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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도가 그때 헤어지면 돼, 노래할 때 떠오른 건

by 조이


이별이라는 건 슬프기 마련이지만 그 대상에 따라 슬픔의 깊이는 다를 터. 도라도가 대체 누굴, 무슨 생각을 하면서 노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헤어지면 너무나도 슬플 대상이었으리라 짐작해 본다. 이해리 심사위원의 말처럼 고음만 내는 게 아니라 가사 전달과 감정 표현까지 해낸 도라도의 무대는 슬픔을 넘어선 감동이었다.


애석하게도 나는 도라도의 노래를 들으며 울었다. 가사와 멜로디 자체도 좋았으나 그 처절한 무대를 보면서 떠오르는 대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왜, 네가 왜 거기서 생각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알 것도 같고. 그때 헤어지면 돼, 지금은 아니야,라고 스스로 되뇌며 잠잠히 붙잡고 있던 게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그러고선 결국 꽉 붙들게 되는 간절함이 내게도 있었다는 게, 그 대상이 너라는 게 나는 그저 슬프고 기쁘기만 했다.


여기서 지칭한 '너'는 다름 아닌 글쓰기다. 내가 글쓰기를 이렇게 사랑하고 있는가 싶어서 놀랐다. 그러니까 내 인생에서 없으면 안 될, 결코 헤어질 수 없는 대상이 된 거구나 하는 깨달음이 도라도의 노래를 들으면서 역설적으로 다가온 것이다. 지금은 아니라고, 네가 다른 사람이 좋아지고 내가 너 없는 게 익숙해지면 그때 헤어지면 된다고, 결국 짝사랑으로 돌아선대도 '네가 원하든 말든 널 잡을 거고', '내가 더 이상 지쳐 걷지 못할 때'까지 너를 사랑하는 걸 그만두지 않겠다는 그 의지가, 그 고백이, 그 진심이 나에게는 모두 글쓰기로 귀결되었다.


한창 신앙심이 깊었을 때는 절절한 사랑 노래가 내 마음속 신의 고백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 그게 아닌 꿈에 대한 의지로 해석되다니 개인적으로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이별을 생각만 해도 슬픈 대상이 있다면 그건 사랑일 것이다. 결코 헤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은 언제나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겠지. 깊은 슬픔에서 만나는 기쁨이라니. 소중하고 값진 경험이다.


신춘문예의 시즌이다. 당초 11월 말에 결과가 나온다는 이유로 도전했던 문학상 공모에 접수작이 많았는지 결과가 미뤄졌다. 결과가 발표되지 않은 상황에서 중복 응모가 불가하단 안내에 기간이 남아있던 신춘문예 도전 기회도 놓쳐버렸다. 그나마 문학상 결과를 확실히 알게 된 건 사칭 민원에 대한 피해 예방 안내 문자를 통해서였다. 당선자에겐 개별 통보가 되었으니 사칭에 속지 말라는. 그러게 좀 더 일찍 알려주지, 하는 마음과 함께 깔끔해져서 차라리 잘된 건가 싶기도 했다.


애초에 원고지 100매로 제출할 수 있는 곳이 많진 않았다. 문학상에 도전하기 위해 절반을 덜어냈으면서도 도저히 80매까지 줄일 순 없었다. 이참에 원래 쓰려던 내용을 덧붙여 중장 편으로 만들어볼까 싶기도 한데, 당분간은 들춰보고 싶지 않아서 묵혀두기로 했다. 다만 헤어지지는 말자고 했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도전하는 동안 숱한 자괴감이 밀려오겠지만 포기하지 않는 마음은 어디서 올까. 나에 대한 믿음? 미래에 대한 소망? 어떤 것이든 동기 부여가 된다면 가치가 있겠다. 그러나 나는 마침내 도라도의 노래를 들으며 알게 되었다. 내가 글쓰기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사랑 때문이라고. 앞으로 또다시 기웃거리게 될 공모전이든 신춘문예든, 어떤 도전을 하든지 단지 사랑의 결실을 맺고자 하는 행위일 뿐이라고. 그러니 지리멸렬할 정도로 시험하지는 말자고 다짐했다. 중요한 건 '너'를 잃지 않는 것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미천한 밑천이 드러나는 소설을 재미 하나로 연재하기 시작했다. 작법이고 뭐고 그때그때 생각나는 대로 전개하고 캐릭터에 옷을 입혀주면서 맺고 끊는 재미로. 남들에겐 재미없을지라도 내가 재미있고 싶어서, 이렇게라도 다시 소설을 쓰고 싶어서 시작했다. 부족한 실력이 드러나는 걸 두려워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짝사랑이라도 사랑을 하는 게 나은 것처럼.


싱어게인 4 도라도의 <그때 헤어지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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