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만하게 행동하는 사람을 비꼬는 말처럼 들리지만 그 속에는 함정이 있다. 뭐가 되면, 그래도 된다는 말인가? 뭐가 안 되는 사람에게나 쓰는 말이라면 그것 또한 약한 자에게 강한 태도 같은 조롱이 아닌가?
너 뭐 돼?라는 말에는 이미 판단이 들어 있다. 너는 아직 뭐 안 되는 사람이라는. 그런데 뭐가 되면, 뭐가 되는 사람이 되면 순순히 인정해 줄까?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이라면 글쎄. 너 뭐가 되었구나,라고 축하해 줄 마음이 과연 있을까.
같잖다는 말도 언짢다. 분수에 맞지 않는 행동을 참착하게 비판하거나 점잖게 나무라는 말은 없을까. 그게 아니면 때로는 침묵도 표현이 될 수 있을 텐데. 방어든 공격이든 깎아내고 끌어내리는 말로는 자신의 인격마저 깎아내린다는 걸 잊어선 안 되겠다.
놀랍게도 이 통렬한 비판글은 나 자신에 대한 반성글이다. SNS란 본래 남들이 나를 봐줬으면 하는 모습으로 자신을 전시하는 곳이건만, 어느 정도 그의 민낯을 알고 있던 나는 그 괴리감에 까무룩 속아주지 못한 채 속으로 일침을 날리고만 있었다. 가끔은 알면서도 그가 원하는 모습 그대로 인정해 주었지만 그 한결같은 요구에 맞장구보단 꽹과리를 울리고 싶어진 것이다.
그렇게 내 안에 떠오른 '너 뭐 돼?'라는 질문이, 그에게 향하기 전 나를 향하고 있었단 걸 알게 되었다. 나를 찌르는 말이었단 걸. 자꾸만 뭐가 되길 바라는 사회와, 뭐가 되지 않고 내세울 게 없으면 무시하고 짓밟는 사회가 나 개인과 다르지 않다는 걸.
누가 뭐가 되는지 따져볼 것이 아니라, 뭐 때문에 그러는지 생각해 볼 것. 내가 해결해 줄 수 없는 문제라면 들쑤실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끌을 빼게 하기 전에 내 눈 속의 들보나 먼저 빼내라는 성경은 진정 진리가 맞다.