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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악단이 실화라니

by 조이


첫 장면부터 눈물이 주룩 흘렀다. 영화를 통해 북한이라는 배경을 엿보는 게 아니라, 그 배경으로 내가 들어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지금 북한이라는 곳에 있다면. 모든 자유, 특히 신앙의 자유가 억압된 저곳에서 살아가고 있다면.


영화가 시작될 때 소개된 '실화를 바탕으로 구성한 이야기'라는 문구 때문이었을까. 가짜 찬양단. 금전적 지원을 받기 위한 북한의 혹독한 문화 행사 연출이야 알고 있었지만 종교단체 활동이라니. 그 속에서 인물들의 심경은 어떻게 변화될까 궁금해하며 영화를 감상했다.


영화 속 세부적인 서사와 설정은 각색되었지만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였다. 북한의 지하 교회는 실제로 존재하고, 성도들은 10만 명을 훌쩍 넘는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유튜브에 '북한 지하 교회'라고만 검색해도 탈북민들의 증언이 수없이 쏟아진다.


참담한 현실 속에서 그려진 개인의 삶이 남의 이야기가 될 수 없는 것은, 여전히 무언가에 속박당한 채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 아래서도 비교와 욕망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신앙인이라고 해서 매 순간 온전히 자유를 누리며 살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육신을 입고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렇다고 생각한다. 마음껏 찬양하고 예배하고 성경을 읽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진정한 자유라는 걸 영화를 보며 깨달았지만.


나는 사실 여기서도 세상이 살 만하지가 않다. 불평이라기보다는 내가 추구하는 행복이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태어났으니 살아가고는 있는데, 죽는다 해도 이상할 게 없다. 그렇다고 해서 삶에 미련이 없지 않다. 이게 가장 이상한 일이다.


결국 어떻게 살다 죽느냐의 문제일텐데 삶의 미련이라는 것에는 사명보단 사욕이 대부분이다. 사명을 이루는 삶은 차라리 짧았으면 하고 바랄지도 모를 일이다. 그만큼 감당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하나님, 나 잘했지요?"


영화 속 대사처럼, 마지막 죽는 순간 나는 하나님께 저렇게 물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매일 회개만 하기 바쁜 삶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땅에 태어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북한이 아닌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이유가. 누려야 할 복이 아닌 감당해야 할 어떤 사명이 있을 거라고. 아무도 모르고 어디에도 드러나지 않을지라도 내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


나는 사실 여전히 하루를 시작하는 게 버겁다. 새벽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인데, 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그 부담감에 짓눌려서 절로 엎드러지는지도 모른다. 퇴근하고 나서는 이불속에 널브러져 있는 걸 보면 아마도 그런 것 같다. 어쩌면 하루를 하나님 안에서 제대로 살아내는 것이 사명일지도.


언젠가부터 나라를 위해 기도할 때 대한민국과 북한을 1+1처럼 기도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더 마음이 갔던 영화다. 다른 생각을 하거나 졸기도 했던 주일 예배시간, 하루에 겨우 다섯 장을 채워 읽는 성경책도 북한이라는 배경 속에 들어가 있을 땐 그토록 소중한 자산이었다.


영화 속에서 불리던 은혜라는 찬양의 가사처럼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내가 지나왔던 모든 시간이, 내가 걸어왔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다. 내 삶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또한 그렇다. 내일은 조금 더 간절하게 기도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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