간 아이들에게 흔한 남매라고 놀렸던 내가 우스웠다. 나부터가 흔한 엄마였는데 말이다.


흔한, 보통의, 평범한 존재인 우리 가족의 보통날이 흘러가고 있다. 그 속에서 특별한 순간을 길어내기엔 역시나 노력이 필요하다. 흔하다 못해 뻔한 엄마를 히히 웃으며 받아주는 아이들이 그저 평범하게 자라준다면 좋겠다. 무엇이 특별하길 바라는 마음은 잠시 접어두어야겠다. 흔한 날들의 흔한 모습을 먼저 사랑하기로 했다.


다음에도 아이들은 이런 식으로 다투겠지. 다시 무언가를 지어보려다가, 이렇게 저렇게 하려다가, 제 것을 지키려다가, 서로의 것과 제 것까지 부수기도 하면서. 그러나 그 순간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잡는 것과 아이들의 흔적을 지우는 것은 다르다. 서툴지만 아이들이 세워가려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살피기도 전에 부숴버리는 행위는 하지 말아야겠다. 쓰나미가 지나간, 소중한 보통날에 특별한 다짐을 해 본다.


파도가 철썩, 하고 덮어버리면 지저분한 모래 바닥은 고요히 쓸려가고 모래는 곱게 누워있다. 고운 모래를 보겠답시고 아이들의 현장에 급습하여 파도처럼 쓸어버리는 대신, 양동이로 수고롭게 길어낸 물을 제자리에 적셔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이가 완성하고자 했던 특별한 자기만의 성을 함께 빚어갈 수 있을 때까지.


<내가 듣고 싶던 말, 네게 하고 싶은 말>


"누구나 특별해지고 싶을 거야. 그런데 특별하다는 건 뭘까? 특별한 것의 반대는 흔한 것일까? 그렇다면 흔한 것은 가치가 없을까? 너희가 흔한 남매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이유는, 흔한 남매에게 너희와 닮은 모습이 있거나 너희가 그 행동에 공감하기 때문일 거야. 그러니 우리가 가진 흔한 모습들은 많은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멈추지 않고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 태도가 필요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그렇게 발전해 왔으니까. 그런데 그런 노력들을 '특별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 할 필요는 없어. 너희는 이미 그 자체로 특별한 존재란다."



* 이미지 출처: 유튜브 채널 흔한 남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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