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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이 상을 못 받다니

(2) 나는 왜 상 받을 거라고 자신했을까

by 조이


교회에서 열리는 대회였다. 교회들이 연합해서 주최하는 성경교육대회에 신앙을 가진 부모로서 약간의 사명감을 갖고 참여하기로 했다. 그림, 그리기, 독창, 워십댄스 등등.. 참가 부문은 다양했지만 내가 보기엔 거의 다 재능의 영역이었다.


그중 성경 암송 부문은 재능이 아닌 노력의 영역이었고, 입상하지 못하더라도 암송한 말씀들은 머릿속에 남을 소중한 자산이 될 터였다. 내가 고등학생, 주일학교 선생님이 권해서 외웠던 성경 구절들이 내 삶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다만 일차적인 목표에 더해 우리는 상을 기대했다. 학창 시절 대외활동이 전무했던 나는 아이에게 도전의식과 더불어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었다. 교회에서 하는 대회이다 보니 심적으로나 실질적으로도 진입 장벽이 낮다고 생각했다.


사실 아이는 이미 작년에 엄마 손에 이끌려 도전했다가 생각지 못하게 입상을 한 바 있었다. 끝까지 외우긴 했으나 중간중간 더듬었다고 했다. 제한 시간을 훨씬 넘겨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상을 준 것은, 끝까지 외운 것에 대한 인정과 격려 차원이라고 생각했다.


전적이 이렇다 보니 이번에는 더 큰 상을 기대할 법도 했다. 학년과 함께 암기력이 올랐고, 막연한 두려움에 맞설 수 있는 경험이 있었다. 별 생각이 없던 아이에게 '더 큰 상'을 받을 수 있다며 대회에 참여하자고 설득한 사람은 바로 나였다.


아이의 의지보단 엄마인 나의 의지가 더 컸기에, 책임감을 갖고 준비를 했다. 아직은 시간개념 없이 놀다가 잠자리에 들 시간도 놓쳐버리는 나이라서, 엄마인 내가 따로 체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아이는 엄마와 함께 하길 즐기며 곧잘 따라왔다.


하루에 한 절씩 시작해서 그다음 날은 처음부터 당일 외운 구절까지. 피곤할 땐 당일 것만 외우게 하고 넘어가려 했지만, 아이는 조금만 틀려도 '처음부터 다시' 하겠다며 의지를 보였다. 그런 아이가 제법 기특했다.


성경암송은 참가율이 낮은 부문이었다. 성경동화책이 아닌, 어른들이 보는 성경 본문이라서 문체가 어렵고 분량 또한 만만치 않았다. 한번 참여해 볼까 했다가도 꾸준히 외우고 대비하는 시간이 없으면 도전할 수 없는 부문이었다. 실제로 대회 날짜가 가까워지니 도중에 포기한 아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처음부터 완주를 목표했고, 그 길 끝에는 상이 있다고 믿었다.


완주는 진작에 해냈다. 대회 참가를 계기로 삼아 주옥같은 말씀을 아이의 머리와 마음에 심었다. 함께 준비하는 나도 말씀에 젖어든 유익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것만으론 충분치 않았던 걸까. 상을 받을 거라고 자신했던 건 교만이었을까.


아니다. 나는 아이의 과정을 모두 지켜보았다. 정직하게 성실했고 열심히 준비한 결과, 마지막 일주일간 동영상을 촬영할 땐 모두 정확성 100%에 제한시간은 넉넉히 남을 정도였다. 그러니 그것은 근거 있는 자신감이었다.


문제는 상을 받지 못했을 때 드러난 내 마음의 중심이었다. 상을 목표 삼아 말씀을 암송하려는 목적을 이루었으나 어느 사이에 중심은 내게로 기울어져 있었다. 상을 못 받았다는 사실로 인해 아이는 충분히 속상할 수 있었다, 아이니까. 그런데 나는 왜 이럴까. 일주일이 지나도록 나의 속은 뒤바뀐 목적 아래서 뒤죽박죽이 되어 있었다.


내 마음이 이토록 혼란한 이유가 무엇인지, 내가 아이에게 진짜로 해주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나는 펜을 들었다. 수도꼭지처럼 터져버린 아이의 눈물샘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던, 나의 작고 초라한 바가지로 마음속 말들을 찬찬히 퍼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써 내려간 편지는 어느새 한 장, 두 장, 세 장을 꽉 채웠다.


* 편지 내용은 (4) 편에 일부 옮겨 적을 예정입니다.


*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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