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만 봉지에 담겨있던 그것은
"오늘 밤에 다녀가신대."라고 끝나는 산타 할아버지에 대한 노랫말처럼, 산타 할아버지가 한낮에 다녀갈 줄은 생각지 못했던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이다.
까무룩 낮잠이 들었던 그날이 크리스마스이브였는지, 크리스마스 당일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거나 전날 다녀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할만한 아침이 아닌 밝고 환한 대낮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해가 중천에 뜰만큼 늦게 일어난 건 아니었다. 만화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던 것 같고, 일어나 보니 언니가 내 옆에서 만화책을 읽고 있었다. 엄마와 함께 귤을 까먹으면서.
"어? 이게 뭐지?"
내 머리맡에 놓인 까만 봉지를 일부러 부스럭거리며 언니가 말했다. 알록달록한 포장지가 아닌 까만 봉지에 선물을 담아 오시다니. 지금 생각해도 정말 센스 없는 산타할아버지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나는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믿고 있었기 때문에, 다녀갔다는 사실 자체로 흥분이 되었다. 나는 "정말? 언제?"라고 물었고, 엄마와 언니는 "네가 자고 있을 때"라고 말했는데 그 대답의 어마어마한 오류를 그땐 알아채지 못했나 보다. 안 자고 있었을 두 명은 내 머리맡에 선물을 두고 간 산타 할아버지를 못 봤을 리 없었을 텐데. 그것도 벌건 대낮에.
까만 봉지에 들어 있던 선물은 당시 유행이었던 란마 1/2 캐릭터가 그려진 색연필과 귤 몇 개가 전부였다. 그마저도 란마 1/2은 우리 집 텔레비전에는 나오지 않는 채널에서 방영하는 만화영화였다.
아마도 나이 차이가 나는 둘째를 배려한 언니와 엄마의 작당모의였을 것이다. 그래도 누가 쓰다 만 것이 아닌 새것이라는 사실이 아직도 기억나는 걸 보면 그 자체로 내 것이라는 기쁨이 있었나 보다. 물려받은 게 아닌 온전한 내 것이라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문득 떠오른 그때, 너무도 실용적인 내용의 선물과 포장이 딱 지금의 엄마와 닮아있어서 실소가 났다. 뭐든 까만 봉지에 담아와서 냉장고에 툭 넣어놓는 것도, 어딜 가나 까만 봉지를 챙겨 다니는 것도. 내가 지긋지긋해하는 그 모습이 그때도 여전했구나 싶어서. 뭘 넣긴 넣어야겠는데 적당히 감춰야 하는 엄마의 심정을 까만 봉지가 일평생 헤아려준 셈이다. 그러나 결코 숨길 수 없는, 무시할 수도 없는 부스럭 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우리 집에 방문하게 된 엄마를 위해 책을 샀다. 학창 시절 학교 도서관에서 엄마가 빌려오라고 요청했던 작가의 책이다.
"박완서 작가가 쓴 책 있으면 빌려다 줘."
그녀가 쓴 책이라면 다 좋다며, 뭐든 재미있게 읽던 엄마의 모습을 기억한다. 그중엔 내가 읽고도 재밌었던 책이 있었고, 읽다가 그만둔 책도 있었다. 나목이라는 책은 엄마가 당연히 읽었을 테지만 소장용으로 준비했다. 십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다시 읽어보는 것도, 인상 깊은 구절에 마음껏 밑줄을 그어보며 읽는 것도 엄마에겐 의미 있을 것이니.
역시나 엄마는 읽어본 책이라고 했지만 앞서 언급한 나의 권유에 고개를 끄덕이며 기쁘게 받아 들었다. 책갈피와 형광펜을 색깔별로 넣은 필통도 같이 전달하며 엄마에게 말했다.
"나중에 엄마 돌아가시면, 엄마 집에 있는 물건들은 다 버려도 이 책만큼은 찾아올 거야. 엄마가 어느 문장에 밑줄을 그어뒀는지 확인할 거야. 그러면서 박완서와 함께 엄마를 읽을 거야."
자신을 위해 새 책을 산 적 없는 엄마에게, 실용성을 중시하는 엄마에게, 겉치레를 못하는 엄마에게 나는 포장하지 않은, 충분히 예쁜 표지로 만들어진 책을 선물했다. 까만 봉지에 들어있던 귤 두 개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