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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가 아니다

(4) 나도 내가 아닐 것이다

by 조이


롤러스케이트를 타다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났던 일, 앞 구르기를 연습해서 성공했던 일, 낯선 영어캠프에 참여했던 일, 영어책을 한 권씩 읽다가 마침내 한 문장씩 읽어낼 수 있었던 일, 독서 장학생 활동에 참여해서 매일 도서관을 출석했던 일, 작년에 이어서 성경교육 대회에 나가기로 결단하고 성경 구절을 암송했던 일...


은미가 도전하는 모습은 엄마에게 아주 큰 감동을 주었어. 그 과정에서 엄마는 은미 덕분에 행복했어, 정말로. 그 과정을 엄마가 모두 지켜보았어. 은미는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야. 앞으로 엄마가 어떤 것을 제안할지, 그 제안에 네가 응할지, 그것이 네게 좋을지 다 알 순 없지만, 무엇이든 은미가 마음먹는다면 도전할 수 있어.


무엇에라도 도전한다면 적어도 네 안에 실패감과 두려움은 없을 거야. 엄마가 실패할까 봐 두려워서 도전하지 않는 동안 그것들은 먼지처럼 마음속에 쌓여갔거든. 도전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경험이 있고, 그 경험은 먼지처럼 사라지지 않는단다.


은미야, 이번에 우리가 성경암송대회에 참여해서 상을 받진 못했지만 우리는 그 대회에 참여한 목표를 성취했어. 그 말씀 본문을 다 외웠기 때문이야. 대회에서 상을 받는 것은 심사위원들의 기준을 충족시키는 일이고, 우리가 그 기준에 대해서 배우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하자. 어떤 경험에서든지 배울 것이 있거든.


'넘어진 자리에서 황금을 줍는다'라는 외국의 속담이 있어. 넘어졌기 때문에 발견할 수 있는 소중한 가치들은 무엇일까?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마 7:7) 우리가 암송한 말씀처럼, 우리, 도전해서 황금을 찾아내고 발견하는 인생이 되길 축복해!

은미를 사랑하는 엄마가.




편지를 쓰고서야 알았다. 실패감이 가득했던 내 인생을, 아직도 도전을 두려워하고 있는 내 모습을 아이가 닮을까 봐 속상했다는 걸. 아이는 내게 상장을 받고 나서 만족해했지만 내내 마음이 쓰였던 이유는 결국 나 때문이었다.


편지는 일방적인 나의 메시지였다. 아이의 생각을 알아야 했다. 병원에 가는 길, 아이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부정적 답변을 듣게 되면 어쩌지, 내가 아이에게 다시 동기 부여를 할 수 있을까? 영 자신이 없었지만 그 마음조차 나눠보기로 했다.


아이에게 이런 속내를 털어놓는 게 왠지 부끄럽기도 했지만 용기를 내보았다. 엄마에게 고민이 있노라며 운을 떼었다. 사실은 엄마가 너를 격려하면서도 많이 속상했다고. 심지어 아직도 속상하다고. 그리고 걱정이 된다고.


"혹시 저번에 암송대회에서 상 못 받아서 다시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어?"


질문을 빙자한 내 마음이었다. 학창 시절에도 자주 포기하던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도전정신이 샘솟지는 않았다.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자기 의심이 강한 나는 아이를 앞세워 도전해 본 결과에도 초연해지지가 않았다.


이미 끝나버린 결과에도 여전히 낙담하고 있었다. 아이를 이끌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돕고자 했던 모든 의욕이 사라져 버렸다. 그러니까 그건 아이에게 하는 질문이자 고백과도 같았다. 난 이런데 너는 어때? 하는.


"음... 아니!"


"정말? 어째서?"


"틀려도, 괜찮아! 실수해도, 괜찮아! 다시 또, 하면 돼! 선생님이 이렇게 가르쳐주셨거든. 다시 또 하면 되지!"


아이는 나일 수도 있었지만 내가 아니었다. 나였다면, 나 같았다면 내가 더 안아줘야 했을 것이다. 나는 그럴 작정이었다. 그러나 아이는 내가 아니었다. 그 순간 나는 마치 아이가 나를 안아준 것 같았다. 우리는 손을 맞잡고 힘차게 걸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외치며 희망을 되새겼다. 너는 내가 아니다, 너는 내가 아니다. 그러자 메아리처럼 조용한 울림이 있었다. 나도 내가 아니다. 이전의 내가 아닐 것이다.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너로 인해.



*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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