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지극히 사적인 엄마의 심정으로
돌이켜보면 내가 간과했던 건 작은 목소리였다. 나의 피드백을 듣고 아이는 힘차게 시작했다가도 본연의 톤으로 돌아가곤 했다. 나는 그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크게 걱정할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암송은 무대에서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겨우 두 명의 심사위원이 있는 작은 방에 한 명씩 순서대로 들어가서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거실에서 연습할 때도 아이의 목소리는 충분히 들렸다. 암송은 웅변이 아니기에 작년처럼 끝까지, 정확히, 제한된 시간 안에 외우기만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미루어 짐작하건대 그것이 바로 이번 대회에서 주요하게 심사한 영역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들은 연습 때처럼 '남자답게' 힘찬 목소리로 참여했다고 말해주었다. 분량 자체도 작년보다는 줄었으니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본문을 모두 외웠다고 가정했을 때, 결국 태도로 가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내가 주요하게 여겼던 정확성과 제한시간도 모두가 일정 수준을 충족했다면 말이다.
그러니까 대회에 입상하기 위해서는 상대적인 요소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었다. 열심히 했으니 당연히 상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 지나친 순진함이자 안일함이었다. 각 부문마다 상을 줄 수 있는 비율은 정해져 있을 것이고, 적용하는 심사 기준이 있었을 것이다. 비록 세상과 다른 기준을 추구하는 교회라고 해도, 대회에 참가했다는 이유만으로 상을 남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이해하면서도 나는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암송은 다른 부문과 달리, 성실성을 바탕으로 한 꾸준한 연습과 준비가 요구되는 부문이다. 아이는 긴장한 탓에 한 구절에서 잠시 더듬었다고 했으니 정확성에서까지 감점이 되었다 해도, 시간 내에 끝까지 다 외웠다는 것으로 그 성의를 어떻게든 인정해 주려면 인정해 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이기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림과 글짓기는 각자 다른 결과물을 창작해 내는 영역이고, 중창이나 댄스도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지만 재능을 바탕으로 한 예술성을 심사하는 영역이다. 그러나 암송은 재능을 심사하기보다는 의지와 노력으로 참여를 이루는 영역이며, 달성한 정도만으로도 그 의지와 노력을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교회는 그것을 알아주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작년 심사위원들과 달리 왜 이번 심사위원들은 그걸 읽어주지 못한 걸까, 나는 아쉬움을 넘어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게다가 아들이 받은 상은 문화상품권이 포함되지 않는 상이었다. 그렇다니 더욱이 서러웠다. 예산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상장 한 장을 추가 인쇄하는 것으로 끝까지 완주해 낸 딸아이까지 '장려'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나는 지극히 사적인 엄마의 심정으로 이 일을 곱씹게 되었다. 그러나 곱씹을수록 질기고도 질긴 무엇이 끈적하게 느껴졌다. 부풀어 오르다 펑 터져버린 풍선껌을 수습하는 심정으로 나는 조용히 마음을 떼어냈다.
쿠팡에서 주문한 상장 용지는 다음날 바로 도착했고, 출근하자마자 나는 떼어낸 마음들을 타이핑하여 상장에 인쇄했다. 서식과 글씨체가 비슷하니 직인이 없어도 모양이 그럴듯했다. 그래, 상장을 주는 게 이렇게 대단한 것도 아닌데. 아이가 받고 싶었던 것도 그저 인정이었을 것이다. 남들이 몰라줘도 엄마가 알아주면 된다. 이렇게라도.
떼어낸 마음을 상장에 붙이기에는 공간이 모자라 편지를 쓰기로 했다. 생각 없이 불다가 터져버린 풍선껌을 수습하듯, 아무렇게나 붙인 스티커를 흔적이 남지 않게 떼어내듯 나는 조심스러웠다. 주섬주섬 떼어내고 적어낸 마음들은 새로운 글자가 되어 종이 위에 내려앉았다.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결국엔 아이가 내 마음을 읽어주는 것으로 끝이 났다.
* 이번 에피소드는 (4) 편에서 편지글을 마지막으로 마무리할 예정입니다. 다음 에피소드부터는 원래의 형식으로 작성할 예정입니다.
* 사진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