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받아쓰기

기껍기도 하고 고깝기도 한 존재들

by 조이


부모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내게 기쁨이었던 때를 생각해 본다. 그저 곁에만 있어도 편안하고 안심하던 때를. 아마도 힘이 없는, 여기서 어디로 가야 집에 갈 수 있는지를 모르던 때였겠지. 엄마 손을 꼭 붙잡고 시장을 따라다니던 겨우 그 시절이려나. 벌써 몇 바퀴 돌았으면서도 한 바퀴 더 돌고 올 테니 기다리라던 엄마의 말에 십 분이 한 시간같이 느껴지던 그때.


결국 요양원으로 옮겨갔다던 외할머니를 방문하기 위해 부모님은 잠시 우리 집에 머무셨다. 지방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같은 서울로도 자가용을 타고 한 시간을 달려가야 했다. 짧은 면회 시간에 엄마는 엄마의 엄마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 두 명씩 들어갈 수 있다는 안내에 부모님이 먼저 들어갔다 오신 후 남편과 내가 짧게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할머니께 가는 차 안에서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외할머니께 하고 싶은 말 미리 생각해 둬,라는 나의 말에 엄마는 두 가지를 준비했다고 대답했다. 하나는 영접기도였고 다른 하나는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생명 연장 거부에 서명을 하라는 것이었다. 기가 막혔다.


만약 외할머니가 상태가 위독해져서 혼수상태에 빠지고 연명의료를 받게 된다 해도 엄마는 이제껏 그랬듯이 치료비를 보태지 못할 것이다. 한결같이 가난한 형편에다가, 젊은 시절 엄마가 외할머니를 대신해 식모처럼 고생했단 이유로 외삼촌들이 외할머니를 모셔왔으니까. 그렇다고 자식으로서 부담이 안 되는 건 아니겠지만 그걸 이런 식으로 직접 말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내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을까.


아니었다. 내가 어릴 적에 겪었던 친할아버지의 죽음과 같이 엄마는 외할머니의 죽음에서도 효율을 따지고 있었다. 맏며느리로서 자기가 모셔야 했을 시아버지가 병원에서 집으로 옮겨 오신 후 삼일 만에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두고두고 간증거리로 말씀하시던 게 생각났다. 그때도 집안 환경을 핑계로 작은 아버지네 집으로 모셨으면서.


나는 처음에 그 간증이란 것이 마지막 순간에 할아버지가 영접기도를 통해 평안한 얼굴로 천국에 가신 것에 대한 내용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었다. 오래 자리에 누워 자식들을 고생시키지 않고 일찍 떠나가신 것에 대한 내용이 높은 비중으로 포함되어 있었다. 외할머니의 천국행이 엄마에게 더 간절할 것은 분명하나,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서명을 적극적으로 종용하는 것이 과연 그에 비례할 수 있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 두 가지의 상관관계와 공통적인 목적은 하나뿐이었다. 자식으로서 본인의 부담을 덜어내는 일.


내가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졸업한 대학교의 연구소에서 일하며 적게나마 월급이란 걸 받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했던 건 부모님의 이름 앞으로 보험을 드는 일이었다. 가족 모두 평생을 보험 없이, 심지어 의료보험카드도 빌려서 남의 자식 이름을 대가며 병원을 데리고 다녔던 부모님은 나이가 많단 이유로 실비 보험 가입도 거절되었다. 외할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신 걸 생각해 암 보험만 두 분 앞으로 들었고, 나의 실비보험은 결혼하고 나서야 가입했다.


십 년이 훌쩍 넘은 어느 날, 일흔 중반에 연이어 작고한 연예인들의 부고 기사를 접하며 그보다 연세가 많은 나의 아버지를 생각했다. 언제가 마지막이 될지 모른단 생각에 그를 향해 응어리져있던 마음을 급하게 꺼내 썼다. 그러고 나니 현실적인 문제가 떠올랐다. 장례비용은 생각보다 컸고 부의금으로 메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 결혼자금도 못 모은 채 시집와서 빚 갚고 생활하느라 목돈도 없는데 어쩌나 하는 생각. 부모님 앞으로 딱 하나 있는 암 보험이 쓸모는 있을까 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들...


그 뒤로 나의 딸이 한 달에 한 번 주사를 맞아야 하는-맞기만 하면 되는-진단을 받았고 나는 즉시 회개했다. 그 작은 주삿바늘이 딸의 혈관을 통과하는 따끔함만으로도 마음 아파하면서, 내 부모가 죽음 앞에서 겪어야 할 고통을 먼저 헤아리지 못한 것에 대하여. 그러니까 부모님의 죽음 앞에서도 효율을 따지는 이런 부끄러운 속내를 나라고 모르는 게 아니었다.


"엄마, 그건 좀 아닌 것 같아."


사실은 과거의 내게 하는 말이었다. 엄마는 내가 내 엄마한테 말한다는데 왜 못하게 하느냐 했지만, 바로 당신의 엄마이기 때문에 그래서는 안된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전에 전화로 언급한 적 있다는 말에 나는 맥이 풀렸다. 그렇다면 이번에 한 번 더 말하는 것은 강조가 되지 않겠는가. 아니, 강요가 될 것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본인의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그 엄마에 그 딸이 되고 싶진 않지만 슬프게도 나는 엄마의 그 마음을 이해한다.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이해가 되고, 이해가 되어서 더욱 이해하기가 싫다. 이 밖에도 본인의 마음에 고인 근심과 걱정을 어떻게든 드러내고야 마는, 하고 싶은 말들을 어떤 식으로든 하고야 마는 그녀 앞에서 나는 내내 마음을 부여잡고 있었다. 더 이상 화내고 싶지 않아서. 그러기 위해선 말을 아끼는 것이 내겐 최선이었다. 그렇게 우리 사이엔 간간이 불편한 침묵이 흘렀다.


멀리서 온 김에 엄마는 손주들이 준비한 성탄 전야 축제 공연에 함께 참석했다. 젊은 시절부터 부지런히 바깥으로 돌아다녔던 아버지는 서울에도 아는 사람이 있다며 만나고 왔는데, 나이 들어 기력이 쇠한 데다 서울 바람이 남쪽 지방과는 다르다며 하루 만에 감기로 앓아누운 탓에 손주들의 공연을 보진 못했다. 어린 내가 만났을 때부터 나이 들어 있던 그는 눈과 귀가 더 어두워졌고, 이제 손을 떨며 틀니를 뺀다.


초등학교 저학년. 예쁘고도 예쁜 나이에 무대의상까지 입혀 놓으니 더욱 아름다운 나의 딸과 아들을 보며 나는 왠지 서글펐다. 없이 맑은 피부와 초롱초롱한 눈빛을 지닌 저 싱그러운 생명들과, 피부라기보단 가죽을 입고 세월에 닳다 못해 생기가 다 빠져나가버린 고목 같은 나의 부모를 바라보며. 아직 젊고 건강한 내가 보살펴야 할 두 부류의 존재들 앞에서. 나를 있게 한 연약한 뿌리들과, 내게서 뻗어 나온 튼튼한 가지들 앞에서.


아직 어른이 되어본 적 없는 아이들이 저지르는 말실수와, 오랜 세월 버리지 못한 아집으로 발설하는 노인의 말실수들 사이에서 나는 기껍기도 하고 고깝기도 하다. 한 걸음씩 내딛고 인내하며 오르다가도 제어하지 못한 채 내달리다 고꾸라진다. 아직 몰라서 그렇다고 여기며 가르쳐줄 수 있는 마음과 도무지 용납할 수 없어 답답한 마음이 좁은 그릇 안에서 뒤섞여버린다.


오물 같은 현실의 문제들과 관계들 속에서, 나는 눈을 굴리듯 차가운 결정들을 한데 뭉쳐 세워놓는다. 차마 쓸어 버릴 수 없는 마음들이 언젠간 녹아버리길 바라며 겨울과 봄이 맞닿은 시간들을 살고 있다. 새해에는 조금 더 성숙한 자녀가 되기를. 성숙한 부모이기 전에 성숙한 자녀가 먼저 되기를 바라고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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